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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17 19:46 수정 : 2019.09.17 19:50

[짬] 시집 낸 원로 철학자 윤사순 교수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자기 도취죠.”

한국철학계 원로이자 학술원 회원인 윤사순(83) 고려대 명예교수에게 ‘노년의 시 창작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이 뭐냐’고 묻자 한 말이다. “남이 볼 때 별것도 아닌데, 내가 비유해 내놓은 말이나 어법에서 창조의 기쁨을 느껴요. 철학 논문도 칭찬받을 정도로 잘 쓰면 학문적 창조의 기쁨이 있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반응도 느리죠.”

2001년 고려대 퇴임 전까지 시 한 편 쓴 일 없다는 윤 교수는 작년과 올해 잇달아 <길벗> <선비>란 이름의 시집 두 권을 냈다. 그는 81살에 시작한 시쓰기 체험의 소중함을 두고 “평생 지녀 오던 다 낡은 ‘흑백의 철학노트’ 갈피에 분명 ‘오색이 화사한 컬러사진’ 한 장을 끼워 넣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역 근처 카페에서 윤 교수를 만났다.

“어려서부터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퇴임 뒤) 강의도 안 하고 다급하게 쓰고 싶은 책은 다 냈으니 여가를 이용해 옛날부터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가 쓴 시들엔 60년 가까이 세상의 이치를 파고든 철학자의 깊은 사유가 스며있다. ‘사람사이-인간’이란 시에선 인간의 두 번째 한자인 사이 간(間)을 두고 “사이란/ 썩 가깝게도 썩 멀리 할 수도 없는/ 안개 같은 거지만 늘/ 산울림 되어 오는 내 본래의 그림자인 듯”이라며, 사람을 인간이라고 명명한 뜻을 새겼다. ‘꿈의 형이상학’에서는 일시의 유한과 영원의 무한이라는 양립불능한 이분법을 뛰어넘을 길을 ‘꿈꾸는 힘’의 생명력에서 찾았다.

윤 교수가 작년과 올해 펴낸 시집들.
자연 풍경이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유학의 인본주의적 가치나 자연과 사람은 하나라는 사유 아래 따듯하게 끌어안는 시들도 감동을 준다. 그는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고 세상을 뜬 국밥집 할머니를 두고 이렇게 썼다. “국밥 같던 분/ 평생의 짐 가난 내려놓고/ 무쇠 솥 위로 오르는 김처럼/ 스러지듯 하늘나라 오르셨단다”(‘국밥집 할머니’ 중)

그는 1975년 퇴계 이황의 사상을 다룬 연구로 모교인 고려대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을 전공한 국내 1호 박사였다. 퇴계 이황이 존재와 당위를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했음을 입증한 이 논문은 세계적인 유학자 뚜웨이밍 등의 극찬을 받았다. 그가 2012년 펴낸 <한국유학사-한국유학의 특수성 탐구>(전 2권, 지식산업사)는 2년 전 중국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그는 철학을 전공한 학술원 회원 다섯 중 유일한 한국철학 전공자이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윤 교수는 1957년 또래보다 3년 늦게 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갔다. 서울 경복고 2학년 때 팔과 다리가 마비되는 다발성 신경염을 앓아 3년간 학교를 쉬었단다. “3년 만에 지팡이를 짚고 학교에 갔더니 장기 결석으로 퇴학 처리가 되었더군요. 그때 후유증으로 평생 불편한 다리로 살았죠. 대학 4학년 때 맞은 4·19도 참여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죠.”

노년에 발견한 시작의 기쁨에 대해 더 들었다. “시는 함축적이죠. 여러 말을 지껄이지 않고 한두 마디로 압축해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요. 이런 표현이 상대에게 일정한 감흥을 주면 소통이 됩니다. 딱딱한 논문이 아니더라도요. 또 시는 짧은 한 두 마디 말로 삶에서 느끼는 여러 문제의식도 보여줄 수 있어요. 그래서 재밌어요. 철학은 합리적 정합성에 맞게 발표해야 하잖아요.”

2집 제목이 <선비>다. 같은 이름의 시엔 이런 구절이 있다. “원래 사지와 몸통의 힘 다 빼면서/ 머리를 한껏 더 푸는 게/ 선비 사자니라.” 그러니까 “머리만 굴리는 게 아니라 사지 몸통까지 다 움직여야 선비”라는 말이다. “자기 전공을 가지고 행동하는 지식인이 바로 선비이죠. 유교의 인간상 중 선비가 오늘날 도움되는 인간상이 아닐까 해서 시로 표현했어요. 선비는 관념의 유희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독서인이고 지식인이죠. 그들은 국가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 목숨을 걸고 자기 할 일을 다 합니다.”

옛 선비들에게 시 창작은 삶의 일부였다. 최고로 꼽는 시를 묻자 율곡 이이가 8살 때 지었다는 ‘화석정’을 꼽았다. “율곡의 시는 대단해요. 재능이 있었죠. 그의 고향인 파주 임진강가 화석정에 올라가면 이 시가 있어요. 어린 나이에 ‘산이 외로운 달을 토해내니/ 강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도다’ 같은 비유를 했다니 대단합니다.”

2001년 고려대 퇴임 철학저술 몰두
“책 다 냈으니 어릴적 꿈 시 쓰고파”
지난해 ‘길벗’ 올해 ‘선비’ 2권 펴내
“비유 어법에서 창조의 기쁨 느껴”

불교·무속까지 ‘한국철학사’ 집필중
“오늘 문제 해법 찾는 ‘신실학화’ 제안”

그는 지난여름부터 <한국철학사> 집필에 힘쓰고 있다. “유학에 더해 불교와 무속신앙까지 포괄하려고요. 욕심 같아선 내년 봄까지는 끝내고 싶어요. 우리 스스로 문화국이라거나 4천년 역사라고 자랑하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한국철학사 한 권 없어요. 오래전 철학자 20여명이 공저한 한국철학사는 있지만 이 책은 체계가 느슨하고 유기적 관련이 부족합니다. 대학생 이상의 사회교양인이나 지식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쓰려고 합니다. 교수 시절 한국사상사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깊이 들어가려고 해요.” 한국 최고의 사상가가 누구냐고 하자 먼저 원효를 이야기했다. “불교는 단연 원효이죠. 한국철학사에서도 원효에게 3개 장을 할애했어요. 가장 긴 분량이죠. 유학보다 불교가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탓도 있어요. 유학자 중 제가 최고로 꼽는 퇴계나 율곡, 다산도 1개 장만 쓰려고 합니다. 원효 저술 <이장의> <십문화쟁론> 등을 살펴 그의 번뇌, 화쟁, 일심론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윤 교수의 저술 <한국유학사>와 재작년 중국 인민출판사에서 나온 중국어판 <한국유학사> 표지.
그가 쓴 <한국유학사> 상편은 기원전 2세기에서 18세기 중기까지 다루고 하편은 탈성리학적 실학사상의 선구자인 홍대용에서 시작한다. 18, 19세기 실학사상가들과 항일 의병을 이끈 위정척사 유학자들의 생애를 그만큼 비중 있게 다뤘다는 얘기다. 유학사 서술에 항일 민족주의 관념이 강하게 배어있다고 하자 이렇게 답했다. “제가 일제 조선총독부 관리이자 어용학자인 다카하시 도루(1878~1967)가 비밀리에 총독부 자금을 받아 작성한 식민사관 논문을 처음 찾아 1976년에 반박 논문을 썼어요. 다카하시는 그 논문에서 조선 민족은 사상적 독창성은 없고 사대성과 분열성만 있다고 했죠.”

그는 유학이 가야 할 길로 ‘신실학화’를 제시했다. “새로운 유학이 되어야죠. 오늘의 문제를 문제 삼아야 합니다. 통일을 지향하기 위해선 자유와 평등이 다 필요해요. 둘 다 공존해야 합니다. 유학자들은 공존의 근거를 제시해 공존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유학자들의 과제이죠.” 이런 말도 했다. “성리학을 두고 ‘위기지학’이라고 해요. 스스로 인간이 되려는 학문이란 뜻이죠. 요즘 일부 진보 인사들의 도덕성 문제를 보며 정치 이전에 윤리 도덕을 제대로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조선 시대 왕실 예법으로 당쟁까지 했던 예학의 시절에 가장 부패가 없었다고 해요. 당파들이 서로 감시해서죠.”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근대로 가는 길목에서 좌초했다. 다른 길은 없었을까? “양반 신분제 사회의 한계로 실학자들의 발언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은 게 문제이죠. 반계 유형원(1622~1673)의 개혁 사상을 보면 노비철폐론이 나옵니다. 노비도 양반과 똑같이 하늘이 낸 인민이라고 했죠. 교육도 양반과 상놈이 다 같이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이런 평등사상이 17세기에 나왔어요. 유형원은 세제나 과거제 등 여러 분야에서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하나도 실행되지 않았어요. 정조 이후엔 외척이 득세하면서 왕이 로봇이 되었어요. 성리학자들도 개혁안을 제시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실학의 단초를 이룬 율곡 이이를 보세요. 개혁안을 담아 상소문을 얼마나 많이 올렸습니까. 선조는 율곡을 충신으로 인정했지만 개혁안을 채택하지는 않았어요.”

윤 교수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박사 논문을 화제에 올렸다. “애초 화담 서경덕의 사상을 박사 논문에서 다루려고 했어요. 제가 그 뜻을 밝히자 서양철학을 하신 손명현 교수께서 ‘서경덕은 책이 두 권밖에 되지 않아 논문 쓰는 데 시간이 안 걸릴 것 같다’고 농담을 하시더군요. 그 말에 자극 받아 퇴계로 바꿨어요. 퇴계의 글은 화담보다 20배는 많거든요.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죠.” 말을 이었다. “서양이나 동양철학이나 똑같이 가장 중요한 게 사실과 가치의 문제입니다. 둘이 같은 거냐 다른 거냐를 놓고 소크라테스 이후 서양철학자들이 계속 고민했어요. 그런데 퇴계문집을 보니 우리 조상들이 이미 이 문제를 다뤘더군요. 고봉 기대승이 퇴계를 찾아 이 문제를 논의합니다. 고봉은 나눠서 봐야 한다는 생각이고 퇴계는 분리할 수 없다고 봤어요. 제가 퇴계 글 전체를 다 훑어 사실과 가치를 같이 봐야 한다는 퇴계의 논리를 꾸몄어요.”

사실과 가치의 일치 여부를 따지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사실대로 인정하지 않고 의리가 개입하면 오류가 납니다. 분별 의식이 없는 경우 역사 해석에 혼란이 생겨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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