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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10 19:04 수정 : 2019.07.10 19:45

14년 만에 새 앨범을 낸 김도향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을 찾았다. 편안한 웃음으로 카메라와 마주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970년대 광고음악계 휩쓸었지만
회의감 드는 삶에 산속 명상·수련

40년 마음공부로 ‘인사이드’ 발매
노년의 ‘쓸쓸힌 행복’ 재즈로 입혀
‘실버카페’ 곡에선 낭만 요양원 상상

14년 만에 새 앨범을 낸 김도향이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사옥을 찾았다. 편안한 웃음으로 카메라와 마주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쓸쓸해서 행복하다니, 말이 되나? 가수 김도향(74)은 그렇다고 노래한다. “기다리다 난 다 늙어버렸어/…/ 여기까지가 나의 끝인가/ 정녕 이대로 떠나야 하나/…/ 내 마음이 텅 비워지니/ 쓸쓸하고 편안하다/ 쓸쓸해서 난 행복하다.” 그가 12일 발표하는 새 앨범 <인사이드>의 타이틀곡 ‘쓸쓸해서 행복하다’ 노랫말이다.

“65살 이상이 1000만명이 되는 시대가 곧 옵니다. 1000만명이 돈 없다고, 애들한테 따돌림 당한다고 슬퍼합니다. 죽을 때까지 괴로워해요. 욕망 때문입니다. 늙어서 몸이 느려지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움직이라는 거죠. 앞이 잘 안 보이면 멀리 봐야 해요. 쓸쓸함이 내 모든 욕망을 멎게 하고 고요함이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 얘기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도향은 14년 만에 새 앨범을 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 포크 듀오 투코리언스로 데뷔한 그는 한때 광고음악계를 휩쓸었다. 맛동산, 스크류바, 아카시아껌, 뽀삐, 써니텐 등 익숙한 시엠(CM)송이 모두 그의 솜씨다. 돈도 제법 벌고 자신의 회사도 커졌지만, 숨가쁘게 몰아치는 삶에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만든 노래가 “어느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로 시작하는 ‘바보처럼 살았군요’다. 이후 그는 전국의 산을 다니며 명상하고 수련했다. 명상음악과 태교음악을 만들어 발표했다. 그는 “40년간 마음공부 한 걸 녹여서 풀어낸 것이 이번 앨범”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노래를 단숨에 떠올리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히트곡과 시엠송이 다 그렇게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했다. 피아니스트 안동렬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재즈 기타리스트 하타 슈지가 리듬과 화성을 먼저 쌓으면, 그가 흥얼거리며 멜로디를 붙인 뒤 마지막으로 노랫말을 얹었다. “실버 세대가 메시지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재즈 색채를 더했다. ‘쓸쓸해서 행복하다’를 제일 먼저 만들었는데, 먼저 들어본 이들이 좋다고 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가수 김도향이 자신과 같은 노년 세대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담아 발표한 앨범 <인사이드> 표지. 아이원이엔티 제공
앨범에는 자신과 같은 노년 세대에게 하고픈 말을 담은 곡들로 빼곡하다. ‘아내가 내껀가’에선 아내도, 자식도, 심지어 내 몸뚱이조차 내 것이 아닌 세상에서 집착을 버리고 서로 위로하며 살자고 노래하고, ‘실버 카페’에선 쓸쓸한 요양원을 낭만적인 공간으로 상상해보자고 제안한다. ‘굼벵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받아들이자는 노래다. 죽음을 굼벵이가 껍질을 벗고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가는 것으로 비유했다. ‘바빠’는 노년만이 아니라 전 세대를 향한 노래다. “알아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보는 척, 바보처럼 살면 자유롭고 행복해요. 미워도 예쁘다 하고 못해도 잘한다 하면 진짜 예뻐지고 잘하게 돼요. 이 얘기를 젊은이들에게도 하고 싶었어요.”

그는 원래 앨범을 내고 나면 부끄럽고 창피해서 안 듣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 앨범은 녹음한 지 한달 넘은 지금까지도 매일 듣는단다. “녹음실에서 노래할 땐 엔지니어 등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 일부러 잘 부르려 했어요. 나중에 들어보면 노래에 집중하지 못하고 멋만 부리려 한 게 다 보여서 부끄러워졌죠. 이번에는 조그만 녹음부스를 사무실에 갖다 놓고 혼자 거기 들어가 노래했어요.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에서 욕심 없이 나오는 대로 편안하게 부르게 되더라고요. 내가 노래한 음반 중 애착을 갖는 유일한 앨범인 이유입니다.”

오롯이 자신의 얘기를 담은 앨범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그는 말했다. 앞으로 개별 곡을 또 낼 수는 있겠지만, 더는 앨범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번 앨범에 다 담았어요. 수록곡 11곡 중 단 한곡도 버릴 수 없어서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 부르려고요. 그래야 웬만큼 알려지지 않겠어요? 공연도 많이 하고, 예능 프로 나가게 되면 분위기 처진다고 못하게 해도 ‘쓸쓸해서 행복하다’를 부를 겁니다. 그런 고집 없으면 살길도 없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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