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4 10:44
수정 : 2019.06.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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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브롬버그 & 올리버 차나린 듀오의 이미지설치작품 <정신은 뼈다>. 안면인식 기법으로 만든 사람들 두상을 망자가 숨진 뒤 빚는 ‘데스마스크’처럼 연속도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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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브롬버그 & 올리버 차나린 듀오의 이미지설치작품 <정신은 뼈다>. 안면인식 기법으로 만든 사람들 두상을 망자가 숨진 뒤 빚는 ‘데스마스크’처럼 연속도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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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 사회는 시시티브이(CCTV)가 포착한 ‘신림동 강간 미수’ 동영상으로 들끓었다. 새벽에 귀가하는 한 여성을 쫓아가 문을 따기 위해 서성대는 모습이 생생하게 포착된 남자의 모습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됐다.
이 사건은 보안과 감시가 일상적인 생활의 조건으로 뿌리를 내린 21세기 우리 삶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는 신림동 동영상을 떠올리면서 보면 훨씬 절절하게 다가올 법한 시사적 전시다. 시시티브이와 블랙박스 등 실제 장비를 활용해 현재 진행형인 감시와 보안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까닭이다. 현대 문명 비판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인 감시와 통제의 코드가 현재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21세기 첨단 기법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다.
눈길을 휘어잡는 대표작은 중국의 현대미술 대가인 쉬빙의 다큐 영상 <잠자리의 눈>이다. 2만8000개의 홑눈을 갖고 있으며, 초당 4만번을 깜박거린다는 ‘잠자리의 눈’은 현재 한국인의 경우 9초당 한번 정도로 노출된다는 감시카메라, 블랙박스의 렌즈를 은유한다. 작가는 2017년 중국 감시카메라 영상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1만시간분의 영상을 검색하면서 추려내, 한 남자 주인공이 칭팅(중국말로 잠자리라는 뜻)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찾는다는 내용의 81분짜리 영화로 각색했고, 이번 전시엔
미술관 상영용으로 9분14초짜리 압축적인 동영상을 내놨다.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한 나머지 그의 얼굴을 그대로 본떠 성형한다는 줄거리는 난해하지만 영상에 등장하는 강물 투신 장면, 비행기 추락, 화산 폭발, 도로를 덮치는 산사태, 사람들이 싸우는 이미지들은 어떤 각본도 없는 인간과 자연의 돌발적 순간들을 담은 것이란 점에서 이 시대의 불안정성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다.
작가 듀오 애덤 브룸버그 & 올리버 차나린은 첨단 안면인식 기술 시스템을 곱씹는 디지털 초상화 <정신은 뼈다>를 선보이고 있는데, 마치 죽은 이의 데스마스크가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부활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렌즈 4개가 1초 간격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캡처하면서 이미지 데이터를 모으면, 두개골 윤곽에 따라 3디(D) 얼굴 모형을 만드는 안면인식 기술의 실상을 엿보는 기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에번 로스는 2014년부터 지속해오고 있는 ‘인터넷 캐시 자화상 시리즈’를 내놓았다. 지난 3월 한달간 작가의 노트북에 남아 있던 인터넷 캐시 데이터를 출력해 전시장의 천장과 벽, 바닥을 온통 데이터 이미지로 덮었다. 한 개인의 온라인 활동량이 물리적으로 어마어마하다는 것과 그런 이미지가 고스란히 감시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설치작업이다. 7월6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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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전에 나온 중국 작가 쉬빙의 다큐적 영화 <잠자리의 눈>의 한 장면. 고속철이 탈선하는 충격적 장면을 찍은 폐회로카메라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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