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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의 사람들은 기차가 무정하다고 적었지만, 20세기 뒤늦게 맘을 바꾼 연인은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비포선라이즈>의 기차간 장면.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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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모래시계>의 고현정이 소나무 옆에서 기차를 기다릴때
<비포 선라이즈>의 줄리 델피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는데
어른들을 빼고 처음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밤기차를 탔다. 꼭 밤기차여야 했다. 아직 군인 출신이 대통령이었고, 아직 <모래시계>의 고현정이 소나무 옆에서 기차를 기다리기 전이었다. 아직 인터넷이 없을 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여고생 셋은 “선생님과 함께”라는 거짓말로 허락을 받고, 아마 소설에서 읽은 대로 동해로 가는 밤기차의 입석표를 끊었다. 객차 제일 뒤편에 요행히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여고생들은 돈을 조금 쥐어들고 왔지만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목적지는 ‘한적한 동해 바닷가 어디쯤’이었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속으로 내뱉은 한마디만 분명히 기억난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다 새벽에 기차역에 내려서 시외버스를 탔나보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무작정 내리니, 호객 행위를 하러 나온 민박집 할머니가 놓치지 않고 우리를 이끌었다. 할머니를 따라가서 묵었던 커다란 방의 집채만 한 모기장, 집 앞 바위투성이 바닷가, 더위, 여고생들의 말다툼이 이어졌다. 추억의 밤기차는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우리는 예기치 못한 여행의 속살을 만져보았다.
여전히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아무런 풍경도 볼 수 없는 밤기차에 실망하고서도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유럽 여행을 가서 또 밤기차를 탔다. 이번에는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서유럽 철도에서 거의 사라진 폐쇄형 열차가 아직 많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처음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에서 밤기차를 탔다. 세비야에서 저녁 7시쯤 기차를 타면 이베리아를 가로질러 아침 일찍 바르셀로나에 도착한다. 탈진할 만큼 더운 날씨에 샌드위치를 사서 기차를 타려고 했지만 역 안 매점에는 먹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쪽 자리 3명, 저쪽 자리 3명, 여섯이 마주 앉는 철도 객실에 들어가니 사자 갈기처럼 빛나는 금발 머리에 나보다 족히 20cm쯤은 더 큰 신장을 가진 남자애 4명이, 역시 내 등짝의 2배쯤 되는 배낭을 놓고 앉아 있었다. 12시간 동안 같은 객실에서 쪽잠을 청해야 할 이 스웨덴 남자애들은 밤 10시쯤 되자 샌드위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오후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지치고 배가 고팠던 탓에 나는 그들이 지금도 야속하게 느껴진다. 아직 한국에서는 드물더라도 길 가던 할머니가 먹을 것을 하나 건네주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냐고 묻는 대신 나는 객실 밖으로 나와 식수가 아니라는 경고에도 열차 화장실 개수대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니까 나는 이날 내가 실은 작고 소심한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처음 생각했다.
기차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최초의 근대적 운송 수단이다. 서구인이나 조선 사람이나 기차를 타고 처음 장거리 여행을 떠났고, 이국을 발견했다. 1820년대 영국과 프랑스, 미국은 철로를 가설하고 증기기관으로 물자와 사람을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리옹역과 파리 북역 등 파리 시내의 여러 기차역은 파리의 수장 오스만이 강력한 행정력으로 중세도시 파리를 대대적으로 정비했던 19세기 중반 최신의 기술로 재정비됐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그린 인상주의 화가들 역시 모더니티의 상징인 기차의 이미지에 매료됐다. 해돋이 인상, 수련, 루앙 대성당 연작으로 유명한 모네는 1877년 후반 철제 골조와 유리를 사용한 파리 북쪽의 생라자르역을 그린 8편의 연작 회화를 인상주의전람회에 출품했다.
조선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더 복잡했다. 기차는 개화의 실상을 알려주는 큰 학교(<독립신문> 1896년 7월2일)였지만 강제와 침탈의 상징이기도 했다. 경의선이나 경부선 선로 가설 과정에서 철도 재료와 철도 용지, 노동력 등의 수탈이 진행된 탓이다. 그래도 식민지 조선 땅에도 여행의 바람은 불었다. 1900년대 초입 기차여행의 경험을 적은 기행문들을 보면 조선 사람들 역시 기차의 대단한 속도에 경탄한다. 이들은 지긋이 바라볼 기회를 주지 않고 번쩍번쩍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어지러워하다 이내 실내로 고개를 돌렸다. 책을 읽는 데 이르지 못한 이들은 객차에 앉아 있던 사람들끼리의 데면데면함에 어색해한다.
이방인을 만나는 도시인의 신경과민
이제껏 내 스스로 걷거나 사람이나 동물의 힘을 빌려 이동하던 사람들은 지치는 기미 없이 질주하는 기차에 감탄을 했지만 기차나 기차로 상징되는 기술 진보가 배태하는 일상의 요동 역시 감내해야 했다. 낯선 것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일에 신경이 곤두선 것은 조선 사람뿐이 아니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의 대도시를 경험한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길거리에서 이방인과 마주치고도 태연자약을 연기해야 하는 도시인이 겪을 신경과민에 대해 적었다.
작가 에밀 졸라는 인상주의 전람회에서 모네가 그린 기차역과 기차의 모습에 압도된다. 에밀 졸라는 이후 증기기관차 기관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야수인간>을 집필했다. 자신이 모는 기관차를 여인보다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주인공 랑티에는 어린 시절부터 격렬한 살인 충동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철도회사의 일상을 꼼꼼하게 기록했던 졸라의 원작 소설을 각색해 만들어진 1930년대 영화에서 시종일관 증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기차는 마치 한 마리의 야수처럼 그려진다. 기차는 근대적 회사조직에 의해 철저하게 관리되고 운행됐지만 사람들에게는 언제 돌변할지 모를 흉포한 괴물처럼 여겨지기도 한 것이다. <야수인간> 이외에도 20세기 전반기의 숱한 서구 영화들은 근대인들이 기차에 대해 품고 있던 공포심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동유럽을 가로지르던 열차 속 프랑스 여학생이 유럽 여행 중인 미국 남학생과 열차 식당칸에 앉아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나누고는 같은 날 오스트리아 빈의 밤거리를 함께 거니는 1990년대 영화가 있는가 하면(<비포 선라이즈>, 1995), 그보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의 주인공들은 열차 속에서 속내를 알 수 없는 살인범을 만나거나,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 살인 청탁을 받기도 한다(<열차 안의 낯선 자들>, 1951).
이제는 올라타지 못할 떠나는 기차여
1941년 히치콕이 연출한 영화 <의혹>은 바로 이 열차 속 만남의 성격 자체에 대한 의혹을 소재로 삼았다. 부유한 가문의 외동딸이 혼자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재치와 바람기가 넘치는 남자에게 빠진 여자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지만, 이내 남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의심스럽다. 남자의 진짜 정체를 의심하며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어찌할 바 모른다. 사달의 원인은 결국 기차였다. 영화 <의혹>은 낯선 곳과 낯선 사람을 경험하는 것이 점차 일상화된 시대의 두려움을 반영한다.
20세기 초반의 철도여행기를 남긴 이들은 기차라는 기계가 인간의 감각을 훼손한다고 불평했다. 기차의 빠른 속도와 유리 창문 탓에 도통 바깥의 풍경을 뚜렷하게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도보여행에서 맛보던 여정의 기쁨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활동사진의 이미지가 막 보급되던 시절, 아직 움직이는 이미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불평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비관적인 불평에는 귀담아들을 교훈이 있다. 인간의 속도를 압도하는 기계의 매개 탓에 인간이 이곳과 저곳 사이의 중간지대를 스스로의 몸으로 감지할 기회를 잃는다는 아쉬움 말이다.
인간은 기차와 기차역에도 인간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징표들을 새겼다. 100년 전의 사람들은 제시간이 되면 재깍재깍 떠나는 기차가 한없이 무정하다고 적었지만, 20세기 내내 뒤늦게 맘을 바꾼 연인은 기차에서 뛰어내렸다. 이제 거의 다 자동문으로 바뀌어버린 열차에 우리는 전속력으로 뛰어 올라타지 못하더라도. 더구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창밖의 구름이나 추상적인 요철로 변한 지형, 내 앞의 조그만 모니터뿐인 비행기의 여정이 불만인 이들에게 기차는 색이 있고 모양이 있는 바깥세상의 시각적 단서들을 전하지 않는가.
1년 대부분을 공항, 비행기, 출장지에서 보내는 해고 전문가의 이야기를 다룬 <인 디 에어>라는 영화가 있다. 이 도시 저 도시의 해고 대상자를 만나 깔끔한 해고 협상을 하는 것이 주인공의 임무다. 누구에게도 감정이입할 것 없이 협상을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해고 전문가의 자질이다. 땅 위에 버티고 있는 고요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끔찍하게 여기는 이 남자는 불확실성이 모든 고정성을 삼켜버리는 ‘액체 시대’를 살고 있다. 이자는 남녀 사이의 사적 관계이건 고용주와 고용인의 공적 관계이건 지속적인 관계란 하나같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용하다고 믿는다. 비행기는 영화 속에서 이 사내의 현대성을 요약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100년 뒤의 우리는 다시 21세기 비행기에서 먹던 기내식의 다채로움에 대해 추억할지도 모른다. 검문대를 통과하며 들이켜 비웠던 음료수 이야기를 하면 도무지 검문·검색과 음료수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의문을 표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입석이어야 낭만적?
으뜸가는 기술 진보의 상징이었던 기차가 여고생의 동해 바다- 밤기차와 같은 추억의 기호가 된 것은 고속도로와 마이카 시대를 거쳐 항공여행, 나아가 저가항공의 시대에 이른 탓이 크다. 성인이 되어서 마이카 시대를 맞이한 한국의 장년층, 아직 손으로 창을 들어올릴 수 있었던 구식 열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본 중년층,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의 이름을 빌린 완행열차를 기억하는 세대에게 기차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지난 시절의 아련한 이미지를 불러온다. 영화 <초록 물고기>의 막둥이가 기차에서 주웠던 붉은 스카프처럼. 협궤열차가 사라졌고 비둘기호가 사라졌다. 평화보다 통일보다 중요한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만 남았다. 다시 무수한 관광열차가 생겼다. 한국철도공사는 25살 미만(이후 28살로 조정)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여름철과 겨울철 일정 기간 일부 열차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철도 패스를 판매한다. 입석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탓에 이용자가 몰리는 인기 구간의 열차는 안전사고가 우려될 정도란다. 값싼 자리를 내주면서 입석으로 여행을 해야 낭만이 있을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여행길의 낯선 이보다 출근길의 친근한 광고가 더 위험한 법이다.
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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