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늘어가는 EBS ‘세계테마기행’
땅빛깔 닮은 토박이와 섞여삶의 내음 수필처럼 엮어내 휴가철 맞아 멀리 떠나고 싶어도 지갑이 가볍거나 일이 밀려들기 일쑤라면, 회삿돈으로 가고 싶은 데 다 가는 여행 프로그램 피디가 부러울 만하다. 그런데 여행 피디라고 속이 다 편할까? 화려한 볼거리, 여행정보만으로 시청자가 만족하던 시대는 1990년대로 막내린 지 오래다. 사람들이 못 가봤을 곳? 그 또한 많지 않은데다 오지라면 한국방송 <도전! 지구탐험대>가 벌써 훑고 갔다. 여행 수필처럼 주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도록 1인칭 시점으로 꾸려보려니 한국방송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2005년부터 하고 있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깊이 있게 파 볼까? 특집 기획물들이 빼곡하다. 이들 매력을 고루 섞어보면 어떨까? 마니아를 모으고 있는 교육방송 <세계테마기행>(월~목 저녁 8시50분)이 좋은 예일 듯하다. <세계테마기행>은 주인공을 내세워 그의 시점으로 한 나라를 40분물 4부작,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다룬다. 게시판에는 “평생 있다는 것도 모르고 넘어갔을 곳을 (제작진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 등의 소감이나, “에스토니아, 쿠바도 가 달라” 등의 여행지 추천도 올라온다. 무엇보다 <세계테마기행>이 시청자를 사로잡는 힘은 그곳 땅 빛깔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 땀냄새를 맡을 정도로 다가가는 대리 체험을 선사하는 데 있다. 시청자들은 눈치도 빨라 주인공이 주민들과 충분히 섞여 그만큼 더 고생했던 ‘페루’, ‘요르단’ 편 등에 더욱 뜨겁게 반응했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멕시코’ 편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여행생활자>의 저자 유성용씨는 스페인에 끝까지 저항한 따라오마라족을 만나려고 태평양 횡단열차를 탔다. 그는 에두아르도(75)라는 옆자리 노인에게 여행책자를 뒤져가며 더듬더듬 “제 이름은 ‘맵다’입니다”처럼 말도 안 되는 스페인어로 말을 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화가 진행됐다. 그는 따라오마라족 농사도 잠깐 돕고 아이들과 공도 찼다. ‘브라질’ 편을 만들고 직접 주인공도 된 탁재형 피디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유명한 예수상을 보러 올라가는 열차 안에서 카메라 대신 탬버린을 쥐고 흔들었다. 삼바 밴드가 등장해 춤판을 벌이더니 이를 찍는 탁 피디한테 “이런 판국에 촬영은 무슨 촬영이냐”라며 쥐어준 것이다. 그는 축구 응원단에 휩쓸려 독주를 마신 김에 군중과 함께 막춤도 춘다. 스케줄 어떻게 바뀔지 몰라
돌발풍경 돌발사건 “으이구”
보자마자 친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히든 아일랜드’ 편(28일 방송)을 만든 함정민 피디는 자전거 여행가 이창수씨를 주인공 삼아 베트남, 필리핀 섬 세 곳으로 떠났다. 필리핀 섬 마을 캄보하트 사람들은 수줍어 앵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 카메라 감독은 주민들과 축구를 했고 피디와 주인공은 동요도 불렀다. 여정을 계획하지만 어떻게 바뀔지 제작진도 장담하지 못한다. ‘브라질’ 편에서 탁 피디는 가이드 마르셀로의 선한 눈에 반해 예정에 없던 작은 시골마을 코룸바로 들어갔다. 마르셀로의 고향인 그 마을에서 탁 피디는 마르셀로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들까지 죄다 만난다. 쇠락한 고향에선 취직하기 힘든 탓에 가족과 떨어져 가이드 생활을 하는 마르셀로가 예정보다 빨리 떠나겠다고 하자 아내가 화를 냈고 탁 피디는 부부 싸움도 말렸다. 한 나라당 피디, 주인공, 촬영감독 3명이 팀이 되어 15~20일 찍어 만드는데, 이런 예상치 못한 샛길뿐 아니라 그 나라의 특징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장소, 시청자들이 쉽게 볼 수 없는 풍경까지 담아야 하니 제작진은 고차 방정식을 푸는 셈이다. 제작진은 도시보다는 토박이 모습이 더 많이 남아있는 시골을 찾는다. 함정민 피디는 여행책에 한 줄 소개돼 있던 필리핀의 섬을 2003년에 가본 뒤 이번 ‘히든 아일랜드’ 편에서 다시 갔다. 젊은이와 노인이 70~80명씩 한데 어우러져 음악 없이도 춤을 추던 섬을 잊을 수 없어서다. 그는 그 섬에서 스카이다이빙이 취미인 스위스인도 만났는데, 말을 튼 김에 스위스 여행 계획도 짜봤다. 그렇게 늘려간 외국 친구들이 새로운 경로를 짜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세계테마기행> 안에도 편차는 있다. 시청자에게 생생한 간접 체험을 전하려면 주인공의 독특한 시선이 살아야 한다. <댄서의 순정>을 만든 박용훈 감독은 ‘인도네시아’ 편의 주인공이 돼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발리의 절벽에 섰다. 그는 “<빠삐용>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려고 결심했다”며 “이곳은 발리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성지”라고 읊조렸다. 소설가 김영하, 성석제, 가수 이상은 등 그 나라에 어울리거나 관심있는 인물을 주인공 삼지만 다른 이유들도 있다. 김진혁 피디는 “솔직하게 이야기할 사람, 착한 사람을 데리고 간다”고 말했다. 강행군의 연속이라 지친 주인공이 피디와 얼굴 붉힐 수도 있으니 되도록 착한 사람이 좋다는 것이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함정민 피디가 추천하는
가볼만한 곳과 요긴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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