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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6 18:15 수정 : 2019.11.07 02:36

제1회 전태일힙합음악제를 기획한 래퍼 아날로그 소년, 유현아 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 가리온의 엠시 메타(왼쪽부터)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을 형상화한 벽화 앞에 서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6일 제1회 전태일힙합음악제]

래퍼 ‘아날로그 소년’ ‘엠시 메타’
전태일기념관 유현아 팀장과 함께
400여팀 중 뽑은 12팀과 본선 준비
딥플로우 등 정상급 래퍼 심사 나서

“궤를 같이 하는 전태일과 힙합 정신
스웨그·플렉스에 갇힌 음악 편중 넘어
사랑·행동·연대의 목소리 듣고파…
한국 시대상 품은 레퍼 등용문 되길”

제1회 전태일힙합음악제를 기획한 래퍼 아날로그 소년, 유현아 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 가리온의 엠시 메타(왼쪽부터)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전태일을 형상화한 벽화 앞에 서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중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22살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햇볕도 들지 않는 좁은 다락방에서 초과근무수당도 없이 하루 14시간 넘게 재봉사 보조원(시다)으로 일하던 13~17살 소녀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 자신도 보조원 생활을 거친 터였다.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고자 노동청·서울시·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허사였다. 근로기준법 화형식 시위가 경찰의 방해로 막히자 그는 끝내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마지막 외침을 남겼다.

“분신자살? 내도 들어봤다/ 평화시장 거서 질렀드만/ 그 쪼깨난 아이가 안타깝다 아이가/ 신문에 난 그 기사 좀 봐라/ 2평 방안 열세 사람 다 꼬라 처박고/ 그 쥐꼬리만한 월급 주면서 일 다 시키고/ 피 토하면 그냥(걍) 다 짤라뿌고/ … / 페이는 개뿔 투잡을 4년째/ 이제 난 노동이 지겨워져….”(GPS ‘그는 죽은 것일까, 그를 죽인 것일까’ 중)

2019년 11월, 전태일 정신이 힙합 음악으로 되살아난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하 전태일기념관)은 오는 16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1회 전태일힙합음악제를 연다. 참가를 신청한 400여개 팀 가운데 1차 온라인 예심과 2차 실연 심사를 통과한 열두 팀이 최종 본선 무대에 오른다. 정상급 래퍼 딥플로우·팔로알토·허클베리피의 심사로 세 팀을 선정해 각각 상금 100만원과 음원 제작·발표의 기회를 준다.

지난 4월 문을 연 전태일기념관은 전시, 공연, 교육 프로그램 등 문화 콘텐츠를 통해 전태일 정신과 노동의 가치를 전파하고자 설립됐다. 지난해 준비단 시절 10대들이 좋아하는 힙합 경연대회를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앨범 <현장의 소리> 등을 발표하며 사회 현실을 노래해 온 래퍼 ‘아날로그 소년’을 누군가가 추천했다. 아날로그 소년은 한국 힙합 1세대 그룹 가리온의 ‘엠시(MC) 메타’도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전태일기념관의 유현아 문화사업팀장은 “전태일이란 이름이 너무 무거우니 엠시 메타와 아날로그 소년으로 이를 가려보자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두 래퍼와 회의를 하면서 전태일을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소년은 “힙합은 본래 빈민가 흑인들이 자신의 삶과 울분을 랩으로 표출하면서 시작됐다. 세상에 분노하며 혼신을 다해 목소리를 낸 전태일과 힙합의 정신이 궤를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오는 16일 오후 5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제1회 전태일힙합음악제 포스터. 전태일기념관 제공

하지만 요즘 한국 힙합신에서는 진중한 가사가 좀처럼 드물다. <엠넷>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통해 이른바 ‘스왜그’(자기 과시)와 ‘플렉스’(돈 자랑)로 가득한 노래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강일권 대중음악평론가는 “미국 흑인들은 인종차별, 공권력의 폭력 등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랩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한국은 환경이 다른데다 힙합의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의 정치혐오 성향도 강해 래퍼들이 진지한 얘기보다 돈 벌고 돈 쓰는 얘기를 주로 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엠시 메타도 편중을 지적한다. “강의를 해보면 학생들이 잘나가는 래퍼들 흉내만 내요. 남 얘기 말고 자기 생각을 가사로 써보라고 하면 되레 ‘제 얘기를 써도 돼요?’ 하고 되물어요. 힙합은 으레 스왜그·플렉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어 그는 “<쇼미더머니> 울타리 밖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래퍼들의 통로가 되어 힙합이 세대 간 연결고리가 되도록 만드는 게 전태일힙합음악제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주제를 전태일과 노동운동에만 한정한 건 아니다. 전태일 정신의 바탕인 ‘사랑·행동·연대’를 주제로 내세웠기 때문에 진솔한 목소리라면 그 어떤 이야기도 가능하다.

“난 그저 랩이 좋아서 이걸 시작했고/ 금목걸이 그런 거 난 몰라/ 근데 왜 사람들은 티브이 나가서/ 돈을 벌어야지 꼭 다 인정한다는 말투로/ 내 음악은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티브이에 나가보래/ 음악이 어떻든 거기에 관심은 없다/ 그러는 이유는 아무리 포장해봐도 결국 돈 돈 때문이네….”(줍에이 ‘난 이미 성공했지’ 중)

유현아 팀장은 “전태일도 처음부터 노동운동가는 아니었다. 17살에 평화시장에 들어간 소년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고 눈뜨기 시작한 거다. 전태일힙합음악제에 응모한 친구들을 보면, 학교·사회·어른들을 향해 속으로만 쌓아둔 불만과 생각을 랩으로 분출한다. 이 친구들이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구나,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엠시 메타는 이런 바람을 나타냈다. “유재하음악경연대회가 진솔하게 자기 얘기를 하는 싱어송라이터의 등용문이 된 것처럼 전태일힙합음악제가 한국적 정서와 시대상을 품은 래퍼의 등용문이 됐으면 좋겠어요. 미국에서 많은 래퍼가 마틴 루서 킹을 언급하며 흑인 인권을 얘기하듯 우리도 전태일 정신을 자연스럽게 힙합 안에 녹여 전승하기를 바랍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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