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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24 10:46 수정 : 2015.02.24 14:31

2월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가는 길, 설원이 이어진다. 앞선 일행이 다져놓은 등산로를 벗어나면, 1m 깊이의 눈 속으로 빠져버린다. 네팔/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구본권 기자의 ‘언플러그드 여행기’-1

▶ 2015년 1월30일부터 2월9일까지 11일 동안 네팔 안나푸르나 지역으로 트레킹을 다녀왔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스마트폰과 SNS 환경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인터넷 없는 곳으로의 트레킹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이제 어디로든 어렵지 않게 떠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20세기 대중사회는 이전까지 특권층의 전유물이던 많은 것을 보통 사람들도 누릴 수 있게 만들었다.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소품들을 이용해 작품 활동을 한 미국의 미술가 앤디 워홀은 20세기 대중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마시는 코카콜라는 내가 마시는 것과 같은 콜라다.” 대가만 치르면 누구나 동등한 것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대중사회의 미덕이다.

대표적인 게 여행이다. 지난 시절 선택받은 계층이나 모험심이 강한 이들에게만 허용되었던 여행은 이제 어느 정도의 비용과 시간만 감당하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더욱이 숱한 개척자들과 다양한 여행상품 덕분에 우리는 이제 초기 여행자들이 무릅써야 했던 위험을 감수할 필요없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호시탐탐 멋진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며 형편만 되기를 기다리는 청춘들도 적지 않다.

네팔/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여행지와 여행자도 늘어났지만, 여행에 관한 직간접적 정보도 풍부해졌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과거처럼 걱정스럽고 위험하지 않은 세상이다. 인터넷에서 지역별 여행동아리 또는 누군가가 다녀온 뒤 정리한 여행정보를 찾아보면 전세계 여행지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누군가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나, 상세한 루트와 여행정보가 올라 있지 않은 곳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다. 인터넷 덕분에 여행은 편리하고 안전해졌으며, 그로 인해 여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전세계 다양한 곳으로 여행지가 확장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여행에 관한 새로운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여행지와 여행자가 다양해지는 것에 비해, 여행지에서의 사람들의 모습이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이후에 두드러진 현상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바라본, 마차푸차레가 석양에 물드는 모습. 네팔/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국내외 어느 여행지를 가더라도 셀카봉이 널렸다. 국내는 물론, 나라밖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이용습관이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세계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통신망과 스마트폰, SNS에 의존하고 있는 디지털 세대의 생활방식이 장소를 옮긴다고 단절되지 않는다. 무제한 데이터로밍 서비스와 곳곳의 무선인터넷(WiFi) 덕분이다. 요즘 여행자들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스마트폰으로 SNS와 문자메신저 앱을 사용한다. 국내에 있을 때보다 속도가 느릴 뿐 크게 다를 게 없다. 여행지에서도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사연과 사진을 주고받는다.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은 떠나온 게 아니다. 스마트폰이 우리를 늘 연결된 상태로 만들어주는 까닭에, 멀리 떠나도 연결이 끊어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며 다수의 여행객은 관광 명소에서 멋진 포즈의 사진을 찍어 간직하거나, SNS에 공유하는 것을 여행의 주된 즐거움이자 목표로 여기기도 한다. 페이스북에서 이용자들이 느끼는 가장 흔한 정서는 지인들이 올린 여행사진 등으로 인한 ‘부러움’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다.

모처럼 간 해외여행,

지인들과 문자·전화·사진 공유뿐

‘한국에 있을 때와 뭐가 다르지’ 싶다면…

통신이 되지 않는 곳으로의 탈네트워크 여행

여행은 본디 위험하고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여행(travel)이란 단어의 어원은 수고로움과 고통을 뜻하는 단어(travail)다. 그러던 여행이 더 이상 위험하고 수고롭지 않은, 즐거운 ‘관광’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교통과 숙박업이 발달하면서 오늘날의 대중적 여행산업이 만들어진 덕분이다. 19세기 영국의 토머스 쿡은 오늘날과 유사한 ‘준비된 관광상품’을 만들어,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까지 명성과 인기가 이어져오고 있다.

환호만큼 반발도 있었다. 당시의 저명한 영국 예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열차 여행은 여행으로 간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열차여행은 우리를 목적지로 보내는 것이고 이는 우리를 마치 소포로 취급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고 폄하했다. 여행은 일종의 모험이자 고생이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었는데, 그렇지 않게 된 것에 대한 19세기식의 비판이다.

오늘날도 비슷하다. 여행은 더 가까이 있지만, 여행의 본질은 어쩌면 더 멀리 달아난 게 아닌가? 21세기에 그 원인제공자는 열차가 아니라,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다.

여행이 비단 새로운 풍경을 보고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공간과 생활방식으로부터 떠나 낯선 경험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여행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스마트폰을 휴대하지 않거나, 전원을 끈 채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또하나의 방법은 아예 통신이 되지 않는 곳을 여행지로 선택하는 것이다. 지구상 어디로 가면, 통신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을까? 사하라 사막, 아마존 밀림, 스발바르제도....극지와 오지가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쉽게 떠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산간 마을을 지나서 이동하는 길을 이용한다. 네팔 주민들이 생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마을길(대부분 돌계단이다)을 걸어서, 마을과 집들 사이사이로 걸어간다. 네팔/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이런 곳에 비하면 히말라야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히말라야에선 무제한 데이터로밍은커녕 통신 자체가 불가능한 지역이 대부분이다. 전력사정 또한 열악해, 전등 이외의 전기사용은 어렵다. 일차적으로는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도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누구나 발로 걸어서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기본 환경이다. 바퀴와 전기·통신과 이별한, 언플러그드(unplugged) 여행이다. 또한 히말라야 트레킹은 최소 열흘 이상의 일정을 필요로 한다. 열흘가량 외부와 단절된 채 한발한발 설산을 향해 수고롭게 걸어가면서, 모처럼 자유로이 상념에 빠질 수 있는 드문 곳이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탈네트워크 여행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고급 취향’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해 7월 통신을 이용할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새로운 여행 트렌드를 소개한 바 있다.(▶기사 보기 : Unplug to Unwind)

이 기사는 영국인 사진작가 가족이 100킬로미터를 이동해야 인터넷이 연결되는 히말라야 깊은 산속에서 일주일 휴가를 보내는 여행상품에 1인당 500만원 넘게 지불한 사연을 소개했다. 늘 연결된 일상과 달리 모든 연결이 단절된 채 자연 속에서 가족끼리 독특한 경험을 나눈 여행에 대한 만족을 다뤘다.

타다파니 로지에서 만난 독일 자일란트에서 온 빈프리트 게페르트(60, 오른쪽). 그는 16년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첫 트레킹을 간 이후 이번에 4번째 같은 코스로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는 16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로지도 늘어나고 전기도 들어오고 샤워도 가능해지면서 여행 편의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네팔/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우리는 늘 연결된 채 살고 있지만, 때때로 연결이 끊긴 삶에서 오는 여백과 그 때 함께 오는 지루함과 상념을 그리워한다. 앞으로 연결이 더욱 심화될 것을 고려하면, 일시적 단절에 대한 그리움도 커져갈 것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도중 타다파니(2680m) 로지에서 만난 독일 자일란트 출신의 빈프리트 게페르트(60)는 “이번이 8번째 네팔 방문이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4번째 트레킹”이라고 뽐냈다. 그는 “자연은 변함없이 아름답고 음식과 사람들도 여전히 훌륭하지만 1989년 초행 때는 지금처럼 로지가 많지 않았고 전기나 샤워시설은 아예 없었다”고 지난 16년간의 변화를 말해줬다.

히말라야 산 속도 변화를 피해지 못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지프를 이용해 갈 수 있는 히말라야 지역이 확대되고 있으며, 통신과 전기의 사정도 좋아지고 있다. 네팔 현지가이드 로샨 마난드하는 “네팔정부가 1~2년 안에 뉴브리지(1340m)까지 길을 내고 수력발전시설을 만들겠다고 발표해, 앞으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의 트레킹 일정이 크게 단축되고 현저하게 편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히말라야로 관광이 아닌, 언플러그드 여행을 꿈꾸는 이들은 계획을 서두르는 게 나을 듯싶다.

네팔/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3210m)에서 바라본 동틀녘의 안나푸르나 산군. 기압의 변화로 인해 봉우리마다 기묘한 구름이 수시로 만들어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네팔/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 기사 더 보기 : 구본권 기자의 ‘언플러그드 여행기’-2

▶ 기사 더 보기 : 구본권 기자의 ‘언플러그드 여행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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