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16 21:10
수정 : 2015.01.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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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한-몽골 시인대회’에 참가한 한국작가회의 일행과 함께 몽골을 방문한 이시백씨가 우문고비의 사막 캠프에서 초원의 풍광을 즐기고 있다. 오수연 소설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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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몽골 바이러스 감염자’ 소설가 이시백
10년새 10번 몽골 여행 다녀와
유목 체험·밤하늘 별 바라보며
‘막막한 아름다움’ 매력 빠져
‘당신에게, 몽골’ 에세이집 내
소설가 이시백(59·사진)씨는 문단 안팎에서 ‘몽골 바이러스 감염자’로 유명하다. 2003년부터 10여년 사이 10차례 150일 가까이 몽골 초원을 누볐다. 올여름에만 7월과 8월 두 차례 문인 답사단을 이끌고 다녀왔다. 이제는 고비사막에 게르 주막을 열고 유목민들과 더불어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몽상’을 실제로 실현할 수도 있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래서 자칭 난치병 수준인 몽골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려 동행할 감염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먼저 지난 7월 사진가 이한구씨와 손잡고 <당신에게, 몽골>(꿈의지도)을 펴냈다. 유목민의 집 ‘게르’, 몽골의 술 ‘아이락’ 등 몽골을 이해하는 39가지의 길을 담은 첫 여행 에세이집이다. 또 한가지는 2003년 첫 교류 이후 올해 11년 만에 재개된 작가회의의 ‘한-몽 시인대회’를 정기적으로 이어가도록 길잡이 노릇을 할 작정이다. 이를 계기로 독자들과 함께하는 몽골 문화기행 프로그램도 구상중이다.
“몸은 돌아왔으나 영혼은 두고 온 듯합니다. 마누라도 ‘껍데기만 돌아왔다’고 혀를 차지요. 가을에 영혼 찾으러 다시 가렵니다. 이번엔 혼자서요.”
도대체 작가의 영혼까지 사로잡는 몽골의 치명적 매력은 무엇일까? 지난 추석 연휴에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와 유가족 지지 단식농성’에 동참하고 있는 작가회의의 광화문 광장 천막에서 그를 만나 들어봤다.
“한마디로 황막함이라고 할까요. 달의 표면처럼, 아무것도 없는 듯한 막막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바라다보면 절로 무한세계로 빠져들며 자아랄까, 본성을 깨닫는 특별한 경험을 할 때도 있고요.”
그는 몽골에 간다면 반드시 고비사막을 말을 타고 달리며 유목 체험을 해봐야 그 매력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고 추천한다. 2003년 첫 여행 때 수도 울란바토르에만 머문 까닭에 그 자신 적이 실망했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텅 빈 평원에 앉아서 달도 구름도 없이 맑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나면, 10명에 7~8명은 ‘몽골 바이러스’에 감염되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빨리빨리’에 쫓기듯 쉴 틈 없이 살아온 활동가일수록 더 깊이 빠져듭니다. ‘일탈의 중독’인 셈이죠.”
그의 에세이집 ‘당신에게…’에는 몽골에서도 유명한 한국인들의 조급증 이야기가 나온다. “몽골인들은 말한다. 하루 300㎞를 달리는 몽골 기마병보다 더 빠른 사람은 한국 관광객이 유일하다’고들. 그러면서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초속을 다투며 옮겨다니는 ‘한국적 여행 관습’에 혀를 내두른다. ‘누가 유목민의 후예가 아니랄까봐!’ 수백만 화소의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앱북을 장착한 한국인의 그랜드 투어 탐닉은 유목민보다 더 유목적(?)이다.”
그는 어쩌면 자신의 유전인자부터 몽골, 아니 유목민과 닿아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처음 초원에 갔을 때 만난 유목민의 모습에서 유난히 기골이 장대하고 인상이 강해 ‘이방인’으로 불렸던 친할아버지를 보는 듯 친숙했다. 바로 그가 닮은 외모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기질적으로 타고난 ‘지병’도 몽골에 가면서 치유되는 경험을 했단다. “오래전부터 햇볕을 쬐지 않으면 시들시들해지는 ‘일조 우울증’을 앓아 왔어요. 그래서 겨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런데 광활한 초원에 가면 씻은 듯이 사라지곤 합니다.”
또 한가지 우연 같은 필연은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가 울란바토르와 자매도시란 점이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1988년 <동양문학>으로 등단한 그는 일찍이 17년 전 ‘낮에는 씨를 뿌리고, 밤이면 책을 읽겠다’는 꿈으로 남양주시 수동면 광대울의 후미진 골짜기를 찾아들어가 정착했다. 그런데 바로 직후인 98년 남양주시가 자매결연을 맺고 기념으로 몽골문화촌이라는 테마공원도 개장한 것이다. 그 덕분에 그는 이곳에 상주하는 전통예술공연단의 마두금 연주로 몽골 향수병을 달래곤 한다.
그동안 그는 장편소설 <사자클럽 잔혹사> <나는 꽃도둑이다> <종을 훔치다>, 소설집 <갈보콩> <누가 말을 죽였을까>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 등등 상당한 ‘창작 농사’도 지었다. 하지만 몽골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담은 작품은 아직 없다.
“유목민 딸의 한국 이주기 같은 실화들을 소재로 한 소설 작업을 구상중입니다. 정말로 몽골에 주막을 열게 되면 본격적으로 쓸 생각입니다.”
이번에 나온 에세이집이 여행 안내서 수준이라면, 앞으로 몽골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도와줄 본격 여행기도 펴낼 계획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처음엔 농담처럼 했던 ‘게르 주막’의 꿈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좀처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텃밭 농사는 올해로 접었다. 가족들에게도 이미 유언 아닌 유언을 해두었다. “부모님들 세상 떠나시고 나면 고비로 옮겨 갈 터이니 죽으면 고비사막에 뿌려달라. ‘풍장하듯’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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