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줄랭 프렐조카주의 발레 <프레스코화>는 머리카락을 안무의 중요한 모티브이자 도구로 사용한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세계적 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 52번째 작품 ‘프레스코화’로 내한
“벽화 설화는 현대 가상현실을 예견 붓글씨 닮은 머리카락을 모티브로… 춤이란 세계 넘나드는 놀라운 언어”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발레 <프레스코화>는 머리카락을 안무의 중요한 모티브이자 도구로 사용한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앙줄랭 프렐조카주.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훈장(1998)과 공로훈장(2006)을 받은 프랑스 현대무용의 거장. 자신의 이름을 딴 ‘프렐조카주 무용단’을 1985년 창설해, 62살인 현재까지 1년에 1~2편씩 35년간 50편이 넘는 작품을 쏟아내고도 아직 창조의 샘이 마르지 않은 다작의 안무가. 그런 그가 열살도 되지 않는 나이에 발레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작은 사진 한장 때문이었다.
정치적 이유로 망명한 알바니아인 부모 아래서 태어나 경제·문화적으로 척박했던 파리 외곽의 쉬시앙브리 지역에서 살았던 그는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유도를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의 한 여학생에게 빌린 책 속 사진에서 본 발레리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처럼, 발레를 배우는 남자아이는 아무도 없던 그 마을에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발레를 시작한 그는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세계적 안무가가 됐다.
발레안무가 앙줄랭 프렐조카주. 엘지아트센터 제공
그가 자신의 52번째 작품인 <프레스코화>(2016)에서 줄거리로 삼은 중국 기담집 <요재지이>(1766)의 ‘벽화’ 이야기는 그의 삶과 닮은 데가 있다. 여기선 사진이 아니라 한 폭의 벽화다. 한 남자가 중국을 여행하다가 절에 그려진 벽화 속의 세계로 들어가 긴 머리카락의 여자와 사랑을 하다 현실로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현실과 환상의 뒤섞임과 욕망의 덧없음이란 도교적 주제를 담고 있다.
31일 서울 강남구 엘지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앙줄랭 프렐조카주(가운데), 클라라 프레셸(왼쪽), 로랑 르 갈(오른쪽). 엘지아트센터 제공
31일 서울 강남구 엘지(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나온 프렐조카주는 “우리의 삶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하기 때문에 기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며 “‘벽화’ 이야기는 오래된 설화지만 오늘날 점점 더 중요해지는 가상현실을 예견하는 현대적인 면이 있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젊은 관객을 사로잡을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프랑스 시립극장 ‘테아트르 드 라 빌’의 위촉을 받아 제작한 이 작품은 <요재지이>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라가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작품은 대조적인 것들이 충돌하면서 빚어내는 강력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우아하고 감미로운 사랑의 춤 뒤에 곧바로 기괴하고 야만적인 군무가 이어지는 식이다.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의 동작이 수시로 교차하기도 한다. 일렉트로니카 그룹 ‘에어’의 니콜라 고댕이 작곡한 음악들은 이런 기묘한 분위기를 한껏 고양한다.
프렐조카주는 이 작품에서 “동양의 붓글씨를 닮은” 머리카락을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했다. 무용수들은 긴 머리카락을 손으로 펼쳐 올리거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휘감고, 천장에서 내려온 머리카락처럼 생긴 긴 가닥줄에 매달려 안무를 펼친다.
프렐조카주는 작품은 자신의 창작일 뿐 아니라 젊은 무용가들과의 협업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프렐조카주는 “춤은 몸으로 말하는 언어다. 그렇기에 작가가 세심하게 단어를 선택하듯 안무를 정확하게 지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무용수는 나의 뮤즈이기도 하다. 무용수가 배역에 자신을 투영해 만들어내는 몸짓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남성 주역 무용수 로랑 르 갈은 “안무를 창작하는 과정에 무용수들이 이런저런 제안을 했을 때 그걸 프렐조카주가 작품으로 구성해내는 천재성이 놀라웠다”고 전했다.
<프레스코화>에선 풀어헤친 머리카락과 같은 무대 효과처럼 머리카락을 모티브로 한 안무와 무대 장치가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프렐조카주는 “이 연극으로 관객들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초대하고 싶다. 춤이란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들면서도 공통의 감각을 표현해낼 수 있는 놀라운 언어”라고 말했다. 1~3일 엘지아트센터, 6일 부산문화회관, 9~10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02)2005-0114.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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