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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27 15:47 수정 : 2019.10.28 02:33

윌 베네딕트 & 스테펜 예르겐센의 설치 작품 <모든 출혈은 결국엔 멈춘다>. 밤에 식품배달업자로 일하는 달팽이 인간 ‘스네일리언’의 가상 사무실을 꾸며놓았다. 멋모르고 이 사무실로 통하는 문을 연 관객은 기괴한 몰골의 달팽이 인간이 티브이를 보며 앉아 있는 기괴한 모습에 시각적 충격을 받게 된다.

아트선재센터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전

덴마크 야코브 파브리시리우스 기획
국내외 작가 20여명 참여한 순회전

기괴한 마네킹, 바닥 떠도는 얼굴로
부조리한 현실·미래 불안감 등 표현

윌 베네딕트 & 스테펜 예르겐센의 설치 작품 <모든 출혈은 결국엔 멈춘다>. 밤에 식품배달업자로 일하는 달팽이 인간 ‘스네일리언’의 가상 사무실을 꾸며놓았다. 멋모르고 이 사무실로 통하는 문을 연 관객은 기괴한 몰골의 달팽이 인간이 티브이를 보며 앉아 있는 기괴한 모습에 시각적 충격을 받게 된다.

점액질의 달팽이 형상 머리를 가진 괴물인간 ‘스네일리언’이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다. 브라운관 불빛을 받으며 두개의 촉수가 달린 코를 늘어뜨린 모습이다. 더할 나위 없이 기괴한 그의 몰골은 에스에프(SF) 애니메이션 이미지가 아니다. 달팽이 인간은 실제 사람 크기에 일상의 작업복을 걸쳤다. 티브이를 보는 방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 배달원의 평범한 사무실이다. 그래서 더욱 현실감 있게 괴물의 존재감이 다가온다.

마네킹 인형으로 만든 달팽이 인간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들어왔다. 지난달부터 아트선재에 차린 기획전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의 3층 전시장 골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이웃을 만나듯 조우하게 된다. 그로테스크한 얼굴에 경악하거나 놀라는 관객도 있겠지만, 사실 미래의 어느 날 밤 사람들에게 줄 식품을 배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제작자인 미국 작가 윌 베네딕트와 덴마크 작가 스테펜 예르겐센은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조장하려고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다. 인간의 몸이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해 이렇게 변화할 수도 있다는 것, 그의 몰골 자체가 이 세계의 기묘한 불평등이 낳을 미래를 함축적으로 상징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했다.

아니아라 오만의 작품 <최후의 화신>(2016). 이동식 로봇청소기 위에 실리콘으로 뜬 사람의 얼굴을 뒤집어씌운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전시장 바닥을 조용히 돌아다니는 다섯점의 얼굴은 권력의 소리 없는 통제, 감시의 시스템을 떠올리게 한다.

‘…미래한다’전은 내년 부산비엔날레 감독인 덴마크 기획자 야코브 파브리시우스가 만든 순회전이다. 문법에 맞지 않는 제목이 암시하듯 인류가 과거에 남겼거나, 현재에 하거나, 미래에 할 것으로 보이는 여러 행동, 현상의 잔상을 뒤틀고 뒤섞는다. 인류의 현재가 과거의 수많은 기억과 흔적들의 작용이고, 여러 관점으로 내다본 미래의 영향 또한 스며들면서 형성됐음을, 기획자는 한국과 덴마크를 포함한 국내외 작가 20여명의 복잡다단한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출품작 대부분은 미래의 몸에 대한 관심을 표출한다. 이런 맥락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 덴마크 작가 시셀 메이네셰 한센의 <컨트롤룸#1>(2018)이다. 그냥 흰색의 벽이 둘러쳐진 공간이고, 블라인드가 쳐져 안을 볼 수 없는 창문만 달렸는데, 주위에서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만 울려 퍼진다. 철학자와 메탈밴드 싱어가 죽음과 영생에 대한 영문 시구를 읽고 있는 음성을 합성한 것이라고 한다. 영생을 뜻하는 메시지와 몸은 간데없고 절규 같은 음성만이 귓전을 맴돈다는 점에서 실존의 부조리함에 대한 은유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시장 2층에 있는 시셀 메이네셰 한센의 공간설치 사운드 작품 <컨트롤룸#1>(2018). 들어갈 문이 없고 블라인드가 쳐져 볼 수 없는 창문만 달린 방 주위에서 철학자와 메탈밴드 싱어가 죽음과 영생에 대한 영문 시구를 읽고 있는 음성을 합성한 거칠고 사나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공간은 작가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견한 어느 섹스돌 공장의 쇼룸을 재구성한 공간이다.

3층 전시장에선 아니아라 오만 작가가 만든 <최후의 화신>(2016)이란 작품이 바닥을 빙빙 돌아다닌다. 이동식 로봇청소기 위에 실리콘으로 본을 뜬 사람 얼굴을 뒤집어씌운 모습이다. 그렇게 전시장 바닥을 조용히 돌아다니는 다섯점의 얼굴은 권력의 소리 없는 통제, 감시의 총체적 시스템을 떠올리게 하는데, 쪼그라든 인간의 실체를 보여주는 듯하다. 프랑스 문인 미셸 우엘베크는 제 몸을 스캔해 망가지고 뭉개진 사지와 머리통을 떠내면서 포스트 휴먼 시대의 불안감을 펼쳐 보였고, 젊은 작가 강정석은 게임 속에서 분리돼 널브러진 손과 몸의 이미지를 전시장에 재현해놓았다.

‘…미래한다’전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예술가 특유의 예언자적 기질을 중세와 미래라는 화두 속에서 펼쳐 보인 흔치 않은 전시다. 상당수 작품이 몸이 분리되거나 기능이 해체되는 단면을 드러내면서 어두운 미래를 표현하지만, 관객들은 낙천적인 제3세계 작가들의 일부 작품에서 여전히 희망이란 코드도 발견하게 된다. 포에서 쏜 포탄이 수천개의 꽃과 새들로 터져 나오는 이란 작가 알리 아크바르 사데기의 애니메이션처럼 말이다. 11월17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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