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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9 03:13 수정 : 2017.11.09 15:08

6월항쟁 30돌과 촛불시민혁명 1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 ‘한국의 민주화 30년’이 7~8일 서울 광화문 세종홀에서 열렸다. 에드워드 베이커(왼쪽), 브루스 커밍스(오른쪽), 최장집, 김우창, 이부영 등 국내외 석학들이 참여해 한국 민주화의 의미와 향방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제공.

‘한국의 민주화 30년’ 국제학술회의

6월항쟁 바통 이어받은 촛불혁명
‘정치 효능감’ 높였지만 ‘불신’도 여전
갈등 조정자로서 국가 역할 중요
최장집·김우창·브루스커밍스 등 참여

6월항쟁 30돌과 촛불시민혁명 1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 ‘한국의 민주화 30년’이 7~8일 서울 광화문 세종홀에서 열렸다. 에드워드 베이커(왼쪽), 브루스 커밍스(오른쪽), 최장집, 김우창, 이부영 등 국내외 석학들이 참여해 한국 민주화의 의미와 향방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제공.
민주주의에는 ‘완성’이란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1987년 6월항쟁이 건넨 ‘한국 민주주의’의 바통을 2016~2017년 ‘촛불’이 받아들었을 뿐이다. 출산율·자살률 등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주는 모든 지표가 악화된 어려운 현실이 있다. 촛불을 딛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나가야 하는가?

6월항쟁 30돌을 맞아,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는 7~8일 서울 광화문 세종홀에서 ‘한국의 민주화 30년―세계 보편적 의미와 전망’ 제목의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최장집·김우창·임혁백 등 국내 석학들과 이남희·구해근 등 재외 한국인 석학, 베르너 페니히, 브루스 커밍스, 에드워드 베이커 등 한국 민주주의에 오랜 관심을 가져왔던 국외 석학들이 대거 참여해, 한국 민주주의를 더 공고화할 방향에 대해 저마다의 과제를 제시했다.

촛불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기반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의 발표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국가별 가치관 조사인 ‘세계문화지도’ 결과를 주요하게 인용한 장 교수는, “6월항쟁 이후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은 경제 수준이 향상됐는데도 ‘탈물질주의’ 가치가 늘어나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가”라고 짚었다. “북한의 위협, 성장에 대한 강박, 사회안전망 결여로 인한 불안, 사회적 자본의 약화, 낮은 정치 효능감” 등의 요인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났어야 할 탈물질주의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 결과 한국은 “‘먹고 사는 문제’는 극적으로 해결했으나, ‘함께 사는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고 했다.

그렇다면 촛불집회는 무엇을 바꿨을까? 장 교수는 “촛불에 참여한 사람들의 정치 효능감이 일부 늘어나긴 했으나, 근본적인 ‘정치 혐오 및 불신’은 바뀌지 않았고 정당이 아닌 특정 정치인을 좇는 ‘팬덤 정치’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최순실 사태’ 이후 정당의 지지자 상당수가 부동층으로 이동(53.4%)한 것이 이를 뒷받침하는 현상이다. 또 “촛불집회 가운데 여러 사회 이슈들이 함께 제기됐으나, 이를 조직화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막판에는 ‘적폐 청산’이라는 하나의 폭넓고 모호한 개념으로 이를 한번에 쓸어담는 현상이 나타났다”고도 짚었다. 이런 분석을 통해 그는 “민주주의의 미시적인 기반을 닦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6월항쟁 30돌과 촛불시민혁명 1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국제학술회의 ‘한국의 민주화 30년’이 7~8일 서울 광화문 세종홀에서 열렸다. 최장집, 김우창, 브루스 커밍스 등 국내외 석학들이 참여해 한국 민주화의 의미와 향방에 대해 논의를 벌였다.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이 ‘남북 평화공존과 수교시대를 열어야’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제공.
국내 정치학자들은 대체로 국가에 한층 더 높은 책임성을 부여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고, 복합적이고 혼합적인 민주정체를 심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제안을 내놨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민주주의 국가의 통치체제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그것을 통해 국가의 능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통치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장에서 운동의 정치를 더 확대하는 등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양손잡이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는 “위계적인 대의민주주의와 수평적인 탈허브형 소셜미디어 민주주의가 혼합, 복합, 융합된” ‘헤테라키 민주주의’를 제안했다. 또 지난 ‘다중’이 이끈 ‘촛불혁명’은 이미 그런 ‘헤테라키 민주주의’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번 학술회의를 주도적으로 기획한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세계 최악의 출산율·자살률 등 각종 통계지표를 제시하며, ‘인간 조건의 급속한 발전’과 ‘인간 실존의 급격한 악화’가 공존하는 한국의 현실을 짚었다. 사회적 갈등을 수렴·조정·해결해야 할 국가가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 주된 원인으로, “타협을 통한 갈등의 해소와 안정의 증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왜곡된 대표체계를 통한 승자독식 권력구조와 대통령 권력 독점의 해체, 책임정치·의회정치·정당정치의 구현, 영역별 부분주의를 통한 사회적 역동성과 자율성 증대, 연합정치, 대의민주주의에 바탕해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혼합민주주의’” 등을 구체적인 과제들로 제시했다.

정치 말고도 다양한 영역의 논의들이 오갔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영문학)는 ‘민주화, 인간화, 정신 원리’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정신의 힘’을 강조했다. 촛불을 통해 ‘체제의 정립’이 오늘날 과제로 떠올랐는데, 그에 못지않게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정신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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