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22 18:28
수정 : 2019.07.2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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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함. 에트루리아인들은 망자들의 생전 자태로 함을 장식했다. 몸체에는 부부가 마차를 타고 저승으로 떠나면서 배웅을 받는 모습을 새겼고, 뚜껑에는 석류와 부채를 들고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모습이 새겨졌다. 기원전 9세기 말 타르퀴니아 라치오에서 출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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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전
로마 이전 제국 생활문화 발판 마련
기원전 3~4세기 라치오 유물 300점
‘죽음-삶의 연장’이란 여유와 느긋함
무덤·유골함·공예품 등에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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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함. 에트루리아인들은 망자들의 생전 자태로 함을 장식했다. 몸체에는 부부가 마차를 타고 저승으로 떠나면서 배웅을 받는 모습을 새겼고, 뚜껑에는 석류와 부채를 들고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모습이 새겨졌다. 기원전 9세기 말 타르퀴니아 라치오에서 출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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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삶 자체를 즐기는 게 얼마나 좋은 줄 아는가.
2300여년 전 무덤의 관 뚜껑에 새겨진 망자가 독백하듯 시선을 던진다. 연회용 가운을 걸치고 잔을 든 채 비스듬히 누운 그는 후대인들을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다. 옆자리 다른 석관 뚜껑에도 기분 좋은 표정의 젊은 귀족이 누워 있는 부조상이 빚어져 있다. 그 아래 석관 몸체엔 뜻밖에도 훌쩍 솟구치는 돌고래 한쌍이 나타났다.
죽음의 냉기는 감돌지 않는다. 삶의 풍성함과 느긋함이 생명의 약동과 함께 와닿는 석관의 인물·동물상들이 보는 이의 눈을 정화한다. 한반도가 고조선시대였던 기원전 3~4세기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라치오에 축조한 에트루리아 귀족 무덤의 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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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관. 뚜껑 부분에 누운 망자의 상을 빚고 관 몸체에는 망자의 여정을 상징하는 돌고래들을 부조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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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석관들을 비롯한 고대 에트루리아 문화유산 300여점이 한국을 처음 찾아왔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다. 고대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인보다 앞서 번영했던 에트루리아인들의 풍성한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다. 그들은 미지의 고대인들이다.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100년께까지 피렌체와 피사 등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권에서 도시국가를 이루다 나중 로마제국에 흡수됐다. 기원을 놓고 소아시아나 그리스 이동설, 반도 원주민설이 엇갈리고 언어도 미해독된 상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남겨놓은 예술품과 무덤 건축, 벽화, 공예품 등에 이집트, 바빌론 등의 동방문화와 지중해 그리스문화권의 요소들이 자유분방하게 섞여 있다는 점이다. 현세적인 삶에 충실한 그들의 생활문화는 후대 로마제국이 계승한다.
전시는 진입로를 에트루리아 고대문명으로 떠나는 지중해 바닷길을 그래픽동영상으로 채워 보이고 안쪽 끝에 망자들의 저승 길라잡이를 했던 반트신상을 소개하면서 펼쳐진다.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에서 추린 출품작들은 다섯 영역으로 나뉘어 선보인다. 특유의 건축부재, 무덤의 유골함과 석관, 금속공예품, 지중해 문화의 다양한 영향을 받은 다신교의 다채로운 신상 등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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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특별전 3부 ‘에트루리아인의 삶’ 전시 현장. 에트루리아의 고분 내부 공간을 본떠 만든 얼개다. 안쪽 벽에 그들의 풍요로운 삶을 담은 벽화 재현 영상이 흐른다. 공간 가운데는 기원전 7세기 최고 수장이 사용했던 이륜전차 유물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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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인들은 삶을 한껏 긍정했다. 죽음도 삶의 영원한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산자들끼리 교감할 수 있는 연회를 아주 좋아했다. 장례도 망자가 주연이 되는 연회 형식으로 치렀고, 무덤은 망자가 살던 집 얼개로 꾸미고 생활 모습을 벽화로 그려 넣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무덤 유골함이나 석관의 장식에 조형한 연회 주빈 차림의 망자들이다. 비스듬히 누워서 잔을 들거나 느긋한 표정으로 산자들을 응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일상성을 중시했던 그들의 인식을 엿보게 된다.
신에게 바친 봉헌물에도 남자의 성기, 여성의 자궁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등장하는 데서도 현세적 삶을 중시하는 인식의 단면을 엿보게 된다. 벽화는 실물이 오지 않았지만, 타르퀴니아에 있는 유명한 악기 연주 장면이나 돌고래와 새가 뛰노는 사냥 낚시의 벽화 영상 등을 함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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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트루리아인들이 중시하며 숭배했던 멘르바 여신의 상. 전쟁, 예술, 상업, 지혜의 신으로 그리스신화의 아테네 여신에 해당한다.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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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이집트, 오리엔트 중근동 문화가 융합된 조각예술을 보여주는 묘표석과 다채로운 신상들, 당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금속공예품도 볼 수 있다. 미세한 금알갱이를 이어 붙이는 누금 기법으로 만든 기원전 7세기의 피불라, 귀걸이
등은 최고의 명품이다. 마차를 타고 저승으로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부부의 모습을 새겨넣은 유골함 하단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출품 유물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에트루리아인의 건강하고 강인한 삶을 추체험할 수 있는 전시다. 삶과 연결된 죽음을 생각하는 ‘메멘토 모리’와 삶의 순간들을 즐기는 ‘카르페 디엠’에 충실했던 사람들, 자연스럽고 편안한 그들의 삶이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로런스가 1927년 답사여행을 다녀와서 펴낸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에 쓴 다음 대목은 그들에 대한 가장 적절한 헌사라고 할 만하다. “에트루리아인들에게 죽음이란 여전히 보석과 와인과,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 있는 삶의 즐거운 연장이었다. 황홀한 축복, 천국도 아니었고, 고통의 연옥도 아니었다. 그저 풍요로운 삶의 자연스러운 연장이었다.” 10월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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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또는 장신구의 안전핀인 피불라. 기원전 7세기 토스카나 지방 출토품으로 미세한 금알갱이를 정교하게 붙인 누금 기법의 진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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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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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진입로 모습. 에트루리아 고대문명으로 떠나는 지중해의 푸른 바닷길의 모습을 그래픽 동영상으로 펼쳐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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