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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05 18:02 수정 : 2019.06.05 19:27

폴 스미스의 첫 컬래버레이션(협업) 작업인 ‘미니’. 특유의 컬러풀한 줄무늬(멀티스트라이프)가 입혀져 차체가 앙증맞고 상큼한 매력을 뿜어낸다.

위트 있는 클래식 선보인 패션 거장
서울 DDP에서 8월까지 대형 회고전
스케치·팝아트·팬들의 선물까지
영감이 된 대상물 한자리에 모아

폴 스미스의 첫 컬래버레이션(협업) 작업인 ‘미니’. 특유의 컬러풀한 줄무늬(멀티스트라이프)가 입혀져 차체가 앙증맞고 상큼한 매력을 뿜어낸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옷의 때깔을 미리 보지 않았어도 느낌이 특출한 진열장이 줄을 이었다.

특유의 알록달록한 멀티스트라이프(줄무늬)가 목을 휘감으며 엉킨 에비앙 상표의 투명 생수병들이 다가온다. 병 표면에서 약동하는 경쾌한 스트라이프 무늬선들. 이 무늬선들은 영국 명가 도자기 본차이나 주전자에서 엉킴을 풀고 차분하고 단정한 분위기의 선들로 바뀌며 몸체와 뚜껑을 훑고 지나간다. 뒤이어 상하가 명쾌한 주황색으로 수놓아져 몸체의 검은색과 대비를 이룬 라이카 카메라를 보는 순간, 마음을 움직이는 감각의 힘을 느끼게 된다. 진열장들 맞은편에 세워진 색띠를 두른 ‘귀요미’ 자동차 미니를 보면 이런 감은 확신으로 굳어져간다.

영국 런던 코번트가든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재현한 공간이 전시 전반부에 나온다. 그가 수집한 다양한 잡동사니는 물론 전세계 팬들이 보내온 선물들과 각종 디자인 자료가 여기저기 뒤엉켜 있는 모습이다. 모든 사물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폴 스미스의 작업 스타일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가장 영국적인 디자인, 사물과 기계·의상을 버무린 구성적 균형으로 유명한 거장. 클래식과 파격, 위트가 골고루 배어든 옷을 만든다는 평을 받는 영국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73)의 회고전이 한국을 찾아왔다.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안녕, 나는 폴 스미스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 차린 전시장은 개막 하루 전인 5일 취재진에게 공개됐다.

폴 스미스는 세상의 온갖 이미지들에 탐닉하는 수집광이기도 하다. 그가 모은 그림, 사진, 드로잉 등의 이미지를 양면의 벽에 가득 채워 넣은 전시장의 모습이다.
그가 수십년 동안 만든 옷들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의 여러 사물을 찍고 스케치한 이미지들, 다른 디자인 제품 등과 컬래버레이션(협업)한 작품들이 엉키고 널리면서 사람 냄새 풍기는 이미지 세상이 되어 관객을 맞는다. 초창기 어깨너머 장인에게 도안, 재봉을 배우던 시절의 공간과 흔적들, 거장이 된 뒤의 스튜디오와 사무실의 왁자한 풍경들, 올해 최신작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 컬렉션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맞물린 전시장이다. 팬들이 보내온 우표 붙은 각종 장난감 등으로 가득 찬 진열장, 그가 좋아하는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비틀스의 사진, 팝아트 그림, 드로잉 등 영감의 원천이 된 컬렉션들도 전시돼 있다. 이날 설명회에 나온 폴 스미스는 “내가 패션에 입문한 21살 때부터 시작되는 전시다. 제목처럼 겸손하게 출발해 열정과 인내심을 갖고 자기만의 개성을 갖추게 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9년 폴 스미스 특유의 다색 줄무늬(멀티스트라이프)를 써서 디자인한 에비앙 생수병. 발랄한 색채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폴 스미스의 삶은 입지전적이다. 영국 북부 소도시 노팅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본래 사이클 선수를 선망했으나 자전거 사고로 석달간 입원하면서 꿈이 깨졌다. 이후 펍에 드나들다가 의상 디자이너 지망생들을 만나 패션에 빠져들었다. 1970년, 나중에 부인이 된 여자친구 폴린과 금·토요일에만 여는 옷가게를 차렸다. 팔다 남은 천을 헐값에 얻어 남성복을 만들던 그는 1976년 패션 수도 프랑스 파리로 진출해 호텔 객실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걸고 첫 전시를 열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세계에서 400개가 넘는 매장을 거느린 폴 스미스 패션 제국을 구축했다. 그의 패션은 부박한 트렌드 유행에 구애받지 않는다. 영국의 품격을 드러내는 전통 슈트 제작 기술, 이른바 테일러 스타일을 바탕에 깔고 색감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창안하는 천부적 재질을 발휘해온 그의 작업들은 대중의 시야를 넓히는 선구자적 구실을 해왔다. 런던 코번트가든에 있는 사무실을 재현한 공간에서 엿보는 다기한 사물들의 모습, 그의 ‘베스트 갓잇’ 목록에 들어 있는 알록달록 무늬의 폴 스미스 라인 자전거, 올해 그의 숍 윈도 광고 이미지, 멀티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트라이엄프 오토바이 등은 젊은 창의력으로 미래 이미지를 모색하는 폴 스미스의 도전정신을 입증한다.

그의 이미지 수집품을 채운 공간 안쪽에 설치된 폴 스미스의 사진 설치물. 기발한 발상과 위트로 무장한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2013년 런던디자인뮤지엄이 기획한 순회전으로 11개국을 돌며 뮤지엄 역사상 가장 많은 60만명을 동원한 화제의 기획전이다. 이날 전시장을 돌면서 폴 스미스의 작품들을 소개한 기획자 데얀 수지츠 런던디자인뮤지엄 관장은 설명이 끝날 즈음 폴 스미스 브랜드가 새겨진 양복 웃옷 안감을 들춰 보이며 말했다. “겉모습에 집착하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폴은 확실하게 속내를 보여줍니다. 꾸밈없다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전시장 후반부에 나오는 폴 스미스의 2019년 봄·여름 컬렉션 의상들. 주위에는 그의 옷을 입고 패션쇼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워킹과 표정을 담은 영상들이 명멸한다.
폴 스미스한테서 자신의 첫 성장 양복을 맞췄다면서 웃는 그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스탠드가 비추는 전시장 벽을 가리켰다. 벽엔 ‘모든 날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폴 스미스의 글씨가 씌어 있었다. 8월25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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