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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30 19:52 수정 : 2019.04.30 19:58

[짬] 칭화대 인문사회고등연구소장 왕후이 교수

지난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제1회 세계석학 초청 원탁회의’에 참석한 왕후이 교수. 사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제공
비서구적 경험을 기반으로 국제질서와 정치체제를 분석해 온 왕후이(인문학부) 중국 칭화대 교수 겸 인문사회고등연구소장은 “지금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고 첫마디를 시작했다. “그 위기의 핵심에 정당의 대표성 상실이 있다”고 진단한 그는 미국·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양당제·다당제 등 제도를 불문하고 다수의 국민을 대표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정당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소장 서정완) 주최로 지난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제1회 세계석학 초청 원탁회의’에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19세기 중반 이래 동아시아가 걸어온 비극을 역사적으로 통찰하고, 미래를 여는 가능성을 제시하자는 취지로 열렸다.

지난 26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왕 교수를 만났다.

중국 ‘신좌파 그룹’ 대표적 이론가
개혁·개방정책 모순 ‘비판’으로 주목
‘세계 석학 초청 원탁회의’ 참석차 방한

“미 정당들 트럼프 비판뿐 성찰 없어”
“중 90년대 이후 정당의 국가화 현상”
‘일대일로’ 세계화 정책 평가는 유보

왕 교수는 중국 ‘신좌파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이다. 그는 서구 세계사의 관점에서 탈피해 중국 및 동아시아의 경험과 독자성에 주목하고, 중국의 주권·인민·정치 등에 대해 과감한 분석과 발언을 해왔다. 중국 개혁·개방의 모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던 신좌파가 시진핑 집권 이후 국가주의자로 변신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럴수록 현대 중국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질문할 때 이들을 찾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왕 교수는 정당정치의 대표성 원리는 여전한데 국민은 정치적으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모순적 상황, 즉 ‘정당정치의 퇴화’가 현대 정치위기의 본질이라고 분석한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삶의 마디마디 파고든 신자유주의가 조장한 ‘탈정치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이런 정치적 위기의 증상이지만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그를 비판만 할 뿐 ‘왜 그런지 깊이 성찰하지는 않는 것 같다” 고 그는 덧붙인다.

이런 그의 서구 정치위기 진단은 사실 중국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 역시 90년대 개혁·개방 이후 공산당이 과거의 장점이던 인민의 요구에 대한 반응능력과 자기 교정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그는 이런 변화를 정당의 국가화 즉 “국가당으로의 변화”라고 규정했다. ‘정당의 국가화’는 당이 인민과 유리되어 국가기구처럼 관료화하는 것을 말한다. 인민과 소통하지 못한 채 폐쇄적인 결정구조에 갇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의 정치는 서구 나라들처럼 여러 정당간의 집권 경쟁은 존재하지 않지만, 정당이 국민의 요구를 공공정책에 반영하는데 결코 무능하거나 비효율적이 않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는 20세기 초부터 이어진 오랜 혁명운동의 역사에서 체질화한 것으로 “노동자 계급을 위한다는 강한 전통이 있었고, 이 덕분에 정당과 국가기구 사이의 균형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정권 설립 이래 정치적 행위자로서 정당과 국가는 서로 경쟁하면서 각자가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려 노력해 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실 중국 정치에서 국가기구에 대한 공산당의 상대적 독립성, 그리고 엘리트들의 자기부정과 교정의 능력은 왕후이가 세운 ‘중국의 길’ 이론의 요체이기도 하다. 그가 중국의 발전모델의 독자성을 설명하기 위해 던졌던 질문, 즉 “사회주의권은 붕괴했는데 중국은 왜 버텨냈는가”에 대한 핵심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진행된 시장화·금융화로 정당과 국가의 관계는 변했다고 그는 판단한다. 정당이 더는 사회의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특수한 이익집단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됐다는 것이다.

왕후이가 중국의 ‘탈정치화’를 설명하는 ‘정당의 국가화’, ‘정부의 기업화’, ‘정치인의 미디어화, ‘미디어의 정당화’는 사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정치위기의 해법 역시 중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당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여러 사회운동이 공공의 의사 결정과정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가능하면 많은 국민이 직접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도록 정치적 삶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당은 국가의 동맥과 같고 사회참여는 모세혈관”이라며 “정당이 사회참여와 사회운동에 좀 더 개방적이 되어서 동맥과 모세혈관이 재결합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내세운 새로운 국제질서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에 대해 왕후이는 “참가국의 주권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경제와 무역뿐 아니라 교육·문화·인도주의 측면을 중시하는 세계화 이니셔티브”라며 “이상은 훌륭한데 아직은 경제가 지배적인 추진력이 되고 있다”고 유보적으로 평가했다. 지난 27일 폐막한 ‘제2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고립적 일방주의’에 맞서 ‘개방형 다자주의’를 천명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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