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02.18 19:57 수정 : 2014.02.18 19:57

마른 고추, 숯(백탄), 대추 그리고 엄나무.

[나는 농부다] 숨쉬는 제철밥상

한 해 살림의 시작인 장을 담갔다. 음식 책을 쓸 때마다 장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는데도, 새로 쓸 게 또 생겼다. 그동안은 장 담글 때 메주 위에 황태를 눌러 넣곤 했다. 황태가 감칠맛이 있어 간장도 된장도 맛있어진다. 또 뻣뻣한 황태로 메주를 눌러놓으면 메주가 소금물 위로 뜨지 않아 좋다. 하지만 일본 원전 사태 뒤, 명태가 방사능 식품으로 꼽히니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문이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더라. 지난해 우연히 엄나무를 넣으면 좋다는 소리를 듣고 따라 해보았다. 그랬더니 은은한 향이 장과 잘 어울린다. 올해도 다시 엄나무를 넣고 담갔다.

장 담그는 건, 간단히 말해 소금물에 메주를 띄우는 일이다. 그렇게 쉬우면 누구나 할 수 있겠다고? 그렇다. 우리가 자라면서부터 먹어온 장이 얼마나 많은가. 안 먹어본 건 못 만들어도, 맛을 알면 그 맛을 낼 수 있다. 자식 낳아 기르듯, 한번에 다 알 수는 없고 그때그때 닥쳐가면서 배워나가면 된다. 손수 담그면 좀 서툴더라도 믿을 수 있는 장이 한 항아리 생긴다.

‘슬로푸드’ 하는데 우리네 장이야말로 슬로푸드 그 자체다. 그러니 당일에 이것저것 하지 말고 며칠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자. 메주는 미리 깨끗이 씻어 볕에 말려놓고, 간수 빠진 소금으로 소금물을 달걀이 동동 뜰 정도(염도 17~18%)로 풀어서 이삼일 잠을 재운다. 장은 발효식품이라 항아리에 담가야 제맛이니 항아리 역시 깨끗이 씻어 말려놓는다. 전부터 장을 담가오던 항아리가 가장 좋고, 김치를 담갔던 항아리는 피하시라.

장 담글 때 함께 넣으면 좋은 것들이 있다. 마른 고추, 숯(백탄), 대추 그리고 엄나무. 만일 엄나무를 긴 것으로 구한다면 금상첨화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메주를 눌러줄 다른 것도 마련하자. 메주가 소금물 위로 둥둥 뜨면 그 부분에 골마지가 끼기 쉽기 때문이다. 돌로 누르면 안 될까? 안 된다. 메주는 위로 뜨고 돌은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다. 대나무나 잣나무 가지가 좋지만, 이걸 구하기 어려우면 집에 있는 나무 물건 가운데 마땅한 걸 찾아보자.

장은 해가 쨍 뜨는 맑은 날 아침에 담근다. 미리 준비해 놓았다면 실제 장 담그는 건 10~20분이면 다 된다.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나뭇가지로 메주를 누른 뒤, 소금물 웃물을 항아리에 얌전하게 따라 붓는다. 그다음 고추, 숯, 대추, 엄나무 줄기를 장항아리 위에 띄우면 끝! 남은 소금물은 작은 항아리에 따로 담아놓고, 장항아리 물이 졸아들면 보충한다.

앞으로 40여일. 기다릴 일이 남았다.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햇볕과 바람은 주고 비와 벌레는 피해야 한다. 유리뚜껑을 씌우면 간편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들여다보며 장이 발효되어 가는 걸 지켜보자. 올해 장맛은 어떨까? 기대된다.

장영란 <숨쉬는 양념·밥상> 저자 www.nat-cal.net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