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9 17:38
수정 : 2019.07.09 20:08
|
최근 4집 <모래내 판타지>를 발매한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리더 조웅. 아시아레코즈 제공
|
다 떠난 밴드 홀로 지키는 조웅
시장통 작업실에서 ‘모래내 판타지’
록·트로트 뒤섞인 ‘뽕끼 그루브’로
발매 파티도 인근 카바레에서
“시장 분들 항의 한번 없이 격려
망한 나의 밴드 생각하며 작곡
재개발로 사라져 가는 재래시장
‘건드리지 마 바보야’ 가사로 담아”
|
최근 4집 <모래내 판타지>를 발매한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리더 조웅. 아시아레코즈 제공
|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모래내시장이 있다. 과거 서울 서부에서 손꼽히는 재래시장이었으나 근방이 재개발되면서 3분의 1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8일 시장 복판의 낡은 건물 2층에 올랐다. ‘초보운전’ 스티커가 붙은 철문을 여니 한 사내가 반겼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이하 구남)의 조웅(보컬·기타)이다. “초보운전은 뭔가요?” “여기가 찾기 힘들잖아요. 배달원이 잘 찾도록 문패 대용으로 붙였어요. 다이소 가서 그냥 적당한 스티커를 샀어요.” ‘오래된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현대자동차가 1980~90년대 생산한 승용차)를 탄다’는 뜻의 밴드 이름과 왠지 어울렸다.
구남은 데뷔 13년차 밴드다. 1집 <우리는 깨끗하다>(2007), 2집 <우정모텔>(2011), 3집 <썬파워>(2015) 모두 평단의 든든한 지지를 받았다. 구남의 음악은 장르를 정의하기 힘들다. 록·일렉트로닉·트로트 등을 뒤섞은 ‘뽕끼 그루브’는 듣는 이를 출렁출렁 덩실덩실 춤추게 만든다. 하지만 구남이 걸어온 길은 음악만큼 매끄럽지 못했다. 원년 멤버로 활동해온 임병학(보컬·베이스)이 2015년 밴드를 나갔고, 지난해까지 함께했던 김나언(건반)과 유주현(드럼)도 개인사정과 군입대로 활동을 쉬고 있다. 조웅 홀로 밴드를 지키고 있다.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발표한 4집 <모래내 판타지> 표지. 아시아레코즈 제공
|
조웅은 지난해 초 모래내시장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시끌벅적한 서울 서교·합정·망원동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오고 싶어서다. 친구의 친구의 어머니가 주인인 이곳은 10년간 비어 있었다. 그 전에는 점집이었다. “와보니 전기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전기 설치하고 묵은 때 빼는 데 사나흘이나 걸렸어요.” 여기 사람들은 전에 만나던 사람들과 달랐다. “할머니 동네에 온 것처럼 푸근함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작업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구남이 최근 발표한 4집 앨범 제목을 <모래내 판타지>라 정한 이유다.
“시장 분들은 새 앨범 나오기도 전에 노래를 다 들었을 거예요. 창문 열고 같은 음악을 계속 연주해댔으니까요. 그래도 시끄럽다고 항의 한번 없었어요. 작업이 끝나서 음악이 안 들리니 ‘요즘 잘 안 되나? 음악 소리가 안 들리네’ 하고 걱정해주신 분들도 있었죠.”
앨범 발매 파티를 시장 안 카바레 쌍쌍메들리에서 연 것도 그래서다. “여기서 나온 앨범이니 여기서 축하하고 싶었어요. 카바레 사장님 설득하느라 10번은 찾아갔어요. 사방에 거울이 있고 바닥이 미끄러운 곳에서 신곡을 연주하니 지인들이 엄청 좋아하면서 춤을 췄어요. 모르고 오신 카바레 손님들도 이게 뭔가 하다가 어울려 노셨죠.”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4집 <모래내 판타지>를 발표하며 카바레에서 축하 파티를 열고 있다. 아시아레코즈 제공
|
흥겨운 앨범 분위기와 안 어울리게 타이틀곡 제목은 ‘망한 나라’다. “구남을 두고 만든 노래여서 꼭 타이틀곡으로 해야 했다”고 조웅은 말했다. “구남은 망했어요. 음악 시장에서 망했다기보다 밴드로서 망한 거죠. 멤버들 스스로 밴드를 만들고 키워나가는 걸 가치 있게 생각하는데, 2015년 나와 병학이의 관계가 무너지면서 그때 이 노래를 만들었어요. 병학이나 다른 멤버들에게 가지 말라고 강요할 수 없었어요. 한국에서 나이 들어서도 밴드를 계속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고군분투하며 남아 있는 뮤지션들을 더 응원하게 돼요.”
앨범 마지막곡은 ‘재개발’이다. “풀잎도 지우고/ 나무도 지우고/ 표정도 지우고/ 사람도 지워버리고/ 남은 건 커다란 욕심뿐/ 건드리지 마 이 바보야”라고 ‘투정’하는 노래다. “이 근방에 죄다 아파트가 들어섰고, 시장도 결국은 재개발된다고 해요.” 구남은 사라져가는 것의 쓸쓸함을 노래한다. 그에 맞춰 추는 춤은 흥겨우면서도 슬프다. 8월17일 서울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여는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 가면 우리네 삶을 닮은 구남의 ‘뽕끼 그루브’에 올라탈 수 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