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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14 18:54 수정 : 2019.04.15 14:01

【짬】 원로 국문학자 조동일 명예교수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올해 만 80살인 원로 국문학자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책 두 권을 냈다. <통일의 시대가 오는가> <창조하는 학문의 길>. 지식산업사에서 낸 책 표지엔 ‘3·1운동 100돌 기념 출판’이란 글귀가 있다.

그는 1968년 계명대 전임강사에서 시작해 영남대, 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서울대를 거쳐 10년 전 계명대 석좌교수를 퇴임할 때까지 꼬박 41년 동안 국문학 연구에 헌신했다. 그가 자란 경북 동북부 구비문학 연구에서 출발해 한국과 동아시아, 세계로 문학 탐구의 지평을 넓히며 80권 가까운 책을 냈다. 6만질이 나간 대표작 <한국문학통사>(전 6권)는 우리 문학사 범위에 구비문학과 한문학까지 포괄하며 한국 문학사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특히 ‘창조학’의 주창자이기도 하다. 우리 학계가 외국학문 수입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우리만의 창조적 학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를 12일 서울 서초구 대한민국 학술원 회의실에서 만났다.

<통일의 시대가 오는가> 표지.

그는 은퇴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개인전도 두 차례 했다. “그림은 지금도 그려요. 그림과 연구는 상승 작용을 합니다.”

이번 책은 강연 원고와 강연 현장에서 오간 질의·응답을 정리해 묶었다. ‘통일의 시대를 맞아 들뜨는 대신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통일의 이유는 좋은 나라 만들기이다. 좋은 나라를 만드는 기본 설계는 학문, 그중에서도 인문학문이 해야 한다. 학문은 창조학, 교육은 창조교육이 되어야 한다.’ 책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그는 지금의 남북 관계를 이렇게 평가했다. “단기적으로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낙관해요. 통일을 이룰 만한 역사적 전기가 왔어요. 3·1운동 100년인 지금 ‘통일의 시대는 오는가?’라고 말할 수 있어 감격스러워요.”

가장 시급한 통일 준비가 뭘까? 답은 단호했다. ‘주체적이면서 보편적인 학문 창조’다. “민족이나 문명 모순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학문을 남이 먼저 만든 뒤 북의 동참을 유도해야죠.” 설명이 이어졌다. “남북 관계를 보면 남과 북이 비난하고 싸우는 게 한 국면이고 만나서 적당히 타협하는 게 또 다른 국면입니다. 이렇게는 통일이 되지 않아요. 남과 북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야 해요.” 그는 남·북 공통의 철학적 틀을 만드는 씨앗으로 주희의 이·기 이원론을 거부하고 기 일원론 철학을 펼친 서경덕(1489~1546)과 최한기(1803~1879)의 학문을 들었다.

당장 남북 학술교류에 나서기엔 우리가 내놓을 게 너무 빈약하다는 말도 했다. “남과 북이 만나 회의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북 학자들도 남한 책을 다 읽어요. 제가 낸 책도 다 읽고 높은 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힘들게 읽을 만한 책을 써야죠. 하지만 우리는 창조학에 힘을 쓰지 않아요.”

<창조하는 학문의 길> 표지.
두 책이 제목은 다르지만 공통으로 초점을 맞춘 주제는 창조학이다. 그는 2017년 한국연구재단 인문 저술지원사업에서 탈락한 자신의 사례까지 언급하며 “창조 학문을 저해하는” 학술 정책을 강하게 질책했다. 재단은 조윤제, 김태준, 이가원, 이우성 등 국문학 선도 연구자 12명을 연구 고찰하겠다는 조 교수의 연구비 신청을 연구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며 탈락시켰다.

“우리는 지금 구조적으로 창의적이고 선도적인 연구를 막고 있어요. 연구비 신청할 때 제목과 계획을 쓰고 그것대로 해야 합니다. 그대로 안 하면 문책당해요. 제목과 계획을 쓸 수 있으면 창조적 연구가 아니죠. 못 쓰는 게 창조적 연구입니다. 자연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뒤따라가는 연구만 해요. 연구 내용을 놓고 하는 경쟁은 없고 연구비를 따려는 경쟁만 있어요. 심사위원에게 잘 보이려고 추종하는 연구만 하죠. 연구 계획서를 직접 작성하지도 않는 심사위원들이 이해하는 연구는 하나 마나 한 연구이죠. 일본만 해도 달라요. 연구비를 떼먹지만 않으면 돼요. 열 번 실패해도 됩니다. 우리는 실패를 허용하지 않고 실패하면 매장됩니다.” 연구비가 늘어날수록 연구 성과는 더 떨어진다고 보는 까닭이다. “체제에 순응해야 연구비를 타니 하나 마나 한 책만 써요. 연구비가 없을 땐 어차피 자기 맘대로 썼잖아요.” 그는 도쿄대 객원교수로 있을 때를 떠올렸다. “도쿄대는 도서관에 책이 많아 교수는 따로 책을 살 필요가 없더군요. 교수가 학술탐사프로그램을 해도 연구 공금에서 경비가 다 나와요. 우리는 연구 프로젝트를 신청하고 그 계획에 따라 연구를 해야 합니다.”

50년 전과 지금을 견주면? “그때는 국가보안법만 안 걸리면 뭐든지 할 수 있었죠. 학술 정책이란 게 없었어요. 그래서 방해도 없었죠. 지금은 많이 지원하지만 규제가 촘촘해요. 진정한 학문을 하기가 어렵죠. 내가 연구비 신청에서 떨어진 게 생생한 증거입니다. 연구재단 돈 받은 것보다 그렇지 않은 연구 질이 더 높아요.”

교수가 강의와 연구를 함께해야 하는 시스템을 두곤 이렇게 말했다. “모든 교수가 논문을 써야 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어요. 미국의 몇몇 연구중심 대학에서 하는 걸 우리 대학이 따라 하고 있어요. 미국의 대다수 대학교수들은 연구 업적이 필요 없어요. 일본도 도쿄대는 주 3시간 강의하고 논문을 써야 하지만 와세다대는 강의만 합니다. 북한도 사회과학원을 만들어 연구 교수를 뒀어요.”

그가 보기에 현 교수 평가 시스템은 교수 약점 캐기에 열을 올리던 유신 적폐의 연장선이다. “강의와 잡무에 논문 부담까지 지고는 창조적 학문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다수의 선량한 교수들은 함량 미달 논문을 쓰고 소수의 불량한 교수들은 표절합니다. 그런데 꼭 벼슬을 하려는 후보자들은 후자에서 나와요. 교육부 관료나 사립대 이사장 총장들은 이렇게 불가능한 걸 요구해 교수를 장악하려 합니다. 언제나 약점을 잡을 수 있어 교수들이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죠. 이 달콤한 맛을 절대 놓치려 하지 않죠. 교수들이 현 근무 여건에서 제대로 하려면 다 쓰러져야 해요. 그런데 과로사하는 교수가 없어요.”

3.1운동 100년 맞아 강연록 모아
‘통일의 시대 오는가’ 등 책 두권 내

“서경덕 최한기 등 기철학 기반해
남북 공통의 철학적 틀 만들어야
연구교수제로 연구 수준 높여야
중고교, 교과서 없는 토론 교육을”

그는 오랜 지론인 연구교수제를 다시 강조했다. 교육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강의는 임의로 개설하도록 하는 연구교수를 공·사립대에 두고 인건비를 나라에서 지원하자는 것이다. “내가 수십 년 떠들어 연구교수 제도가 생겼는데 기형적입니다. 다 왜곡시켰어요. 분개했죠. 지금 비정규직 연구교수들은 정규직 교수 밑에서 시집살이를 합니다. 교수들 뒤치다꺼리를 해요. 가장 뛰어난 교수가 연구교수를 해야 합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엔 2만명의 연구교수가 있어요. 출근이나 강의 부담이 없죠. 연구교수가 연구 동료 2명을 직접 뽑도록 해 연구 성과를 5년 단위로 평가하면 됩니다. 재원은 기존 교수 연구비를 활용하면 충분해요. 이렇게 하면 학생 수 감소로 줄어드는 교수 자리에 숨통을 틔울 수 있고 연구의 획기적 발전도 꾀할 수 있어요.” 그는 정규직 교수와 강사의 임금 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란 말도 있다. 연구교수제가 비정규직 강사 문제는 물론 이런 임금 불균형을 푸는 모범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 정규직 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봉급을 받아요. 강사 급여는 세계 최저 수준이죠. 우리만큼 격차가 심한 나라가 없어요. 내가 파리대학에 있을 때 보니 교수 급여가 우리보다 적어요. 대신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이런 복지는 누구나 다 누릴 수 있죠. 일본 도쿄대를 보니 물가는 비싼데 교수 월급이 우리보다 그리 많지 않았어요. 서유럽은 교수나 청소부 월급이 같아요.”

강사 정책의 기본 방향은 “빈민구제가 아니라 인재발탁”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강사 중에 학문적 역량이나 열정이 있는 사람을 연구교수로 발탁해야죠. 그렇지 않은 사람까지 하면 나라도 망하고 그 사람에게도 좋지 않아요.”

중·고교에선 ‘교과서 없는 토론 교육’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너무 이상적이라고 하니 이렇게 답했다. “세계적으로 교육을 제일 잘하는 나라가 핀란드입니다. 거기에선 학문적 역량이 우수한 석사 이상 교사에게 교육을 일임합니다. 교사는 문제 중심으로 독서 토론 교육을 하죠.” ‘토론하는 교육은 위험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 않으냐고 하자 이렇게 받았다. “진짜 사회주의 교육에선 토론이 없어요. 중국에서도 가르쳐 봤어요. 중국은 교과서를 달달 외우는 것 말고 다른 게 없어요. 교과서에 없는 건 하나도 몰라요. 프랑스 고교에선 프랑스 문학사가 필수 과목입니다. 그런데 교과서가 없어요. 교사들이 여러 전문적 참고서를 읽고 토론 교육을 합니다. 교사들이 문학사 책을 직접 집필합니다. 그 나라에선 교사를 교수라고 부르죠.”

‘일본의 시대는 가고 한국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가 오랜 역사 통찰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동아시아 문명권 중심부인 중국이 중세 전기까지 앞섰어요. 문명권 중간부인 우리는 중세 후기에 앞섰죠. 근대는 주변부인 일본의 시대였어요. 중심부에서 중간부로 넘어오고 그 뒤 주변부까지 이르면 선진이 후진이 되고, 후진이 선진이 되는 역전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가진 잠재적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다면 국제적 정세나 여건이 변하더라도 선진으로 갈 수 있어요.”

선진으로 가는 길을 더 탄탄히 다지기 위해선 관료 개혁이 특히 절실하단다. 교육부를 예로 들었다. “어떤 정부도 교육부 관료를 개혁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역대 교육부 장관 중 유일한 실세였던 이해찬 장관도 관료는 놔두고 선생만 잡았어요. 다른 장관들은 동서남북도 모르고 떨려 나갔어요. 교육부 관료들은 절대 안 변해요. 난공불락이죠.” 그가 보기에 한국 교육부 관료들은 헌병이다. “프랑스에는 학문 정책만 다루는 고등교육부라는 관청이 있어요. 여기 관료들은 대학 학부 때부터 연구기획이나 연구행정을 전공한 학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는 법 전공자들이 관료입니다. 뭐 못하게 하는 데만 장기가 있어요. 헌병이 다스리는 나라죠. 그러니 창조적 학문을 하면 굶어 죽거나 맞아 죽어요.”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나는 4·19혁명에 주역으로 참여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하는 사명을 절감하고, 그 기본 설계가 되는 학문을 하려고 힘겨운 노력을 해왔다. 정치투쟁이나 사회운동은 면제해주기를 기대하고, 학문의 중노동을 감수해 보답하고자 했다. 신원조회에 걸려 해외여행도 하지 못하고 교수로 임용되지도 못하는 폐족의 처지에서 벗어나 학문 거점을 마련하려고, 항쟁 행동에 전연 가담하지 않고 반정부 서명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잘 잘못 시비는 내놓은 논저를 보고 하기 바란다.’

조 교수가 인터뷰에 앞서 기자에게 보낸 메일 내용 중 일부다. 인터뷰에선 이런 말도 했다. “대학교수들은 임원과 코치 선수로 나눌 수 있어요. 임원은 보직 교수나 학회장입니다. 코치는 강의하는 교수이죠. 난 창의적 연구를 하는 선수로 일관했어요. ‘선수’가 되기 위해 학과장 같은 보직 한번 안 했어요.” 돌아가면서 하는 학과장까지 거절한 미안함은 연구 점수도 없는 학과논문집에 자주 논문을 쓰는 것으로 갚았단다.

두 권의 책은 학자 조동일의 공부 이력도 잘 보여준다. 그간 낸 저술 내용과 거기 담긴 통찰을 압축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책 곳곳에서 후학들이 자신의 연구 성취를 발판 삼아 좀더 깊은 연구로 나아갔으면 하는 희망을 드러냈다.

‘한국 근대소설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족 문학으로 키우는 과업을 널리 모범이 되게 수행했다. 그러니 한국 근대소설을 일본이나 서양소설과 비교해 고찰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제3세계 전역 특히 아프리카에서 이룬 바와 함께 연구해야 한다.’ 조 교수는 이런 기대감을 나타낸 뒤 자신이 이룬 성과도 소개했다. “난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에서 강경애의 <인간문제>와 몽고 베티(아프리카 카메룬 작가)의 <잔인한 도시>가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제3세계 소설의 모범 사례로 대등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많은 일꾼이 참여해 이런 작업을 크게 확대하기를 바란다.”

“‘노자’가 학문 원천, ‘삼국유사’는 스승
현 정부 국정 방향 대체로 동의
전문성은 많이 떨어져”

조 교수는 자신의 구비문학 연구를 두고 ‘구비문학 혁명’이란 표현을 썼다. “사실 모든 문학이 구비문학에서 나왔어요. 제 연구 전까지만 해도 민속의 소관이라며 무시했어요. 70년대 구비문학 혁명은 우리 문학의 획기적 성과입니다.” 자신의 구비문학 연구로 한국 문학 연구가 일본을 앞섰다는 자부심도 드러냈다.

그는 책에서 민중의 언어로 이어진 구비철학 전통도 높이 평가했다. “이(理) 철학이 정통으로 자리를 잡고 박해하는데도 기(氣) 철학이 꾸준히 이어져 단계적 발전을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민중의 구비철학이 튼튼히 뒷받침해서죠.” 그가 좋아하는 학인 원효도 직접 체험한 구비철학을 각성의 원천으로 삼아 글로 남겼단다.

그는 책에서 노자가 학문의 원천이고 <삼국유사>를 스승으로 삼아 학문했다고 썼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과 학자·문인은? “하나는 원효이고 둘은 <삼국유사> 셋은 홍대용 넷은 최한기입니다. 원효는 어려워요. 그러니 최한기부터 올라가며 읽는 게 좋아요.” 그가 보기에 원효의 <대승기신론 별기>는 높은 수준의 깨달음을 명확한 구조를 갖추어 논술한 모범이다.

요즘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선조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옛글을 다시 읽고 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올해 책으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올해만 벌써 두 권을 내 미안해서요. 이것 말고도 써놓은 책이 몇 권 더 있어요. 한국연구재단 연구비 지원 신청에서 탈락한 국문학 선도 연구자 12명을 고찰한 책도 써놓았지요.”

인터뷰 말미에 문재인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대체로 방향은 동의해요. 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져요. 교육부 장관을 보세요. 그 전문성으로 어떻게 관료를 장악하겠어요. 교육부 장관은 학문 성취가 뛰어나고 존경받는 교수 중에 발탁해야 합니다. 그래야 관료나 교수들 앞에서 말발이 섭니다.”

그의 책엔 이런 대목이 있다. ‘골짜기에서 헤매지 말고 봉우리에 올라가면 맞은편 봉우리가 보인다. 최한기와 비교해보면 헤겔이 무슨 말을 했는지 대강은 알 수 있다.’ 50년 이상 ‘학문 노동’을 쉬지 않고 있는 조 교수의 말이라 귀가 더 기울여졌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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