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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0 19:13 수정 : 2018.11.21 10:03

[짬] ‘한국학 1세대’ 학자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

50년간 한국학을 연구해온 마르티나 도이힐러 런던대 명예교수가 20일 오후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신간 <조상의 눈 아래에서>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국학 1세대’인 스위스 출신 노 학자가 기존의 역사적 관점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대작을 펴내 주목받고 있다. 20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신작 <조상의 눈 아래에서>(너머북스) 출간 기자간담회의 주인공, 마르티나 도이힐러(83) 런던대 명예교수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1960~70년대 6년 가량 서울대 규장각에서 유학한 그는 한국에서 ‘한국학 연구’를 수행한 최초의 서양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이후 취리히대와 런던대 교수로 일하며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해 연구를 이어왔다.

스위스 출신 83살 런던대 명예교수
60~70년대 6년간 서울대 규장각 유학
국내에서 한국학 연구한 첫 서양인

‘조상의 눈 아래에서’ 한국어판 출판
신라~조선후기 ‘지배계층 형성’ 추적
“10년간 문중·양반 후손 찾아 자료수집”

도이힐러가 2015년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출간한 이번 신작은 한국어판 기준으로 본문만 730쪽, 주석 250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이 책은 신라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방대한 기간 동안 지배 엘리트 집단이 어떻게 출계집단(양반, 사족 등 혈연집단)을 단위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살펴본다.

특히 그는 책에서 ‘신진사대부가 조선을 건국했다'는 기존의 한국사를 보는 관점과 대립각을 세워 흥미롭다. 도이힐러가 보기에 60~70년대 한국 역사학자들은 조선 건국이 진보 성향의 새로운 행동주의 집단인 ‘신진사대부'가 신유학의 가르침에 고취돼 선도한 개혁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제 때 일본인 학자들이 주창한 ‘조선이 막강한 귀족 사대부 계층의 지배로 인해 근대사회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논리를 반박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도이힐러는 이런 ‘신진사대부'의 출현은 애초에 없었다며 고려의 세족이 조선의 사족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인 학자들도 잘못 봤지만, (민족주의 역사학자) 이기백 교수가 ‘조선 초기에 시골 출신의 향리 후손들이 과거에 합격해 새로운 계층이 생겼다’고 말한 것도 실제 자료들을 보지 않고 한 이야기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지배 엘리트들은 거의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이어 왕조의 교체와 같은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발전은 있었지만 친족 집단이 지배층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변화가 크게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관점을 드러낸다. 그는 서문에서 “엘리트층이 시공을 초월하고 왕조의 경계를 가로질러 존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출계집단 모델’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전작인 <한국의 유교화 과정>(너머북스)이 “고려-조선 교체기의 엘리트 사회가 고유의 양계제(부계·모계)에서 유교적 부계제로 이행하는 역사적 과정”을 다뤘다면, 이번 신작에선 “16세기 중반 이후 출계집단의 구조를 ‘합리화'하는 설득력 있는 모델을 제공했던 종족제도의 출현과 발달에 영향을 미친 사회적·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배경을 고찰하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도이힐러는 특히 조선의 지배 엘리트들이 부계 집단화로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문중’이라는 독특한 조직으로 보완해나가는 점이 인상 깊다고 짚었다. 부계와 모계가 모두 인정받던 고려시대에는 평등한 형제 관계가 강조됐는데, 조선시대 부계 사회에선 장자의 지위가 격상되고 남동생들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형제들 사이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성인 남계친족들을 포함시키는 사회적 단위인 문중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부계제가 문중에 의해 균형이 맞추어지지 않았다면, 엄격하게 조직된 중국식 부계제는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도이힐러는 이런 친족 이데올로기가 도시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지방을 중심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그는 “친족 엘리트 집단이 이렇게 뿌리내린 사회는 거의 없다. 중국은 원래부터 부계제였지만, 부계·모계가 있던 양계 체제에서 부계 (단일) 체제로 변한 것은 한국이 유일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고령이어서 앞으로 이런 대작을 다시 쓰기는 어렵겠지만, ‘출계집단에 기초한 사회가 어떻게 개인 중심의 근대적 민주사회로 전환되었는가’라는 소주제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외국인이 왜 한국사를 공부하느냐’고 묻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런 한국 사회의 독특하고 흥미로운 점들 때문에 연구하게 된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10여년 동안 직접 문중이나 양반의 후손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했다.” 노 학자는 “국외의 한국학 연구가 많이 발전했고 자료도 많아졌지만, 직접 현장으로 가서 조사하는 학자들이 별로 없고 도서관에서 책만 들여다보는 학자(암체어 스칼라)들만 많아진 것 같아 안타깝다”는 일침도 덧붙였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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