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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개고 태양이 오르자 파미르의 고봉이 아침 빛을 받아 누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아침의 살얼음이 얼마 못 버티는 걸 보니 파미르에도 봄이 오려나 보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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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12) 파미르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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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개고 태양이 오르자 파미르의 고봉이 아침 빛을 받아 누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아침의 살얼음이 얼마 못 버티는 걸 보니 파미르에도 봄이 오려나 보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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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에 비가 내리더니 어느덧 진눈깨비로 변한다. 당나귀 모는 아버지는 걷는 아들을 들어 올리더니 품 안에 넣어 한껏 감싼다. 소들은 서로 모여 바람을 피한다. 봄이 다시 멀어지는 듯해 아쉽지만, 봄눈은 귀한 것이다. 눈이 한 치 더 쌓이면 올해 풀이 한 치 더 길게 자랄 테니까. 이튿날 날이 개고 태양이 오르자 파미르의 고봉은 아침 빛을 받아 누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올봄에 태어난 새끼들은 들판으로 나가고파 안달이지만 가는 다리와 솜털로 아직 산에 들기는 이르다. 눈까지 털로 가린 새끼 당나귀는 준비가 충분한 것 같지만 열흘만 기다려라, 새끼 양이 준비될 때까지. 아침의 살얼음이 얼마 못 버티는 걸 보니 그예 봄은 오려나 보다.
앞으로 초원에서 천막살이 할 때 필요한 잡동사니들을 가지러 고원을 내려갔다. 춘분 지나고 또 열흘, 페르가나 동쪽 끝 동네 오시의 살구꽃 복사꽃은 다 지고 배꽃과 사과꽃만 간신히 남는다. 동쪽 멀리 천산의 기다란 봉우리들이 감싸고, 가까이 남으로 파미르의 울룩불룩한 봉우리들이 지키는 분지 끄트머리에 이 도시가 있다. 방금 떠난 고원의 풀은 아직 머리도 못 내밀었는데 여기는 풀 내음 천지다. 산이 물을 내리고 바람을 막아주고 봄부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페르가나. 중앙아시아에서 곡식이 제일 잘 자라는 곳이라 사람도 오밀조밀 모여 사는 곳이다. 검정 소 머리 위에 앉은 새는 벌레를 찾아 쪼고 밭 가는 우즈베키스탄 청년은 스스럼없이 웃으며 농을 건네는데, 할머니를 따라온 아이는 밭두렁에 앉아 연신 싱글벙글이다. 이곳에서는 오늘이고 내일이고 아무 험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그러니 두 눈으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불과 몇년 전에 이곳에서 그 ‘순하다’는 키르기스계가 우즈베크계를 때리고, 강간하고, 죽였다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물론 키르기스계도 죽고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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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가는 우즈베크 청년은 스스럼없이 웃으며 농을 건넨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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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종(種)으로 갈라 가두고 학대하는 자들
설산이 보이는 들판에 서서 처음 가지고 있던 물음을 다시 꺼낸다. ‘나’는 누구고 ‘그’는 누구이기에 싸웠는가? 여기는 어디이고 거기는 어디이기에 서로 죽였는가? 거기는 높고 여기는 낮은 곳, 거기는 거기고 여기는 여기인가? 아니다, 여기도 풀이 있고 거기도 있다. 여기도 소가 있고 거기도 있다. 그리고 거기 사람이 있고 여기도 있다. 거기가 여기고 여기가 거기다. 인간을 종(種)으로 갈라 가두고 학대하는 그들의 수법과 그에 동조해온 우리들의 과거와 이제 이별을 고해야 할 때가 아닐까? 누군가 “죽여라”고 외칠 때 “왜”라고 묻고, “그놈이다”라고 소리칠 때 “바로 나다”라고 대답하는 이가 이 들판과 저 들판을 채울 때가 온 듯하다. 기록을 통해 인류의 사상을 독점한 이들로부터 사상을 찾아와야 한다.
봄눈은 귀한 것이다
눈이 한 치 더 쌓이면
올해 풀이 한 치 더 길게 자랄 테니까
고봉은 누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다
누군가 “죽여라” 외칠 때 “왜”라고 묻고,
“그놈이다”라고 소리칠 때
“바로 나다”라고 대답하는 이가
이 들판과 저 들판을 채울 때가 왔다
기록을 독점한 이들은 유목민과 농경민의 싸움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싸움의 증거는 이미 넘치는데 달리 증명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아득한 먼 날 유목민에 가까웠을 인도-유럽인이 고(古)유럽을 휩쓸고 이란과 인도로 내려갔다고 한다. 전신(戰神) 인드라가 흑인들을 패대기치고 성곽을 부수면서 남하했다고 하니 싸움이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서기전 6세기에는 스키타이와 페르시아 제국이 격돌한 적이 있고, 전국시대부터 격해진 중국과 흉노의 싸움은 한 제국에 이르면 정점에 이른다. 둘은 치고 받으며 함께 강해졌다. 몽골이 러시아 제국을 낳고, 그 제국이 다시 몽골을 파괴하는 식이다. 인간은 원래 투쟁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다. 더 이상의 증명이 필요한가?
유목 제국은 사라졌으니 투쟁은 과거의 것이 되었을까? 투쟁은 더 격렬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적의 이름이 바뀌어도 대결의 구도는 남았으니, 이를 계승한 이들이 바로 근대의 제국들이다. 유럽 열강들이 선수를 쳤다. ‘나는 노란 머리 칭기스칸이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리라. 노란 머리가 아닌 이들은 인간과 짐승 사이의 별종이다!’ 이 구도는 아직 유지되고 있다. 어느 틈에 동아시아의 변방인도 끼어들었다. ‘우리는 까만 머리지만 노란 머리 이상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까만 머리 공영권을 건설하자.’ 오늘날 구도를 좌지우지하는 나라는 중국인가 보다. ‘노란 머리들의 제국은 오늘날의 몽골이다. 우리는 이들에 대항하여 신중화를 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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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빵을 만들고 있는 목축민 여인들.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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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근대의 제국들은 다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인간의 역사는 자본주의라는 최후의 체제를 통해 완성되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간사에서 피아의 투쟁은 사라졌는가? 가장 저급한 수준의 인종 차별이라도 사라졌는가? 모스크바를 방문한 한국인 이(李)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모스크바의 슬라브인 아무개가) 키르기스에서 온 가정부를 개처럼 부리더구먼요. 너무 무서워요.” 그런 한국인을 목격한 동남아시아 모처의 사람들도 적지는 않으리라. 기록을 독점한 그들은 말한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약자를 깔아뭉개고, 타자를 찾아 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존재다. 문화사적으로 유목 연구가 현재에도 의미를 갖는 것은, 유목민들에 대한 농경민 혹은 농경민에 대한 유목민 이미지 만들기가 우리의 의식 안에 “외재적인 이분법”, 즉 분명 ‘우리’와 다른 이들이 있으며 다른 이들은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만들었고, 이 생각을 현재의 싸움꾼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순간 누군가에 의해 밖에서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 누군가는 우리들의 생각의 길을 못박아 버렸다. 그들이 다스리고 기록하는 사람들, 통치자 패거리들이었다. 누군가 주어진 길을 떠나 생각의 고원을 넘으면 통치할 수 없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사유의 고원을 넘나드는 철학자를 혐오한다. 그럼에도 밖에서 주어진 것을 안에서 깨트리려는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아니었다. 다만 파미르 고원의 바람처럼 자유로운 사고력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외재적 이분법을 “내재적 이분법”으로 바꾸어 세상을 자기 가슴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 선지자 중 한명은 오래전(아마도 서기전 15~10세기) 초원과 경작지 중간에 끼어, 두 문화 전체를 포괄적으로 사고한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일 것이다. 그는 인간의 눈을 벗어나 인간의 투쟁을 관찰한다. 암소(황소)는 아후라 마즈다에게 한탄한다. “누구를 위해 나를 만들었습니까? (인간을 위해서 아닙니까?) 누가 나를 만들었습니까? (당신이지요?) 그러나 폭력과 강탈과 학대와 분노가 나를 억누릅니다. 당신 외에 다른 목자는 없으니 나에게 초원의 축복을 베풀어 주소서.”(<아베스타>, 야스나 29)
누가 고작 초원을 원하는 이 짐승을 때리고 학대하는가? 원래 주인의 손에서 소를 빼앗아 가려는 약탈자, 혹은 만물의 고통을 아랑곳 않고 이익을 얻은 자다. 소는 주인을 위해 우유와 고기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짐승을 물건처럼 학대한다. 그래서 황소는(혹은 아후라 마즈다)는 탄식한다. “(이 세상에) 올바름과 선한 마음과 선한 통치는 어디에 있는가?”
금을 긋고 몰아내니 영락없이 나와 남
중앙아시아에서 반농반목지대로 내려와, 유목민과 농경민의 대결 속에 살고 있는 선지자는 황소의 눈을 통해 문제를 내부로 돌렸다. 밭 가는 혹은 풀 뜯는 너의 소를 학대하는 이는 바로 너이며, 풀 뜯는 혹은 밭 가는 그의 소를 학대한 이도 너다. 올바름과 선한 의지와 선한 통치를 잃은 이는 바로 너이며, 회복하는 것도 너의 문제다. 유목민이나 농경민이라 그른 것이 아니라 학대하고 뺏는 이가 바로 그른 이다. 그래서 문제는, “어떻게, 올바름을 따르면서도 원하는 암소를 얻을 것인가”이다. 목자는 소의 눈으로, 이리저리 약탈당하는 소를 보호하고, 그가 먹는 풀을 아끼고, 풀을 키우는 물을 깨끗이 해야 한다. 조로아스터는 곡물과 우유를 함께 신에게 바침으로써 목축과 농경이 조화를 이룬 이 세상의 완전함을 찬미했다.
인간의 마음에 나와 너를 가르고 너를 죽이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었을까?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것은 두려움과 우둔함이지 악함은 아니다. 미국인들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총기를 사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 ‘문명화된’ 사회는 총기를 포기하지 않는가? 평범한 사람은 묻는다. ‘그는 가지고 있는데 내가 가지지 않으면 내 가족은 누가 지키란 말이오?’ 두려움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대답한다. ‘그러니 당신의 가족을 위해 당신도 총을 사시오.’
유목민이든 농경민이든 애초에 서로를 악마로 보지 않았다. 처음 경로를 만든 이들은 이분법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은 이들이다. 그들은 이를 통해 얻을 것이 많았다. 두명을 특정해보자. 오직 아버지가 왕/황제라 황제가 된 두 사내 진시황 영정(?政)과 한무제 유철(劉徹)이다. 다리우스의 스키타이 원정은 단 한번에 불과했기에 이 둘이 남긴 실제의 ‘업적’과 그 기록의 영향력에 비길 바 못 된다. 영정은 아시아의 중심에 동서로 만리장성이란 금을 그어 남쪽의 나와 북쪽의 너를 명토 박았다. 중원의 산맥은 남북으로 달리고 황하는 크게 굽이쳐 오르도스 초원을 감싸고돈다. 그러니 더 옛날에는 황하의 남과 북, 남북으로 달리는 골짜기에 농경민과 유목민이 함께 살았다. 그러나 이렇게 금을 긋고 몰아내니 영락없이 나와 남이다. 물론 제국이 초원을 철저한 남으로 만들고 밀고 올라가자 초원 역시 제국으로 변모하여 반격의 무서움을 보여주었다. 유철은 영정의 유업을 이어 온 제국을 들어 선우의 제국을 쳤다.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다 그는 기발한 생각을 내었으니, 대원(페르가나)의 한혈마를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먼저 사신을 보내 말을 팔라 하니 대원이 응하지 않았다. 그에 행패를 부리던 한나라 사신이 살해되자 유철은 수만의 무뢰배로 군대를 편성해 페르가나를 두번이나 친다. 첫번째는 실패하고 두번째 원정에서도 태반이나 도중에 죽었지만 3만이 남은 한나라 군대가 대원의 왕성을 포위하고 물을 끊었다. 그래서 그 왕을 죽이고 얻은 말이 3천필, 중국의 관문으로 들어온 것은 1천필이었다 한다. 말 천필을 얻기 위해 그 수십배의 사람을 죽일 배짱이 있는 이가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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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당나귀에 물통을 매달아 물을 길으러 떠나는 목축민. 공원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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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계에 우리가 서 있다
굳이 선후관계를 따지자면 흉노의 근거지 오르도스를 먼저 빼앗아 성을 쌓은 이는 영정이고, 제국으로 성장한 흉노에게 먼저 싸움을 건 이는 유철이었다. 상대를 악마로 만들지 않고는 자기 인민을 도탄으로 몰아넣는 싸움을 지속할 수도 없었을 것이요, 그 싸움 뒤에 인민들이 적을 악마화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년이 지나도, ‘빨갱이’, ‘왜놈’ 따위의 낙인이 지워지지 않는데 하물며 수십년을 끈 전쟁임에랴. 그들이 그때 만든 기록과 이미지는 2천년이 지나 청나라 때가 되어도 바뀌지 않았다. 유목민은 ‘예의와 만족을 모르는 짐승 같은 놈들’이다. 그 짐승 같은 놈들이라도 말 천마리와 인구 십만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제국의 질서를 추종하는 학자들은 기꺼이 황제의 편이 되어 짐승들을 욕한다. 그런 무모한 행동이 오아시스의 삶을 파괴했을 뿐 실상 흉노를 제어하는 데 무슨 도움을 주었겠는가? 천산과 파미르 고원을 넘은 이들은 그냥 소모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가장 억울한 이들은 말을 안 팔았다고 도륙당한 대원의 인민들이다. 그들이 바로 유목과 농경을 섞은 제3의 모델을 유지하던 이들이다.
야비한 통치패거리들은 대중의 무지와 두려움을 십분 활용한다. 2010년 이곳에서 일어난 인종 학살도 그런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가난한데 우즈베크 녀석들은 우리 나라에서 장사나 농사로 돈을 번다.’ ‘맞아, 우즈베크 녀석들 때문에 과도정부가 불안하다고.’ 마침 중국과 러시아에서 종신 집권이 가능한 강력한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적을 만들고, 선을 긋는 데 능숙한 통치자들이다. 이 작은 나라도 그들에 대항하며 닮아갈까 자못 불안하다.
오시에서 12년을 살며 사업을 하고 있는 이 선생이 또 말했다. “여럿을 써봐도 키르기스인들이 제일 착하고 겁이 많아요. 원래 유목민이라서 그런가 봐요.”
착하고 겁 많은 유목민? 나는 그 참신함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가 무언가가 되려 한다. 그 경계에 우리가 서 있다.
▶ 공원국 작가/탐험가/역사·인류학 연구자. 동양사(학사), 중국경제(석사)를 공부했고 지금은 유목인류학(박사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목축 지대에서 생활하며 현장조사를 수행 중이다. <춘추전국이야기(1~11)>,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을 쓰고 <중국의 서진>, <말, 바퀴, 언어> 등을 옮겼다. 짐승에 기대어 옮겨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격조의 삶을 모색하는 글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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