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07 18:59
수정 : 2019.11.08 10:29
【짬】 서양화가 강연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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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균 화백이 7일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80년 5월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5’ 시민집담회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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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1년 서울 신세계백화점 미술관에 전시된 ‘하늘과 땅 사이 1’은 작품을 본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가로 259㎝, 세로 194㎝의 대형 캔버스(200호)는 잿빛으로 채워져 있었고 곳곳에는 붉은 피를 흘리는 헐벗은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시신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는 사람, 하늘을 쳐다보며 탄식하는 사람의 표정에서는 깊은 고통이 전해졌다. 작품에는 특별한 설명이 없었지만 관객들은 누구나 1년 전 광주에서 일어난 참상을 그린 것이라고 직감했다. 얼마 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을 가리켜 스페인 내전을 폭로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딴 ‘한국의 게르니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작품을 그린 사람은 당시 마흔살을 맞은 젊은 화가 강연균(78)씨였다. 작가적 역량은 출중했지만 미술 본연의 심미적 기능에 천착하던 화가였기에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했다. 이후 리얼리즘 미술로 본격 뛰어든 강 작가는 미술을 통해 우리 사회 현실을 알리고 아픔을 나누며 대중들과 소통했다.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는 강 화백이 24년 만에 5·18을 주제로 다시 붓을 들었다. 내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하늘과 땅 사이 5’ 연작 7점을 새로 선보인다. 첫 작품 ‘하늘과 땅 사이 1’을 그린 지 38년, 최근작 ‘하늘과 땅 사이 4’를 작업한 지 24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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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 5-19일 양동다리에서 부딪힌 공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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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4시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린 ‘80년 5월 강연균의 하늘과 땅 사이-5’ 시민집담회에서 강 화백은 신작을 내보이며 “5·18을 주제로 작업하면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그동안 외면했었다. 40주년을 앞두고 더는 모른 체할 수 없어 마음의 짐을 덜고자 작품에 임했다”고 말했다.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집담회에서 작가는 ‘하늘과 땅 사이’ 연작에 얽힌 사연과 직접 겪은 5·18에 대한 경험을 풀었다.
첫 5·18 작품명을 ‘하늘과 땅 사이’로 정한 이유에 대해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은 하늘과 땅 사이라고 생각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폐해를 작품에 담았기에 이름도 ‘하늘과 땅 사이’로 붙였다”고 설명했다.
1981년 열린 첫 전시 때는 그림 내용이 특별하다는 소문을 듣고 당시 신세계미술관 관할 경찰서인 남대문경찰서 형사가 찾아와 강 화백에게 무엇을 그린 그림이냐고 물었다. 강 화백이 “제목 그대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핵개발과 정치적 대립, 전쟁 등으로 인한 인간 고통을 표현한 것”이라고 답변하자 형사는 그냥 돌아갔단다.
1981년 5·18 주제 ‘하늘과 땅 사이’
충격적 표현 ‘한국판 게르니카’ 별칭
24년 만에 연작 7점 소개 집담회
“잊으려 해도 아른거리는 그날 기억
작품에 정면으로 담으며 씻어내려”
강 화백은 이날 집담회에서 “당시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민중미술이 탄압받을 때인 1980년대 중후반이었다면 큰 고초를 겪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그 뒤로 1984년, 1990년, 1995년 세 차례에 걸쳐 ‘하늘과 땅 사이 2∼4’ 연작을 완성했다.
‘하늘과 땅 사이 5’는 5·18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감정과 인상을 바탕으로 그렸다. 먹먹한 마음과 지지부진한 진상규명의 답답함을 표현하려 모두 목탄으로 제작했다.
1980년 5월27일 새벽 광주 와이더블유시에이 건물에서 산화한 시민군을 그린 ‘박용준의 피’는 널브러진 철모에 피가 흥건히 고여있고 주변에는 먹다 남은 빵이 놓여 있다. 작가는 캔버스 밑에 ‘27일 새벽 마지막까지 항전했던 시민군(박용준)의 자리(YWCA 2층 입구 창문 쪽)에는 다 먹지 못한 빵 한 조각과 널브러져 있는 헬멧에는 흥건한 피가 고여있었다’고 목격담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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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 5-박용준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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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양동다리에서 부딪힌 공수부대’는 작가가 실제 80년 5월19일 마주친 공수부대원을 그렸다. 곤봉을 든 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공수부대원의 눈빛을 통해 그가 느꼈을 공포감이 전해진다. 강 화백은 “굶주린 늑대처럼 보였다”고 기억했다. 또 ‘무명열사의 관’ ‘논에 처박힌 시민군 버스’ ‘시신 끌고 가는 두 남자’ ‘선혈이 낭자한 YWCA’ 등을 통해 광주시민들과 아픈 기억을 나눴다.
강 화백은 그동안 5월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기 꺼렸지만 나의갑 5·18기록관장의 간청에 집담회 참석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5·18이 어느덧 40주년이지만 광주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이번 작품이 광주 시민들의 아픔 해소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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