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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6 18:24 수정 : 2020.01.07 02:33

북서울미술관 1층과 2층 사이 공간에 들어선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2019년 신작 <탑의 그림자>를 바닥에서 올려다본 모습. 무영탑 전설이 깃든 불국사 석가탑 조형물을 연못의 수면을 상징하는 중간 부분의 투명아크릴판을 경계로 위아래 양쪽에 모두 만들었다. 바로 서거나 그림자처럼 거꾸로 매달린 탑 형상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실재와 허상, 역사와 분단의 실체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수면을 의미하는 투명아크릴판에는 실제 물이 흘러 두 탑의 경계는 더욱 신비스럽고 모호하게 투영된다.

[‘송구영신’ 맞춤 전시장 두 곳]

레안드로 에를리치 서울개인전
불국사 석가탑 전설로 영감 얻어
수면 위아래 붙인 각 4.2m 모조탑

서울대 미술관 ‘시간을 보다’전
국내외 작가 10여명 ‘시간’ 주제로
사진·회화·설치 작품 80여점 전시

북서울미술관 1층과 2층 사이 공간에 들어선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2019년 신작 <탑의 그림자>를 바닥에서 올려다본 모습. 무영탑 전설이 깃든 불국사 석가탑 조형물을 연못의 수면을 상징하는 중간 부분의 투명아크릴판을 경계로 위아래 양쪽에 모두 만들었다. 바로 서거나 그림자처럼 거꾸로 매달린 탑 형상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실재와 허상, 역사와 분단의 실체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수면을 의미하는 투명아크릴판에는 실제 물이 흘러 두 탑의 경계는 더욱 신비스럽고 모호하게 투영된다.

“그림자 없는 탑이라니, 정말 매혹적이네요. 일단 탑의 그림자부터 만들어볼게요.”

지난해 8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레안드로 에를리치(47)는 우연히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 얽힌 무영탑 이야기를 들은 뒤 이렇게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작업실에 전시 협의를 하러 찾아온 방소연 북서울미술관 큐레이터 앞에서였다. 한국 전통 전설이라며 방 기획자가 들려준 아사달 아사녀의 무영탑 전설을 접한 작가는 영감에 휩싸였다.

“탑이 보이지 않자 못에 뛰어든 아사녀는 연못에 탑 그림자가 떠오르길 얼마나 갈망했을까요. 그렇게 간절한 소망이 어린 탑의 그림자는 실재 탑보다 더 절실한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요.”

그는 수면 위의 탑과 수면 아래 그림자를 단숨에 드로잉하면서 작업 구상을 방 큐레이터 앞에 풀어놨다. 현대 미술가들은 예측불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지점에서 불쑥 상상하고 영감을 얻고, 괴력을 내어 작품을 만든다. 무영탑에 빠진 에를리치는 불과 넉 달 뒤인 지난 연말, 자신의 개인전 ‘그림자를 드리우고’(3월31일까지)가 열리고 있는 북서울미술관에 신작 <탑의 그림자>를 내놓았다. 수면 위에 똑바로 선 석가탑과 수면 아래에 거꾸로 매달린 그림자 석가탑을 빚어낸 것이다.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신작인 <구름(남한), 구름(북한)>. 남북한 지도 형상에서 영감을 얻어 9개의 프린트된 유리판을 겹쳐 만든 이 작품은 덧없이 뭉쳤다가 사라지는 구름 덩어리를 통해 분단의 실체에 대해 느끼는 제3세계 작가의 무상한 감정을 풀어놓는다.

스티로폼 몸체에 돌빛을 입힌 모조탑의 높이는 각각 4.2m. 합쳐서 높이 8m가 넘는 두 탑 사이를 대형 투명아크릴판(길이 7m·폭 3m·두께 3㎝)이 수면처럼 가른다. 아크릴판 위로 실제 연못처럼 1톤의 물이 흐른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래 탑은 수면에 비친 그림자 같지만, 바닥에서 위쪽을 보면, 아크릴판 수면 위로 환상처럼 탑이 어룽거리는 판타지다.

“작가는 서로의 존재를 그리워하는 전설 속 아사달 아사녀의 마음을 끌어들였어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요즘 가상 이미지를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감을 또렷한 실체로 보여준 겁니다.”(방 큐레이터)

에를리치는 수면 위아래에서 허구와 실재가 뒤섞이는 <수영장>과 정원의 거울을 통해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잃어버린 정원> 같은 설치작품으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엔 미국 마이애미 바젤 아트페어에서도 모래를 덮어쓴 차량의 설치작품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는 개막식에서 <탑의 그림자>를 “올해(2019년) 내 최고 작품”이라며 기뻐했다. 지난 20여년간 거울을 소재로 착시와 반영에 천착했던 작업은 이번 전시를 통해 한층 진화했다. 20년 전 내놓은 <수영장>에 신라 탑이 얽혀든 이번 신작으로 깊이 있고 진중한 동양적 울림까지 담았다는 평가다.

‘시간을 보다’전에 나온 배남경 작가의 목판화 <새>(2012). 나뭇결에 드러난 세월의 연륜이 일상의 동물이나 사물, 도시 풍경을 담은 판화의 내용과 어우러져 시간성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구름(남한, 북한)>도 눈여겨봐야 할 신작이다. 남북한 지도 형상의 구름이 9개의 프린트된 유리판에 겹쳐 나타나는 이 설치조각은 덧없는 구름을 통해 분단에 대한 3세계 작가의 무상한 감정을 풀어놓는다. 이 작품을 보고 다시 <탑의 그림자>를 보면 수면 위아래로 나누어진 두 탑은 경계가 모호한 채 갈라진 남북의 상징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연기설이나 실체·허상의 관계를 짚은 ‘색즉시공’의 불교 사유를 서구 작가의 설치작업으로 음미할 수 있다.

‘시간을 보다’전에 출품된 폴란드 거장 로만 오파우카의 그림. 작가가 살아온 햇수를 꾸준히 기록해 캔버스에 열을 지어 집적했다.

시간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인식과 작업 방식을 보여주는 서울대 미술관의 ‘시간을 보다’전(3월12일까지)도 잇대어 볼 수 있는 전시다. 흐르는 시간을 순간포착하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기, 수행을 통해 시간성을 표면화하기라는 세 영역에 맞춰 국내외 작가 10여명의 사진, 회화, 설치 등 80여점을 내놓았다. 나뭇결에 드러난 세월의 연륜을 동물이나 사물, 풍경과 버무려 시간성에 대한 성찰을 끌어낸 배남경 작가의 목판화, 비누 조각이 닳으면서 나타나는 표면의 흔적에 주목한 구본창 작가의 사진, 하루 한순간 사물과 공간에 비친 시간의 흔적을 모호한 느낌의 화면들로 포착한 이현우 작가의 작업 등은 곱씹으며 보게 되는 작품들이다.

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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