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에 큰 자취를 남긴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황무지에서 느닷없이 솟아난 존재들이 아니다. 사상가를 혜성처럼 나타난 성인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악의 근원처럼 간주하다 보면, 자칫 사상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감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플라톤(왼쪽부터), 마키아벨리, 마르크스 역시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위키피디아
|
[토요판] 김영민의 논어 에세이
⑧ 역사적 맥락 읽기
인류사에 큰 자취를 남긴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황무지에서 느닷없이 솟아난 존재들이 아니다. 사상가를 혜성처럼 나타난 성인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악의 근원처럼 간주하다 보면, 자칫 사상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감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플라톤(왼쪽부터), 마키아벨리, 마르크스 역시 그들이 살았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 위키피디아
|
마르크스 이론은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혁을 경험한 당대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을 고민한 산물이다. 사진은 산업혁명 초기 공장의 모습. 위키피디아
|
성인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악의 근원처럼 간주하다 보면
자칫 사상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감게 된다
(…)
숭배의 대상이든 혐오의 대상이든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느닷없는 천재나 악마는 사실 드물다 그리하여 해외로 유학을 나와 보니, 학자들이 사상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그들 상당수는 과거의 사상가들을 경천동지의 혜안을 가진 고독한 천재나 지성으로 사모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열정적으로 전개된 세계 학계의 사상사 연구 흐름은 천재적이고 뛰어난 사상가로 알려져 있던 과거의 사상가들이 황무지에서 느닷없이 솟아난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가능하게 한 당대의 지적 담론의 소산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명성을 영속시킨 힘도 단순히 그들의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후 전개된 여러 역사적인 맥락 때문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인류의 정신을 새롭게 열어젖힌 천재로 알려진 니콜로 마키아벨리나 존 로크도 그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동아시아 사상 연구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 흐름이 있었다. 당시 영어권에서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그토록 숭배했던 주희 같은 인물도 단순히 천재적이고 위대한 사상가라기보다는 당대의 문제에 반응했던 여러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연구하는 흐름이 새롭게 학계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 사람과 함께 구성한 담론의 일부로 과거의 사상을 바라보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읽을 때 관련 정치경제학 저작과 팸플릿까지도 폭넓게 읽을 필요가 있듯이, 좀더 광범위한 독서가 필요하다. 어떤 사상가를 혜성처럼 나타난 성인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악의 근원처럼 간주하다 보면, 자칫 사상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감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사상은 자신이 발견하고 싶은 것만 발견하게 만드는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숭배의 대상이든 혐오의 대상이든.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느닷없는 천재나 악마는 사실 드물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상당한 거리 마키아벨리와 로크처럼, 그리고 남송의 주희처럼, 당대의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시대의 사상가는 그들이 처했던 지적 맥락을 재구성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공자처럼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이들에 대해서는 그러한 접근법을 취하기 쉽지 않다. 당대의 맥락을 구성할 만한 언설 자료가 태부족인 것이다. 유럽 사상사의 경우에도, 플라톤이나 파르메니데스보다는 마키아벨리나 로크의 사상적 맥락을 재구성하는 게 훨씬 시도해봄직한 일이다. 적어도 자료는 풍부하니까.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 구분에 의해 공자를 흔히 전국시대 사상가들과 더불어 다루는 일이 흔하지만, 공자가 활동한 춘추시대(770~476 BC)는 전국시대(453~221 BC)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춘추시대의 관련 자료는 전국시대 사상가들의 자료에 비해서 훨씬 소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에 담긴 내용의 맥락을 재구성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춘추시대의 본격적인 사상 텍스트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도, 학자들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관련 자료를 확보하여 연구를 진행한다. 일견 사상 텍스트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국어>, <좌전>, <전국책>, <서경>, <시경> 등에서 관련 자료를 추출해낸다. 그 밖에도, <춘추사어>와 같은 마왕퇴(馬王堆) 출토 백서(帛書)가 도움을 준다. 그리고 <후마맹서>나 <온현맹서>와 같은 맹약 텍스트들, 청동기 및 청동기에 주조되거나 새겨져 있는 텍스트들(명문·銘文)로부터 당대의 언설을 일정 부분 확보할 수 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정치사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대화편뿐 아니라 아테네 상류층이 민중을 대상으로 해서 행한 아티카 연설문(Attic oratory)도 살펴볼 필요가 있듯이. 그 밖에 한대(漢代)의 사상 텍스트에도 그 이전 정치가들이나 사상가들의 문장이 실려 있으므로, 적절한 사료 비판을 통과하면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이 <논어>에 담긴 생각의 역사적 맥락을 재구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렇게 해서 드러난 춘추시대의 모습은 <논어>에서 드러난 공자의 입장 역시 당대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앞으로 살펴보겠듯이, 공자는 도대체 예상할 수 없었던 발언을 갑작스럽게 해낸 천재가 아니라, 이미 선례가 있는 입장이나 경향을 나름대로 소화해낸 사람이었다. 당대의 자료 속에 들어가 보면, 공자는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했던,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언젠가부터 대학시절의 선생이 고독한 천재라기보다는 궁핍한 시대에 살면서 마주한 현실의 문제와 고투했던 당대의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처럼.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