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대학도서관장들의 전자저널 분투
거대출판사와 전자저널 구독료 협상
빠듯한 예산, 인상률 따라잡기 벅차
비대위 결성뒤 협상 마무리했지만
전자저널 구독부담 대책없이 커져
‘학술지식은 누구 것인가’ 물음 던져
유럽 ‘구독료 없는 전자저널 만들기’
‘출판비 선납·구독 무료’ OA프로젝트
독일?스웨덴, 전자저널 구독 보이콧
네덜란드, 국민 누구나 논문 무료로
최근 중국도 ‘OA 방식’ 지지 선언
|
해외의 거대 학술출판사들이 운영하는 학술데이터베이스 또는 전자저널의 구독료가 계속 상승하면서 국내 대학도서관들에 실질적인 압박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대학도서관장들이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결성해 전자저널 구독료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며 구독료 협상에 직접 나섰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제공
|
▶ 대학도서관의 자료구입비에서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곳은? 장서가 가득찬 도서관의 풍경을 떠올린다면 책과 간행물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답은 온라인으로 학술정보를 볼 수 있는 이른바 ‘전자저널’이다. 지난해 대학도서관의 전자저널 구독료는 1627억원이었다. 구독료 부담은 점점 커진다. ‘지식 공유’의 필요성도 다시 제기된다. 전자저널 구독료와 관련한 국내외 이슈를 살펴보았다.
대학도서관장들은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도서관은 지금 ‘비상상황’이라고 했다.
“대학도서관은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해마다 터무니없는 가격 인상률에 왜 그런 가격이 결정되었는지 그 이유도 충분히 듣지 못한 채 결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이제 비상대책위원회에서는 구독 중지를 포함한 비상대책을 수립하고….”
지난 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자저널 구독과 협상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의 대토론회를 마무리하며,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서이종 서울대도서관장)가 발표한 대국민 성명서에는 해마다 구독료가 점점 커지는 전자저널을 ‘구독 중지’, 즉 보이콧하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비장한 의지가 담겼다. 학술지(저널)의 논문과 학술 정보를 한 데 모아 쉽게 검색하게 해주는 학술데이터베이스 전자저널이 대학도서관들에게는 왜 감내하기 힘든 부담으로 다가왔을까?
점점 커지는 구독료 규모 때문이다. 500여 곳에 달하는 국내 대학도서관과 공공연구기관들이 지난해 지출한 전자저널 구독료는 2000억원에 달했다. 게다가 구독료는 해마다 계속 오른다. 유료 전자저널은 ‘엘스비어(Elsevier)’, ‘와일리(Wiley)’, ‘스프링거 네이처(Springer Nature)’ 같은 거대 출판사들이 세계 도서관들에 공급하고 있다.
다행히 보이콧 같은 비상상황은 없었다. ‘비대위’ 효과 덕분인지 한때 파행을 겪었던 올해 구독료 협상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12일 오후 서울역 앞 대학도서관연합회(대도연) 사무실에선 도서관들을 대표하는 협상 주체인 ‘큐(KCUE)’ 컨소시엄과 올해 협상 대상자인 ‘와일리’ 출판사 간에 2019~2021년 구독료 협약을 마무리했다. 이날 협약에 바탕을 두어 개별 도서관들에서 실제 계약이 진행될 예정이다.
|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전자저널 구독과 협상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의 국회 대토론회.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제공
|
대책 없이 오르는 전자저널 구독료
12일 협약문 서명 직후에 만난 서이종 비대위원장은 “당연히 제외해야 하는 공개 논문들까지 구독료 대상에 포함돼 있다는 점, 신종 저널들을 끼워팔기 하는 관행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점을 제기했고, 서로 인정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애초 제시된 구독료를 0.5%가량 낮추는 조건에서 합의했다”고 말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은 대체로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지만, 도서관은 학술데이터베이스인 전자저널을 살 수밖에 없고 구독료는 해마다 오르니 대학도서관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
많은 학술지(저널)의 논문을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제공하는 유료 전자저널들. 와일리(위), 스프링거네이처(가운데), 엘스비어(아래)가 대표적이다. 누리집 갈무리
|
지난 10월23일 대학도서관장들이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해 전자저널 구독료 협상에 직접 나선 데에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협상 자리에는 주로 도서관 전문 사서들이 나섰다. 비대위에는 전국 거점대학과 사립대 등 21개 대학의 도서관장, 그리고 대한화학회와 한국물리학회의 학회장이 참여했다.
오세훈 도서관정책연구소(대도연 부설) 소장은 “도서관장들이 ‘못살겠다’는 심정으로 직접 나선 것이 비대위”라고 설명했다. “입학생도 줄어들고 대학 재정은 전반적으로 안 좋습니다. 도서관의 예산은 줄어들겠지요. 그런데 대학에서 학술 논문을 안 볼 수 없으니 반드시 사야만 합니다. 그런데 출판사들은 구독료 인상을 요구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도서 구입비는 줄어들지요. 학문의 다양성을 살려야 하는 도서관에서 ‘장서의 균형’이 깨지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되고, 구독료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어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데 있지요. 그러니 도서관장들이 이대론 안 된다는 심정에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실제로 학술데이터베이스 전자저널의 구독료는 대학도서관에서 점점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통계자료를 보면, 4년제 대학 총결산액에서 도서관의 전체 자료 구입비 비율은 최근 5년(2013~2017) 동안 1.0%에서 0.9%로 떨어졌지만, 그 중 전자자료(전자저널) 구입비의 비율은 해마다 올라 2013년 57.9%이던 것이 2017년 65.5%가 됐다. 한 대학에선 85%에 달했다.
당연히 다른 자료 구입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우찬제 대도연 회장(전 서강대 로욜라도서관장)이 7일 대토론회에서, 2010~2017년 기간에 4년제 대학 도서관의 자료 구입비 증감 현황을 보면 해외 전자저널은 77% 늘어났으나 국내 도서는 0.4% 증가에 그치고 해외 도서는 3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우 회장은 “가중되는 전자저널 구입비 부담이 지식 생태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담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도서관 관계자들은 호소한다. 학술데이터베이스의 정보량이 누적되고 팽창하면서 거대 출판사들의 구독료 인상 요구의 요인이 된다. 대도연의 자료에 의하면, 2013년 이후 전자저널 구독료 인상율은 해마다 평균 5% 이상을 기록해왔다. 도서관 예산에 한계가 있다보니 구독료를 한 번에 다 내지 못하고 일부를 다음 해로 넘겨 사실상 빚을 지는 도서관도 생기는 실정이다.
오세훈 연구소장은 “해외 출판사로 연간 2000억원이 건너가는 전자저널 구독료의 문제는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문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최대 출판사인 엘스비어의 제이슨 찬 아시아태평양 디렉터는 <한겨레>에 보낸 이메일에서 “구독료 조정은 제공되는 학술정보의 양과 질이 증가했기 때문이며, 그렇더라도 엘스비어는 경쟁사들에 비해 더 낮은 구독료 인상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모색, ‘공개접근 방식’
‘학술데이터베이스 전자저널’은 학술지들을 출판하는 거대 출판사들이 그 학술지 논문들을 디지털화하고 데이터베이스에 묶어 검색할 수 있게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전자저널의 구독료 문제는 ‘학술 정보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연구활동의 많은 부분은 정부예산 등 공적인 연구비로 이뤄진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를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하면, 그 논문을 보고 싶은 사람은 다시 구독료를 내야 한다. 연구자가 자기 논문을 찾아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지식의 유통 방식에 문제는 없는 걸까?
|
거대 출판사들의 학술데이터베이스 구독료 문제를 다뤄 지난 9월 화제가 된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보려면 돈 내시오: 학문 비즈니스>(Paywall: the Business of Scholarship)의 포스터. 영화는 누리집(paywallthemovie.com)에서 볼 수 있다.
|
이런 물음을 던지면서 누구나 지식의 결과물에 접근할 수 있게 하자는 이른바 ‘공개접근(오픈 액세스, OA)’ 운동이 전자저널 구독료 문제를 개선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운동은 일단 논문 출판 단계에서 ‘논문을 무료 공개한다’는 조건으로 출판사에 출판비용(APC)을 주고, 출판 이후에는 연구자뿐 아니라 아마추어 연구자 등 국민 누구나 학술 논문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출판비는 연구지원기관이나 정부, 도서관 등에서 분담해 조성할 수 있다.
이상적인 구호처럼 들리지만 유럽에선 2020년을 목표로 한 실행 계획들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이달 초에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오픈 액세스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돌아온 서정욱 서울대 의대 교수(전 서울대의대도서관장)를 만나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는 새로운 학술 출판과 지식 공유 흐름을 들어보았다.
네덜란드는 국가가 나서서 구독료 기반의 학술지 출판 방식을 없앤 최초의 나라이다. 정부는 네덜란드 연구자가 논문을 낼 때 출판사에 선납하는 출판비용을 지원해주고, 출판사들은 네덜란드에서 모든 논문을 공개하도록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국민 누구나 원한다면 학술 논문을 아무런 제한 없이 볼 수 있다.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한창 긴장이 감돌고 있다. 두 나라의 연구자들도 출판비를 선납하는 대신에 구독료를 없애는 공개접근 방식의 출판을 거대 출판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데, 최대의 출판사인 엘스비어와 협상이 결렬돼 현재 구독료 지불을 중지한 보이콧 상태라고 한다.
개별 나라의 시도와는 별개로 지난 9월엔 유럽 12개국이 2020년까지 공적 연구비로 수행된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하는 경우에는 공개접근 방식으로 출판하도록 의무화하는 실행계획 ‘플랜?에스’를 공표해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영국 정부도 2013년부터 공개접근 출판 정책을 꾸준히 확대해 지원하고 있으며 미국의 일부 대학에서도 이런 운동에 동참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동참 선언 주목…한국은 언제?
최근에 가장 강력한 변화는 아마도 중국이 공개접근 출판 방식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선 일일 것이다.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오픈 액세스 컨퍼런스’에 참석한 중국 대표는 거대 출판사 대표 앞에서 중국도 앞으로 출판비를 선납하고 논문을 공개접근 방식으로 출판하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출판사들도 이런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과학저널 <네이처>는 뉴스 보도에서, 유럽 중심으로 이뤄지던 공개접근 출판 운동에 중국이 지지를 밝히고 동참하기로 한 것은 “지구촌 수준의 공개접근 운동으로 나아가는 중대한 발걸음”이라는 평을 전했다. 중국의 동참이 가시화한다면, 2020년까지 공개접근 출판 체제로 전환하자는 이른바 ‘오픈 액세스 2020’ 운동은 큰 추진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
전자저널 구독료 문제의 대안으로서, 출판비를 선납하고 출판사에게 논문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식의 ’오픈 액세스(OA)’ 운동을 논의하는 ’2018 베를린 오픈 액세스 회의’가 이달 초 독일에서 열렸다. OA2020 제공
|
한국에선 이런 논의가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 당장에 구독료를 낮추는 협상 체제 자체를 강화하는 일이 발등의 불이었다. 하지만 지식 공유의 새로운 학술 출판 방식을 설계하는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서정욱 교수는 “우리도 세계 다른 나라들과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는데 우리는 협상 체제 같은 쟁점에 주로 관심을 두고 있다”면서 “공개접근 방식을 추진하려는 지구촌의 공동 노력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7일 국회 대토론회에서도 공개접근 운동과 관련한 국제 동향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도 네덜란드처럼 국가 차원에서 학술 지식을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공개접근 체제를 시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토론회엔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신기남 위원장과 서형수 의원 등 일부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다. 토론회를 주관한 비대위의 서이종 위원장은 “국회에 ‘전자저널연구회’를 만들어 1년 정도 운영하면서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의원들의 제안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김재수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장은 ‘시기의 문제일 뿐이지 결국 대세는 공개접근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비의 대부분은 정부예산 등 공적인 자금에서 나오고 연구는 연구자가 하고 논문도 연구자가 쓰고 논문 심사도 동료 연구자가 하는데, 출판물의 수익은 출판사가 가져가는 구조가 더 이상 용인되기 어려운 시기가 곧 오리라고 예상합니다. 법적, 기술적, 경제적 장벽이 없는 오픈 액세스가 정의이고 대세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공개접근 출판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간단한 변화가 아니다. 논문 투고 때에 학술 출판사에 제공해야 하는 출판비를 어떻게 정하고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 그런 출판비는 연구개발 예산에서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 등의 세세한 문제들은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변화들이다. 하지만 대학도서관장들의 비대위 활동은 정치권과 정부 부처, 도서관, 연구자들이 이런 문제를 공유하는 데 작은 계기가 되었다. ‘지식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유통되어야 하는가’라는 근본 물음도 다시 던져지고 있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
☞ 전자저널, 공개접근(OA)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1990년대 후반 이후에 학술지의 지식 유통 방식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디지털로 편집된 논문을 파일로 저장하고 온라인에서 한꺼번에 검색할 수 있게 한 학술지들이 생겨났는데, 도서관에서는 이를 ‘전자저널’(e-journal)이라 부른다. 이전에 종이 학술지로 흩어져 있던 논문 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묶을 수 있게 되면서, 엘스비어, 스프링거네이처, 와일리 같은 전통적인 거대 학술 출판사들은 방대한 전자저널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서, 학술데이터베이스 접근과 이용 권한을 세계 각지의 도서관들에 유료로 판매한다. 출판 이후 구독료를 받아 출판사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방식의 전자저널도 생겨났다. 저널 출판사는 논문을 투고하는 연구자들한테서 출판비(APC)를 받아 논문을 출판하고서, 이렇게 출판된 논문은 누구나 읽을 수 있게 공개하는 방식이다. 이를 공개접근(오픈 액세스, OA)형 저널이라 부른다. 온라인으로만 발행하는 새로운 저널들은 대부분 공개접근형이다. 전통적 학술 출판사들도 구독료 기반의 학술지들과 더불어 새롭게 공개접근형 학술지들을 창간해 함께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
근래에는 ‘열린 과학’을 표방하면서 기존 구독료 방식을 유지하는 출판사들에게 ‘출판비 선납, 구독료 무료’의 공개접근 체제로 전환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2020년까지 그런 체제를 만들자는 유럽 중심의 프로젝트가 ‘오에이2020(OA2020)’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