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9 22:43
수정 : 2019.03.1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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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나가 아이코 작가의 출품작 <깨어남에 대한 기다림―의자>. 공기 중에 놓아두면 저절로 기화되는 물질인 나프탈렌으로 의자를 만든 뒤 합성수지의 일종인 레진으로 수십겹 둘러싼 독특한 설치작품이다. 의자뿐 아니라 재료인 나프탈렌이 기화하는 순간의 기포들 자체도 레진 안에 굳어진 채 갇혀 화석 같은 이미지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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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의 국제전 ‘반복과 차이’
시간을 다양한 각도로 표현한 한·일 작가 7명의 근작들
나프탈렌, 숯, 실리콘 등 색다른 재료와 형식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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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나가 아이코 작가의 출품작 <깨어남에 대한 기다림―의자>. 공기 중에 놓아두면 저절로 기화되는 물질인 나프탈렌으로 의자를 만든 뒤 합성수지의 일종인 레진으로 수십겹 둘러싼 독특한 설치작품이다. 의자뿐 아니라 재료인 나프탈렌이 기화하는 순간의 기포들 자체도 레진 안에 굳어진 채 갇혀 화석 같은 이미지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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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방에 ‘화석’이 되어버린 의자가 나타났다. 얼음처럼 투명한 합성수지 덩어리 속에 잠긴 순간 그대로 굳은 의자다. 그런데 이상하다. 의자 주위에 무수히 솟아오르다 굳어버린 공기방울(기포)들이 보인다. 수십겹 기포들이 갈라진 채 덩어리 속을 한가득 채운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기포들이 뿜어져 나왔을까.
일본의 여성 작가 미야나가 아이코가 <깨어남에 대한 기다림―의자>란 제목으로 만든 이 화석 의자 재료는 나프탈렌이다. 공기 중에서 저절로 기화되는 물질로 의자 모양을 만든 뒤 합성수지의 일종인 레진으로 둘러싸며 인공화석을 만들었다. 기포들은 의자의 나프탈렌이 기화하는 순간 수지 용액 속에서 피어오른 ‘찰나의 흔적’이다. 작가는 찰나의 순간을 응고시키면서 시간을 물화시키는 작업을 해냈다.
<깨어남…>은 지난 14일 개막한 부산시립미술관의 국제기획전 `반복과 차이: 시간에 관하여'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인간 삶에서 유한한 시간, 기억에 대한 사유와 상념을 이미지로 표현한 한·일 작가 7명의 근작을 2층 전시장에 펼쳐 놓았다. 시간은 일상과 함께 흘러가는 익숙한 개념이나, 추상성이 강해 조형적으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출품 작가들은 일반인의 선입관을 깨는 창의적인 형식과 기법으로 시간에 대한 상상력과 생각을 전달한다.
소장 조각가 이병호의 신작들은 이런 맥락에서 돋보인다. 분절된 인체 군상이 허공에 매달린 설치물 <인체측정> 연작은 완성 뒤 움직일 수 없는 고전조각상의 영원불변성을 벗어나 유동하는 시간을 반영한 현재진행형의 조각을 만들려는 의욕을 표출한다. 작가는 분절된 몸 조각들을 여러 각도에서 이어붙여 다양한 몸짓의 군상을 만들어내거나 실리콘으로 뜬 자화상의 얼굴 피부에 공기를 불어넣어 청년기에서 노화기로 변화하는 상을 보여준다. 항상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 되는 작업을 지향한다는 그의 말에서 간단치 않은 결기가 엿보인다. 옛 한옥의 지붕과 기둥 흔적을 줄에 매달린 무수한 숯덩어리들의 실루엣으로 표현하면서 건축물에 담긴 시간의 에너지를 표현한 박선기 작가의 대형 설치작품, 1~9까지 디지털 숫자가 명멸하는 전광판을 싣고 달리는 미니어처 기차의 행렬을 통해 윤회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미야지마 다쓰오의 근작 등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미야나가 작가는 갓 구운 도자기를 수십벌 늘어놓고 도자기 표면의 유약이 ‘쩡~’ 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명상의 방도 차려놓았다. 6월23일까지. (051)740-2600~1.
부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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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된 인체 군상이 허공에 매달린 이병호 작가의 설치물 <인체측정> 연작을 관객들이 지켜보고 있다.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분절된 몸 조각들을 여러 각도에서 이어붙여 다양한 몸짓의 군상을 만들었다. 작업한 뒤 부동의 자세로 완성되는 고전주의 조각의 경직성을 벗어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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