등록 : 2016.07.15 20:59
수정 : 2016.07.15 21:09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박현정 디지털콘텐츠팀 기자 saram@hani.co.kr
안녕하세요. 디지털콘텐츠팀 박현정 기자입니다. 이병선 속초시장이 ‘피카츄’ 사진을 든 채 속초가 포켓몬 성지가 됐음을 선언한 동영상 보셨나요? 서울~속초 당일치기 셔틀버스 상품도 등장했습니다. 이게 다 무슨 난리냐고요?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모바일게임 ‘포켓몬 고’ 때문입니다. 포켓몬 고는 이용자가 현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포켓몬을 포획·수집하고 성장시키는 게임인데요. 일본의 닌텐도가 20년 전 내놓은 포켓몬스터 게임을 사용자 위치정보 및 증강현실(AR·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를 덧입혀 보여주는 것) 기술을 더해 모바일용으로 만들어낸 것이지요.
포켓몬 고 열풍의 진앙지는 미국입니다. 수많은 한국 시민들이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뒷목을 잡았던 지난 주말, 미국 시민들은 포켓몬을 잡으러 집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난 7일 미국에서 포켓몬 고 애플리케이션(앱)이 공식 출시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죠. 스마트폰을 든 채 밤낮없이 돌아다니다 크게 다쳤다더라, ‘꼬부기’ 같은 물 타입 포켓몬을 잡으려다 변사체를 발견했다더라, 백악관에도 게임 속에서 포켓몬을 훈련시킬 수 있는 체육관이 있다더라 등 뉴스거리가 계속 이어지면서 입소문은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포켓몬 고를 개발한 미국의 증강현실 소프트웨어 업체 나이앤틱은 공식적으로 앱을 출시하지 않은 국가에서 서버에 접속하는 경우 게임에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비스 이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수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속초 등 한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포켓몬 고 열풍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립니다만,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게임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사실 포켓몬 고의 시작은 만우절 장난 같았습니다. 구글과 포켓몬스터 브랜드를 관리하는 닌텐도의 자회사 포켓몬컴퍼니는 2014년 4월1일 구글 지도를 통해 포켓몬 위치정보를 파악해 포켓몬을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깜짝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뒤 닌텐도, 포켓몬컴퍼니, 나이앤틱 등 세 회사의 협업으로 포켓몬 고가 만들어졌지요. 구글의 사내 벤처였다 지난해 8월 독립 법인으로 분사한 나이앤틱은 2014년 출시한 증강현실 게임 ‘잉그레스’를 통해 포켓몬 고에 활용되고 있는 방대한 위치정보 데이터를 구축해 놓았지요.
게임 개발자들은 포켓몬 고에서 구현된 ‘기술’은 이미 수년 전에 등장한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기술 위에 게임과 만화, 캐릭터 상품, 심지어 빵으로도 출시될 만큼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포켓몬 콘텐츠가 얹어지면서 유례없는 게임이 탄생했다는 겁니다. 일본 도쿄증시에서 닌텐도 주가는 포켓몬 고가 출시된 날부터 지난 14일까지 약 76% 치솟았습니다. 가정용 비디오게임 사업에 집중하던 닌텐도는 모바일 시장 진출이 늦어지면서 위기설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모바일 덕에 부활한 셈입니다.
이렇게 닌텐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명텐도의 추억’이 떠오르는데요. 2009년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디에스’가 인기를 모으자 ‘닌텐도 게임기 같은 것을 우리는 왜 못 만드나?’라는 질책을 했습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열악한 현실은 외면한 채 과실만 기대한다며 불만을 터뜨렸었지요. 포켓몬 고 열풍에 대한 언론보도가 이어지면서 이러다 박근혜 정부가 ‘한국형’ 알파고에 이어 ‘한국형’ 포켓몬 고 혹은 ‘뽀로로 고’ 개발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소위 대박이 난 게임들은 ‘윗선’의 결정이 아닌 프로젝트 담당자들의 상상력에서 출발했고, 충분한 개발 기간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 게임업계는 여전히 경직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게임업체라 하더라도 다른 정보기술(IT) 분야와 마찬가지로 실패가 용인되지 않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용자의 추가 결제를 유도하는 이른바 ‘현질’로 게임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도 들립니다. 게임을 나름의 놀이문화나 문화콘텐츠로 바라보기보다는 사회악으로 보는 시선과 불합리한 규제도 게임산업 발전을 막는 요소라고 주장합니다. 포켓몬 고 흥행을 지켜보고 있는 게임업체 한 직원은 이런 한탄을 했습니다. “내가 대단한 걸 만든다는 자긍심이 있어야 결과물도 좋지 않겠어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아이들 장난 같을 수 있지만, 오버워치나 포켓몬 고 만든 사람들은 아마 자신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믿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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