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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7 13:38 수정 : 2019.04.07 19:55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음악가 알렌 워커가 모바일 게임 배틀그라운드와 협업해 지난달 21일 발표한 곡 ‘온 마이 웨이’ 프로젝트 이미지. 펍지주식회사 제공

[국내 게임음악의 세계]

하이텔 ‘사운드템프’ 팀에서 태동
‘라그나로크’ OST 인기끌며 본격화

지난해 열린 ‘롤드컵’ 결승전에선
가상 4인조 걸그룹 ‘K/DA’ 등장

“게임 몰입감 높이고 피로도 줄여”
‘일괄계약’ 소홀한 저작권은 한계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음악가 알렌 워커가 모바일 게임 배틀그라운드와 협업해 지난달 21일 발표한 곡 ‘온 마이 웨이’ 프로젝트 이미지. 펍지주식회사 제공
‘페이디드’ ‘얼론’ 등 히트곡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일렉트로닉 디제이이자 프로듀서 알렌 워커가 지난달 21일 새 싱글 ‘온 마이 웨이’를 발표했다. 디즈니 배우 출신 팝스타 사브리나 카펜터와 푸에르토리코 싱어송라이터 파루코가 보컬로 참여했다. 유튜브에서 공개한 지 닷새 만에 2000만 조회수를 돌파했고, 2주가 지난 5일 현재 5000만 조회수를 육박하고 있다.

이 곡은 알렌 워커의 독자적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실은 한국에서 개발해 전세계에 서비스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배틀그라운드 출시 1주년을 기념하는 협업 음원으로 내놓은 것이다. 알렌 워커는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가상현실 세계관을 표현하는 노래를 만들었고, 게임은 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다. 게임 제작사 펍지주식회사의 이한별 매니저는 “협업 음악이 게임 매출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집계할 수 없지만, 이용자들 반응이 좋다.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이용자들이 게임을 꾸준히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협업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게임음악의 어제, 그리고 오늘
게임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요즘에야 세계적인 스타들이 게임음악에 참여하는 사례가 많아졌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국내 1세대 게임음악 작곡가인 곽동일 프로듀서는 대학생이던 1990년대 초 게임음악을 처음 만들었다. 피시통신 하이텔에서 게임제작 동호회, 컴퓨터로 음악 만드는 동호회 등을 하며 만난 이들과 ‘사운드템프’라는 팀을 결성하고, 당시 막 태동하던 국내 제작 게임의 음악을 맡았다. 그는 “초기엔 장비가 단순해 컴퓨터 미디 프로그램으로 만든 ‘뿅뿅’거리는 사운드의 음악이 그야말로 게임스러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000년대 초반 나온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의 오에스티 앨범 표지. 지금도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그라비티 제공
2000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게임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 뒤 사운드템프 팀이 내놓은 결과물이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 배경음악이다. “그때는 우리들만의 세계가 있었어요. 우리는 가요와 다르다는 생각에 가요에선 잘 안 쓰는 악기를 쓰거나 요즘 이디엠에서 일반화된 전자음악 장비들을 적극적으로 썼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우리만의 음악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이는 오에스티(OST)로도 발매됐는데, 지금도 많은 이들이 꾸준히 즐겨 듣는 추억의 명곡으로 남아 있다.

이후 스타크래프트 등 외국 게임의 영향을 받아 국내 게임들도 오케스트라 음악을 대거 활용하기 시작했다. 게임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하는 사례도 늘었다. 최근에야 이디엠, 힙합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70~80%는 오케스트라 음악이라고 한다. 곽 프로듀서는 “너무 오케스트라 일색이어서 식상한 면도 있다. 게임 산업의 발전 수준에 맞게 이제는 더욱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5월 공개한 피파온라인4에서 박재범과 그레이가 합작한 힙합 곡 ‘엘 토네이도’ 싱글 앨범 표지. 넥슨 제공
마케팅·홍보 차원에서 아이돌이나 유명 가수의 참여도 부쩍 늘었다. 2002년 파이널판타지10 오에스티 ‘얼마나 좋을까’를 이수영이 불러 큰 사랑을 받은 이후 비슷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2017년 출시한 라그나로크아르(R)에선 강타가 프론테라 테마송을 불렀고, 지난해 5월 공개한 피파온라인4에선 박재범과 그레이가 ‘엘 토네이도’라는 힙합 곡을 합작해 선보였다. 피시방 전문 매체 <피엔엔>의 이종훈 대표는 “온라인·모바일 게임의 경우 이슈몰이를 위해 대중가수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리그오브레전드(LOL) 게임 캐릭터로 만든 4인조 가상 걸그룹 케이디에이(K/DA). 라이엇게임즈 제공
■ 바깥세상으로 나온 게임음악들
화면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확장한 게임음악도 있다. 리그오브레전드(LOL) 제작사 라이엇게임즈는 아예 게임 캐릭터들로 가상의 4인조 걸그룹 케이디에이(K/DA)를 결성하고 지난해 11월 데뷔곡 ‘팝/스타스’를 발표했다. 실제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멤버 미연·소연과 매디슨 비어, 자이라 번스 등 4명이 노래를 불러 녹음했다. 당시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엘오엘 월드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 무대에서 라이브로 선보였는데, 이를 담은 영상에선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실제 가수와 게임 캐릭터를 한 무대에 세웠다. 이 곡은 공개 직후 미국 아이튠스 케이팝 차트 1위와 팝 차트 4위에 올랐고,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 1위에 올랐다. 유튜브에 올린 뮤직비디오는 한달 만에 1억 조회수를 넘겼다. 싸이의 ‘젠틀맨’, 방탄소년단의 ‘아이돌’ ‘페이크 러브’,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방탄소년단의 ‘디엔에이’에 이어 여섯번째로 짧은 기간에 1억 조회수를 돌파한 케이팝이 됐다. 구기향 라이엇게임즈 홍보총괄은 “게임 배경음악으로 넣은 건 아니지만, 이용자들에게 게임의 경험에서 확장된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게임음악의 질이 높아지고 이를 즐기는 팬이 늘어나면서 게임음악을 전문공연장에서 실제 연주하는 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지난해 9월 클래식 전문 공연장인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선 ‘파이널 판타지 콘서트: 디스턴트 월드’가 열렸다. 70여명의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30여명의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게임음악을 들려줬다. 공연을 본 이예지(32)씨는 “게임 마니아들이 모여 곡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보내고 일부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외국인 관객들도 제법 많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게임 속의 오케스트라: 메이플스토리’ 공연이 펼쳐졌다. 넥슨은 2016년부터 해마다 던전앤파이터 오에스티를 공연하는 ‘던파 라이브 콘서트’를 열고 있고, 파이널판타지14의 사운드 디렉터 소켄 마사요시를 중심으로 결성한 일본의 프로젝트 밴드 프라이멀즈는 지난해 5월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내한공연을 펼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 게임음악의 한계, 그럼에도 하는 이유
게임음악을 넣는 이유는 이용자의 몰입감을 높이고 긴장감을 유지하며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곽 프로듀서는 “게임에서 음악을 빼봤더니 이용자들이 주의가 산만해지고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게임음악이라 해서 별다른 작업 방식이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음악을 만들 때처럼 작곡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한다. 게임 스크린샷 하나만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드는 이도 있고, 곽 프로듀서처럼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모아 만드는 이도 있다. 그는 “트리 오브 세이비어라는 하나의 게임 안에서 오케스트라, 힙합, 팝,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시도하고 있다. 특정 장르 게임엔 특정 장르 음악이 어울린다는 건 편견”이라고 말했다.

아쉬움도 있다. 게임음악 작곡가는 보통 일괄 계약으로 저작권을 게임회사에 넘기는데, 이 때문에 정당한 권리를 침해당할 때도 있다. 예컨대 원작자 동의 없이 새로 편곡해 재사용하는 식이다. 또 음원으로 발매해도 수익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유능한 작곡가들은 막대한 저작권 수입이 보장되는 일본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게임회사들이 전문가를 키우는 대신 유명 가수에만 의존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게임음악계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음악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게임이 사라지면 음악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다.

그래도 아쉬움보단 보람이 더 크다고 곽동일 프로듀서는 말한다. “게임이 성공하고 꾸준히 사랑받으면 음악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라그나로크가 나온 지 20년 다 된 지금도 유튜브에 “이 곡 참 좋다”고 댓글 달고 메시지를 보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 느끼는 보람과 희열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 같아요. 가요 작곡가보다 수익이 못할진 몰라도 만족감과 성취감은 훨씬 더 높죠. 더 많은 이들이 게임음악의 매력에 빠져봤으면 합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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