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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6 17:47 수정 : 2019.07.16 19:52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경기도 용인 자택 작업실에서 펜더로부터 헌정받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헌정 기타 기리며 14년 만에 새 앨범
“내가 누군지 알리려고” 음악 작업

신대철·윤철·석철 삼형제와 3년간
새로운 주법·창법으로 8곡 담아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경기도 용인 자택 작업실에서 펜더로부터 헌정받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한국 록의 대부는 기타를 멘 채 문을 열어주었다. 세계적인 기타 제조사 펜더가 2009년 에릭 클랩턴, 제프 벡 등에 이어 여섯번째로 헌정한 바로 그 기타였다. 기타에는 ‘신중현’이라는 이름 석자가 새겨져 있었다. 지난 11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자택에서 만난 신중현(81)은 “기타를 헌정받은 다른 이들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려면 음악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4년 만의 새 음반 <헌정 기타 기념 앨범>을 15일 발표한 이유다.

자택 1층 전체를 차지한 작업실은 온갖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세 아들과 음반을 녹음했다. 대를 이은 기타리스트 신대철과 신윤철은 전공 대신 각각 베이스와 건반을 연주했고, 막내 신석철은 드럼을 쳤다. “다들 바쁜 와중에 시간 맞추다 보니 한 3년 걸렸어요. 힘들게 낸 앨범이라 더욱 애착이 갑니다.”

앨범에는 모두 8곡을 담았다. ‘빗속의 여인’을 제외하면 ‘겨울 공원’ ‘안개를 헤치고’ ‘어디서 어디까지’ 등 생소한 곡들이다. “대중을 의식하기보다는 내 음악성을 표현하기 좋은 곡들을 골랐다”고 그는 말했다. ‘빗속의 여인’도 원곡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해체하고 재창조했다. “록은 자유예요. 고정된 멜로디를 파괴하고 자유롭게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정신을 표현한 거죠.”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펜더로부터 헌정받은 기타로 녹음해 15일 발표한 <헌정 기타 기념 앨범> 표지. 좋은뮤직 제공
곡 중간 기타 솔로가 빛을 발한다. 녹음 당시 느낌대로 즉흥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20년 전부터 새로운 주법을 연구했다. 젊은 시절 폭발적인 주법과는 다른 “제2의 주법”으로 이번 앨범을 녹음했다. “기타리스트들이 보통 손가락으로 기교를 부리는데, 저는 인간이 몸 안에 지닌 힘, 내공을 기타 소리로 표출합니다. 다들 벤딩(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밀어 올려 음의 변화를 만드는 주법)을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된 벤딩이 아니거든요. 몸에서 나온 힘으로 벤딩을 하면 소리 자체가 달라요. 일반인은 잘 몰라도 기타리스트들은 뭔가 다르다는 걸 알 겁니다.”

직접 부른 노래도 여느 가수와 다르다. 내지르는 창법 대신 무심한 듯 툭툭 던진다. “숨소리까지 잡아내는 민감한 마이크 덕에 새로운 창법을 시도할 수 있었다. 우렁차게 부르는 것보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걸 중시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앨범에는 신곡도 2곡 있다. ‘사랑해줘요’는 애절한 트로트풍의 사랑 노래다. “앨범이 대중적이 아니어서 한 곡 정도는 대중적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 싶어 만든 곡이에요.” 그는 대중적인 노래를 만들어 다른 가수들에게 준 적도 많다.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이 대표적이다. “대중적인 곡을 내가 직접 부르려니 영 어색하더라고요. 그냥 양념으로 들어주세요.”

7분40초에 이르는 대곡 ‘그날들’은 앨범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수많은 그날들 모두 다 잃고/ 허무한 그 세월에 말없이 지냈네/…/ 찾을 수는 없지만 모두 잊어야만 하기에/ 저기 저 밝은 빛 찾아서 다시 한번 가보리/ 내 그 길을 걸어가리”라고 노래한 뒤 폭풍이 휘몰아치듯 연주한 기타 후주가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이 곡은 사실 신세타령이에요. 과거 핍박받고 힘들었던 시절을 분풀이하듯 연주한 거죠.”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이 경기도 용인 자택 작업실에서 펜더로부터 헌정받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서정민 기자
신중현은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국가 찬양곡을 만들라는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갖은 탄압을 받았다. ‘미인’ 등 발표곡이 대거 금지곡으로 묶였고, 대마초 파동에 휘말려 고문, 감옥살이, 정신병원 감금 등 온갖 고초를 겪었다.

“다시 태어나도 음악 할 거냐고 물으면 음악이고 뭐고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해요. 이런 인생이 또 올까봐 겁나서요. 저는 남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들게 살아왔어요. 죽으면 다시 태어날까봐 안 죽으려고 지금 열심히 살아요. 궂은일이 닥쳐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잘 넘겨요. 그렇게 적응하고 넘기는 것 자체가 수양이더군요.”

그는 지금도 어려움의 연속이라고 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드러머인 아내 명정강과 떨어져 15년째 홀로 지내온 그는 “혼자 사는 게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그러면서 나를 터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내는 지난해 고인이 됐다. “3년상을 치르는 의미로 3년간 애도하면서 가족 모임을 하지 말자고 애들에게 공표했어요. 외롭고 힘들면 그걸 또 기타로 표현해요. 내가 어려움을 잘 이겨냈는지는 기타 소리를 들어보면 알아요.” 그는 기타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 기타로 도를 닦고 있는 듯 보였다.

용인/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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