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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3 20:20 수정 : 2017.07.13 20:27

카렌 암스트롱의 바울 다시 읽기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호영 옮김/훗·1만5000원

초기 기독교의 정착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바울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그가 여성 혐오론자, 노예제 지지자, 악의적인 권위주의자였다는 등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근현대 서양의 정치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바울을 끌어들여 입맛대로 그의 사상을 풀이했다.

<축의 시대> <신을 위한 변론> 등 묵직한 저작들을 써온 종교역사학자 카렌 암스트롱 역시 1983년 바울에 대한 텔레비전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처음에는 바울이 어떻게 기독교를 훼손했는지, 사랑이 가득한 예수의 원래 가르침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런 관점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결국 “바울을 존경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매우 좋아하게 됐다”고 밝힌다.

영국 출신의 종교 역사학자 카렌 암스트롱. 출처 위키미디어
그가 2015년 쓴 <바울 다시 읽기>는 바울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넘어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려고 시도한다. 지은이는 신약에서 바울이 썼다고 전해지는 서신들이 실제로는 전부 그가 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울이 직접 쓴 것으로 판명된 것은 데살로니가전서, 갈라디어서, 고린도전서와 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로마서 등 7개뿐이고, 이들은 ‘진정서신’으로 불린다. 반면 골로새서, 에베소서, 데살로니가후서 등은 바울의 사후에 쓰인 것으로 ‘제2 바울 서신’이라고 일컫는다. 지은이는 “바울 사후에 이 서신들을 쓴 사도들은 바울의 목소리를 좀 줄이고, 그의 급진적인 가르침을 그리스-로마 사회에 좀 더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지적한다. 바울에 대한 오해와 왜곡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바울의 ‘진정서신’만을 신뢰할 만한 근거로 삼아 바울의 행적을 다시 뒤쫓는다. 바리새인으로서 초기 기독교 운동을 박해했던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의 계시를 받은 뒤 남은 일생을 그 계시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수행하는 데 바치게 된다. 바울의 행적에서 지은이는 무엇보다 그가 예수와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의 구조적인 부정에 반대했고, 인종·계급·성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 싸웠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울은 로마 제국의 하수인으로서 지역 귀족들이 민중을 지배하는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에클레시아’(민회)에 대항하여 예수 운동을 펴는 에클레시아를 세웠다. 모두가 평등하며 서로 구제하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이상이 그 중심에 있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진정서신’과 ‘제2 바울 서신’ 사이에 드러나는 차이점에 주목한다. 바울은 “열등한 몸의 지체들이 머리보다 더 큰 영예를 받는 상호의존적인 공동체”를 지향했으나, ‘제2 바울 서신’에서 “그리스도는 굳건히 머리의 위치를 지킬 뿐 더는 몸 전체 그리고 에클레시아의 모두와 동일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주류 사회와 장기간 공존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던 바울 사후 예수운동의 시대적 상황을 진단하고, 그런 배경 때문에 “바울의 유토피아적 평등주의가 한층 위계적인 관점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또 오늘날 교회와 신앙이 과연 원래의 바울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부당하게 왜곡된 바울을 따르고 있는지 묻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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