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지나도록 명반 손꼽히는
첫 앨범 발표 넉달만에 요절한 뒤
아버지가 만든 장학회서 시작해
9일 건국대서 ‘30번째 경연대회’
김민기 학전 대표 등 주도적 참여
조규찬·유희열·김연우·방시혁 등
걸출한 뮤지션 ‘유재하 동문’ 배출
한때 재정난·오디션 범람에 위기
동문회·CJ 도움으로 명맥 이어가
미디 장비 허용 등 변신 꾀하며
“제2의 유재하 만나는 계기 되길”
1987년 11월1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강변북로 인근을 달리던 자동차가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마주 오던 택시와 정면충돌했다. 당시 조수석에 앉았다가 숨진 이는 25살 청년 유재하.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낸 지 넉달 만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기리고자 당시 돈 3억5000만원의 사재를 출연해 유재하음악장학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1989년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열어 입상자 10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유재하의 뒤를 잇는 싱어송라이터의 등용문 구실을 한 대회의 시작이었다.
이 대회가 올해 30회를 맞았다. 오는 9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새천년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선 역대 최다인 755팀의 경쟁을 뚫고 올라온 고경, 김효진, 니쥬, 방랑자메리, 송예린, 신지훈, 이찬주, 밴드 제이유나, 홍하, 황세영 등 10팀이 경합을 벌인다. 대회를 앞두고 지난 30년을 짚어본다.
■ 유재하, 전설의 시작 유재하는 한양대 작곡과에서 클래식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중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다. 대학생 때부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등에서 건반을 치며 스스로 노래도 만들었다. 재능을 알아본 조용필이 그가 만든 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불러 7집 <여행을 떠나요>(1985)에 실었고, 김현식은 ‘가리워진 길’을 불러 3집 <비처럼 음악처럼>(1986)에 실었다. 1987년 유재하는 9곡을 담은 자신의 첫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발표했다. 클래식과 재즈의 어법을 대중음악에 접목한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앨범은 지난해 한겨레·멜론·태림스코어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유재하는 작사·작곡은 물론 편곡까지 혼자 해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싱어송라이터의 전형을 세웠다는 평도 듣는다.
■ 유재하 동문들의 탄생 유재하음악경연대회의 시작은 고인의 49재를 맞아 서울 광진구 리틀엔젤스예술회관(현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추모음악회였다. 당시 연출을 맡은 김민기 학전 대표는 이후 유재하음악장학회와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가수 조동진·조동익 형제가 이끈 음악공동체 하나음악도 대회 운영을 이끌었다. 1회 대회에서 최고상인 금상 수상자는 조규찬이었다. 이후 고찬용, 유희열, 이규호, 이한철, 조윤석(루시드폴), 김연우, 나원주, 정지찬, 스윗 소로우 등이 이 대회를 거쳐 가수가 됐다. 방탄소년단을 키운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도 이 대회 출신이다.
대회가 순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금리가 12%에 육박했던 초기엔 출연금의 이자로 운영이 가능했지만, 금리가 떨어지면서 재정난에 처했다. 급기야 2005년 열렸어야 할 17회 대회가 무산됐다. 이에 2000년부터 대회 기획을 맡아온 한봉근 <문화방송> 피디의 <수요예술무대> 팀이 나섰다. 이들이 이듬해 연 기금 마련 공연에는 유희열, 김연우, 스윗 소로우 등 대회 출신 가수는 물론 정원영 밴드, 자우림, 박정현, 김광민 등도 참여했다. 덕분에 2006년 17회 대회를 이어갈 수 있었다.
<수요예술무대> 폐지 이후에는 유재하의 이종사촌 장준영씨가 몸담았던 회사 싸이월드가 대회를 지원했다. 2013년 싸이월드마저 어려워지면서 대회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이번에는 대회 출신 음악가들이 ‘유재하동문회’(초대 회장 이한철)를 결성하고 운영을 직접 맡았다. 이를 계기로 동문회원들이 똘똘 뭉치게 됐지만, 재정 문제까지 해결할 순 없었다. 이때 손을 내민 곳이 씨제이(CJ)문화재단이었다. 대중문화를 통한 사회공헌을 추구해온 재단은 2014년부터 대회 운영기금 후원에 나섰고, 지난해부터는 유재하동문회와 대회를 공동 주관해오고 있다.
■ 싱어송라이터의 의미 대회는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도 사실이다. 2006년 입상자 노리플라이, 2008년 입상자 박원·박세진(옥상달빛) 이후로는 이름을 널리 알린 가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초창기부터 심사위원을 맡아온 정원영 호원대 교수는 “초기엔 유재하의 영향력도 대단했고 경연대회도 별로 없어서 재능 있는 친구들이 대거 몰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 올 친구들이 <슈퍼스타케이>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갔다”고 말했다. 시스템화된 아이돌 음악이 대세가 된 풍토도 영향을 끼쳤다.
그럴수록 싱어송라이터의 산실인 이 대회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민기 대표는 “과거 자본·작사·작곡·연주·가창 등이 분업화된 상업주의가 지배하던 대중음악계에서 싱어송라이터는 기존 틀을 거부하고 혼자서 전 분야를 담당한 독립음악 형태를 취했다. 이는 독창적이고 혁명적인 음악 형태”라고 설명했다. 유희열은 “현재 시스템에서 재단돼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음악이 대중산업을 이끌고 있지만, 서툴더라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싱어송라이터의 존재가 대중음악이 꼭 산업만이 아닌 대중예술로서의 가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대회 출신인 임헌일은 “요즘은 아이돌부터 힙합까지 거의 모든 장르 뮤지션들이 직접 곡을 쓰고 노래하기 때문에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더는 특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자기 이야기라는 점이 뻔한 이야기마저 더욱 특별하게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1987년 유재하가 자신이 작사·작곡·편곡까지 한 9곡을 담아 발표한 첫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클래식과 재즈의 어법을 대중음악에 접목한 이 앨범은 지난해 한겨레·멜론·태림스코어가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
■ 수많은 유재하들을 위하여 대회에 애정을 가진 이들은 과거의 위상을 되찾고 유재하의 뒤를 잇는 싱어송라이터들이 꾸준히 나오길 희망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흐름에 맞게 참가 자격을 바꾸기도 한다. 애초 솔로 가수만을 대상으로 했던 대회는 2000년대 중반부터 그룹 참여도 허용했다. 기존에는 만 18살 이상 대학(원)생만 참여 가능했으나, 지난해부터는 만 17살 이상 신인 싱어송라이터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또 미리 녹음한 게 아니라 그 자리에서 연주하는 거라면 미디(컴퓨터 음악) 장비도 허용하기로 했다. 최신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정원영 교수는 “‘유재하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디엠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김민기 대표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지금은 기타와 피아노 위주의 음악을 하는 이들이 주로 몰리는데, 밴드나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싱어송라이터들도 많이 참가했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스타가 탄생해서 대회 위상을 높이고 유재하 정신을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올해부터 유재하동문회장을 맡은 박경환(재주소년)은 “본선에 오른 10팀 중에는 멋진 밴드도 있고, 듀오도 있고, 재능 있는 후배들이 많다. 30회를 기점으로 음악신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후배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가 시작하는 9일 오후 6시, 음원사이트를 통해 <제30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음반이 공개된다. 이전에는 대회가 끝나고 최소 반년 뒤에야 음반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본선에 진출한 10팀이 미리 녹음을 했다. 박경환 동문회장은 “여러분들도 대회가 열리는 같은 시간에 참가자들의 음악을 들으며 ‘제2의 유재하’를 직접 발굴하는 재미를 느껴보시라”고 제안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