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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01 18:30 수정 : 2019.08.01 19:41

1일 낮 호크니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앞 매표소 광경. 관객들이 표를 사기위해 긴줄을 이루며 서있다.

4달만에 30만 관객 넘은 호크니 회고전
전시 무산 위기 넘어 관객 취향 저격
인상파 아닌 현대미술가 전시 예상밖 열광
친숙한 풍경 현대적 색감 등 ‘보는 재미’ 충만

1일 낮 호크니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앞 매표소 광경. 관객들이 표를 사기위해 긴줄을 이루며 서있다.
‘호크니 현상’이라 할 만했다.

장마가 한창이던 지난 30~31일 오후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본관과 그 앞 진입로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4일 끝나는 영국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82)의 회고전을 막판에 보기 위해 관객들이 장대비를 무릅쓰고 몰려온 탓이다.

미술관 매표소 앞에서 시작된 줄은 인근 덕수궁 돌담길 골목까지 200m가량 길게 이어졌다. 입장해도 1층 홀과 전시장인 2, 3층 사이 난간에 긴 줄이 이어져 1~2시간 걸려야 관람이 가능했다. 30일 입장객은 6600여명이고 31일 입장객은 8200여명에 달했다. 7개 전시실은 관객들로 들어찼고 1층 아트숍에서도 한참 줄을 서야 원하는 호크니 굿즈를 살 수 있었다.

미술관 2층 전시실 가장 깊숙한 안쪽 공간에 내걸린 호크니의 70년대 대표작 <클라크 부부와 퍼시>. 그 앞에서 몰려온 관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1일 오후 역시 미술관 매표소는 분주했다. 특히 2층 전시실 들머리의 1950~60년대 드로잉, 판화, 유화 연작들이나 가장 안쪽에 자리한 <클라크 부부와 퍼시> <나의 부모님> 같은 대표작들은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관객이 많았다. 대부분 쉽게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고 진중한 표정으로 작품들을 유심히 주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트숍에선 너도나도 둘둘 만 호크니의 작품포스터를 들고서, 도록과 노트 등을 추가 구매하는 모습들이 이어졌다.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전세계 주요 소장처의 호크니 역대 대작과 드로잉, 판화 등을 모은 이번 회고전의 관객은 지난 23일 30만을 넘어섰다. 미술관의 백기영 학예부장은 막판에 관객들의 열기가 뜨거워 전시 종료 때까지 35만명 이상은 들어올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손익분기점을 대략 20만명 정도로 봤는데, 뜻밖에도 본전시와 거의 대등하게 아트숍 굿즈 판매가 대박을 쳤다. 관객들이 전시뿐 아니라 호크니의 이미지 상품에도 큰 관심을 표명했다”며 “인스타그램을 보니까 미술관 주변을 호크니 스타일로 찍고 스케치하거나, 구도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은 컷들이 수만회나 올라오고 있다. 전례 없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미술 블록버스터 전시가 흥행에 성공한 것도 처음인데, 이런 대중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호응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놀랍다”고 덧붙였다.

2층 전시실 앞부분에 내걸린 호크니의 60년대초반 작품들인 <첫번째 결혼>(오른쪽)과 <두번째 결혼>(왼쪽) 앞에 모여든 관객들. 1일 낮 찍은 모습이다. 평일인데도 2, 3층 전시장의 들머리 공간은 발을 딛기 힘들 만큼 관객들로 들어찼다.
호크니는 개념미술과 설치작품, 미디어아트가 활개 치는 현대미술계에서 여전히 인물과 풍경에 집중하는 작업을 벌여온 대가다. 어찌 보면 고루한 스타일의 작업을 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많은 관객들은 보는 재미가 각별하다는 소감을 쏟아냈다. 이번에 왜 ‘호크니 현상’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처럼 보였다. 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이성민(21)씨는 “80대 작가인데 얼핏 옛날 스타일 같은 풍경과 인물을 그리면서 일러스트처럼 요즘 색감이 느껴지는 게 매력이었다”고 했다. 남편과 같이 온 주부 김현진(59)씨는 “전시장 말미에 나온 영국 평원의 나무숲을 그린 대작을 보자 작품의 의미나 맥락 등을 떠나 가슴이 확 뚫리고 그림 자체의 풍경이 바로 눈과 몸 앞으로 다가오는 쾌감을 느꼈다”면서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시공간적으로 느끼게 해준 기회가 됐다” 고 평했다.

미술관 2층 전시실 가장 깊숙한 안쪽 공간. 가운데 내걸린 작품이 호크니의 70년대 대표작 <클라크 부부와 퍼시>이고 왼쪽이 <나의 부모님>, 오른쪽이 <조지로슨과 웨인슬립>이다. 몰려온 관객들이 삼면에 걸린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를 본 미술계 전문가들도 호평 일색이다. 읽어야 하고 유추해야 하는 기존 현대미술의 난해한 개념을 벗어나 인간의 눈으로 격의 없이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호크니 특유의 친근한 시선이 높은 호응을 이끌어낸 요인이라고 짚는다. 유근택 작가는 “사물과 풍경을 명확하고 단순하게 포착해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회화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작가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다”며 “디지털 사진 작업 등을 활용해 풍경의 사실감과 색감 등을 반영하면서 자신의 감각을 계속 끌어왔다는 부분이 대단하다” 고 평가했다.

애초 전시는 지난해 영국 테이트미술관의 순회전 컬렉션을 기반으로 제안됐으나, 25억원이 넘는 막대한 작품 개런티 때문에 무산될 상황까지 갔다가 소장기획사의 모험에 가까운 투자로 성사됐다. 노년까지 현대적 풍경의 심연을 고민한 작가의 내공과 또다른 맥락에서 보는 것의 재미를 새롭게 즐기려는 한국 관람객들의 취향 변화가 맞아떨어지면서 이 전시는 올해 미술판에 화제와 화두를 낳은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등극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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