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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30 19:23 수정 : 2017.05.30 21:29

【짬】 터키언어협회 첫 공로상 받은 이용성 박사

이용성 박사는 2000년 1년 동안 북키프로스 가지마우사에 있는 동지중해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하다 귀국한 뒤 15년째 시간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어와 터키어는 평안도·경상도 사투리 같아요.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터키말을 알아듣는데, 터키 사람은 못 알아듣죠. 러시아 타타르공화국 사람들과 카자흐 사람들도 서로 말을 잘 알아들어요.”

이용성(53) 박사는 2008년부터 해마다 터키언어협회 초청을 받아 튀르크학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 항공료 등 경비 전액을 협회가 대줬다. 올해는 조금 특별했다. 지난 23일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21회 튀르크학대회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서 직접 공로상을 받았다. 터키 학자 6명을 비롯해 키르기스, 카자흐, 이스라엘, 이란, 러시아 학자 등 11명과 함께 받았다. 그가 튀르크학에 기여한 공로를 튀르크학 종주국에서 인정한 것이다. 터키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가 1932년 사재를 털어 만든 이 협회가 공로상을 시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를 29일 서울 교대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터키 정부는 지난 3월 올해를 ‘튀르크어의 해’로 선포했다. 알타이어족 계통인 튀르크계 언어로는 터키어, 키르기스어, 우즈베크어 등 30여개의 언어와 방언이 있다. 러시아와 중국, 이란에도 이 언어를 쓰는 소수민족들이 폭넓게 분포한다. 세계에서 약 1억5천만~2억명 정도가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 튀르크어는 몽골어, 만주-퉁구스어와 함께 알타이어족에 속하는데, 흔히 한국어도 이 어족에 포함된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대 지리교육과 82학번인 이 박사는 3년 남짓 교사 생활을 하다 터키로 떠났다. 고교 때부터 꿈꿔온 튀르크어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경기 가평 산골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사회과 부도를 보는 게 좋았어요. 초등 4학년 때 전세계 수도를 다 외웠죠.” 중학생 때는 우리 선조가 살았던 만주땅 등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방식으로 우리 국경선을 다시 그어 보기도 즐겼다. “돌궐과 같은 튀르크계 유목민이 우리를 침략한 중국과 맞섰잖아요. 튀르크어를 알면 우리 언어나 역사 연구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어요.”

최근 학술대회 터키 대통령 직접 시상
“하제테페 대학 석·박사 논문 인정”
‘튀르크어의 해’…1억5천만~2억명 사용

고교때 중국과 맞선 튀르크 언어 관심
교사 사표뒤 터키행…15년 홀로 연구
“동료도 후학도 프로젝트 지원도 없어”

그는 터키 앙카라 하제테페 대학에서 고대 돌궐어 최고 전문가인 탈랴트 테킨 교수 지도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8세기 초 고대 돌궐 비문은 튀르크어가 문자로 기록된 최초 자료다. 석사(<튀르크어들에서 친족 용어들>)와 박사(<튀르크어들에서 후치사들>) 논문은 1999년과 2004년 이스탄불에서 책으로 나왔다. 터키언어협회는 이번에 상을 주면서 두 논문이 튀르크학에서 “상당히 중요한” 업적이라고 평했다. 2008년엔 스승의 돌궐어 비문 연구 대표작을 역주한 <돌궐비문 연구>를 국내 출판해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영문으로 펴낸 <(튀르크계 언어) 출름어의 중류 출름방언 연구>는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지금까지 쓴 논문 54편 가운데 8편이 국제공인 학술지에 실렸고, 4편은 게재가 확정됐다. 특히 재작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연 학술대회에서 100년 이상 풀리지 않았던 돌궐 비문 해석과 관련해 자신만의 답을 제시해 당시 참석했던 독일 원로교수의 칭찬을 듣기도 했단다. 이 논문은 올해 국제공인 학술지인 <독일동방학지>에 실릴 예정이다.

이런 성과에도 그는 자신의 삶을 두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고 했다. “국내엔 튀르크어학 연구자가 사실상 저 혼자입니다. 후학도 없어요. 1년에 한번 터키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게 유일하게 동료 연구자를 만나는 기회입니다.” 비정규직 연구자여서 한국연구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데 최근 몇년간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2003~09년 재단 지원을 받아 튀르크계 언어 현지 조사를 했어요. 6개 나라를 방문해 200일가량 머물렀어요. 그 뒤로는 신청을 해도 받아주지 않더군요.” 현재 서울대에서 터키어 2개 강좌를 맡고 있다. 이도 수강생이 줄면 폐강될 수 있다. “국내 언어학 전공자들은 장래 취업 등을 고려해 한국어와 관련도가 큰 언어를 택합니다. 또 사회가 바라는 건 언어가 아니라 지역학이지요. 언어는 뒷전입니다.” 그는 자신이 수행한 튀르크계 언어 현지조사 자료 분석에만 앞으로 20년은 걸리리라고 봤다. “연구자가 없어 자료들이 사장되고 있어요. 일본은 특수 분야를 택해도 먹고살 수 있어요. 연구소도 있고 프로젝트도 쉽게 딸 수 있지요.”

돌궐 비문엔 고구려 사신 얘기가 나온다. “고조선 이전에도 튀르크족과 한민족의 접촉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적인 증거는 없어요. 돌궐 비문에만 나옵니다. 돌궐 1차 제국 때 왕이 죽으니 고구려 조문단이 왔다는 내용이죠. 동쪽 사신 가운데 고구려를 거란 등에 앞서 가장 먼저 언급했어요. 고구려를 중요하게 본 거죠. 그 뒤로는 한민족과의 접촉이 끊겼어요.”

튀르크어가 러시아어와 몽골어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점도 안타깝다고 했다. “2008년 러시아 하카스 공화국 수도 아바칸에 갔어요. 간판이 다 러시아어였죠. 하카스작가협회 간판만 하카스어를 병기했어요. 10년 뒤면 하카스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카스어 전공 교수가 진단하더군요. 이란 쪽 튀르크어는 페르시아어식 구문에 낱말만 부분적으로 튀르크어를 쓰더군요.”

그는 한국에서 연구 전망이 보이지 않으면 터키행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도 터키 친구로부터 터키 대학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적은 보수와 가족 때문에 거절했어요. 하지만 이 땅에서 프로젝트 기회를 얻지 못하면 결국 떠나야겠죠.”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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