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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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 80살인 원로 국문학자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책 두 권을 냈다. <통일의 시대가 오는가> <창조하는 학문의 길>. 지식산업사에서 낸 책 표지엔 ‘3·1운동 100돌 기념 출판’이란 글귀가 있다.
그는 1968년 계명대 전임강사에서 시작해 영남대, 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서울대를 거쳐 10년 전 계명대 석좌교수를 퇴임할 때까지 꼬박 41년 동안 국문학 연구에 헌신했다. 그가 자란 경북 동북부 구비문학 연구에서 출발해 한국과 동아시아, 세계로 문학 탐구의 지평을 넓히며 80권 가까운 책을 냈다. 6만질이 나간 대표작 <한국문학통사>(전 6권)는 우리 문학사 범위에 구비문학과 한문학까지 포괄하며 한국 문학사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특히 ‘창조학’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우리 학계가 외국학문 수입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우리만의 창조적 학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를 12일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 학술원 회의실에서 만났다.
<통일의 시대가 오는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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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학문의 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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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시대 오는가’ 등 책 두권 내 “서경덕 최한기 등 기철학 기반해
남북 공통의 철학적 틀 만들어야
연구교수제로 연구 수준 높여야
중고교, 교과서 없는 토론 교육을” 그는 오랜 지론인 연구교수제를 다시 강조했다. 교육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강의는 임의로 개설하도록 하는 연구교수를 공·사립대에 두고 인건비를 나라에서 지원하자는 것이다. “내가 수십 년 떠들어 연구교수 제도가 생겼는데 기형적입니다. 다 왜곡시켰어요. 분개했죠. 지금 비정규직 연구교수들은 정규직 교수 밑에서 시집살이를 합니다. 교수들 뒤치다꺼리를 해요. 가장 뛰어난 교수가 연구교수를 해야 합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엔 2만명의 연구교수가 있어요. 출근이나 강의 부담이 없죠. 연구교수가 연구 동료 2명을 직접 뽑도록 해 연구 성과를 5년 단위로 평가하면 됩니다. 재원은 기존 교수 연구비를 활용하면 충분해요. 이렇게 하면 학생 수 감소로 줄어드는 교수 자리에 숨통을 틔울 수 있고 연구의 획기적 발전도 꾀할 수 있어요.” 그는 정규직 교수와 강사의 임금 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란 말도 있다. 연구교수제가 비정규직 강사 문제는 물론 이런 임금 불균형을 푸는 모범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 정규직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봉급을 받아요. 강사 급여는 세계 최저 수준이죠. 우리만큼 격차가 심한 나라가 없어요. 내가 파리대학에 있을 때 보니 교수 급여가 우리보다 적어요. 대신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이런 복지는 누구나 다 누릴 수 있죠. 일본 도쿄대를 보니 물가는 비싼데 교수 월급이 우리보다 그리 많지 않았어요. 서유럽은 교수나 청소부 월급이 같아요.” 강사 정책의 기본 방향은 “빈민구제가 아니라 인재발탁”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강사 중에 학문적 역량이나 열정이 있는 사람을 연구교수로 발탁해야죠.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하면 나라도 망하고 그 사람에게도 좋지 않아요.” 중·고교에선 ‘교과서 없는 토론 교육’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하니 이렇게 답했다. “세계적으로 교육을 제일 잘하는 나라가 핀란드입니다. 거기에선 학문적 역량이 우수한 석사 이상 교사에게 교육을 일임합니다. 교사는 문제 중심으로 독서 토론 교육을 하죠.” ‘토론하는 교육은 위험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 않으냐고 하자 이렇게 받았다. “진짜 사회주의 교육에선 토론이 없어요. 중국에서도 가르쳐 봤어요. 중국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것 말고 다른 게 없어요. 교과서에 없는 건 하나도 몰라요. 프랑스 고교에선 프랑스 문학사가 필수 과목입니다. 그런데 교과서가 없어요. 교사들이 여러 전문적 참고서를 읽고 토론 교육을 합니다. 교사들이 문학사 책을 직접 집필합니다. 그 나라에선 교사를 교수라고 부르죠.” ‘일본의 시대는 가고 한국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가 오랜 역사 통찰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동아시아 문명권 중심부인 중국이 중세 전기까지 앞섰어요. 문명권 중간부인 우리는 중세 후기에 앞섰죠. 근대는 주변부인 일본의 시대였어요. 중심부에서 중간부로 넘어오고 그 뒤 주변부까지 이르면 선진이 후진이 되고, 후진이 선진이 되는 역전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가진 잠재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국제적 정세나 여건이 변하더라도 선진으로 갈 수 있어요.” 선진으로 가는 길을 더 탄탄히 다지기 위해선 관료 개혁이 특히 절실하단다. 교육부를 예로 들었다. “어떤 정부도 교육부 관료를 개혁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역대 교육부 장관 중 유일한 실세였던 이해찬 장관도 관료는 놔두고 선생만 잡았어요. 다른 장관들은 동서남북도 모르고 떨려 나갔어요. 교육부 관료들은 절대 안 변해요. 난공불락이죠.” 그가 보기에 한국 교육부 관료들은 헌병이다. “프랑스에는 학문 정책만 다루는 고등교육부라는 관청이 있어요. 여기 관료들은 대학 학부 때부터 연구기획이나 연구행정을 전공한 학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법 전공자들이 관료입니다. 뭐 못하게 하는 데만 장기가 있어요. 헌병이 다스리는 나라죠. 그러니 창조적 학문을 하면 굶어 죽거나 맞아 죽어요.”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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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국정 방향 대체로 동의
전문성은 많이 떨어져” 조 교수는 자신의 구비문학 연구를 두고 ‘구비문학 혁명’이란 표현을 썼다. “사실 모든 문학이 구비문학에서 나왔어요. 제 연구 전까지만 해도 민속의 소관이라며 무시했어요. 70년대 구비문학 혁명은 우리 문학의 획기적 성과입니다.” 자신의 구비문학 연구로 한국 문학 연구가 일본을 앞섰다는 자부심도 드러냈다. 그는 책에서 민중의 언어로 이어진 구비철학 전통도 높이 평가했다. “이(理) 철학이 정통으로 자리를 잡고 박해하는데도 기(氣) 철학이 꾸준히 이어져 단계적 발전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의 구비철학이 튼튼히 뒷받침해서죠.” 그가 좋아하는 학인 원효도 직접 체험한 구비철학을 각성의 원천으로 삼아 글로 남겼단다. 그는 책에서 노자가 학문의 원천이고 <삼국유사>를 스승으로 삼아 학문했다고 썼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과 학자·문인은? “하나는 원효이고 둘은 <삼국유사> 셋은 홍대용 넷은 최한기입니다. 원효는 어려워요. 그러니 최한기부터 올라가며 읽는 게 좋아요.” 그가 보기에 원효의 <대승기신론 별기>는 높은 수준의 깨달음을 명확한 구조를 갖추어 논술한 모범이다. 요즘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선조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옛글을 다시 읽고 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올해 책으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올해만 벌써 두 권을 내 미안해서요. 이것 말고도 써놓은 책이 몇 권 더 있어요. 한국연구재단 연구비 지원 신청에서 탈락한 국문학 선도 연구자 12명을 고찰한 책도 써놓았지요.” 인터뷰 말미에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대체로 방향은 동의해요. 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져요. 교육부 장관을 보세요. 그 전문성으로 어떻게 관료를 장악하겠어요. 교육부 장관은 학문 성취가 뛰어나고 존경받는 교수 중에 발탁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료나 교수들 앞에서 말발이 섭니다.” 그의 책엔 이런 대목이 있다. ‘골짜기에서 헤매지 말고 봉우리에 올라가면 맞은편 봉우리가 보인다. 최한기와 비교해보면 헤겔이 무슨 말을 했는지 대강은 알 수 있다.’ 50년 이상 ‘학문 노동’을 쉬지 않고 있는 조 교수의 말이라 귀가 더 기울여졌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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