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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7 17:59 수정 : 2019.02.07 19:29

<박태원의 천변풍경 3>(2019). 소설 <천변풍경>을 썼던 월북작가 박태원의 문학을 그림으로 재조명하는 2009년 기획전시 당시 출품했던 연작들을 올해 새롭게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어둡고 눅눅한 ‘이발소 연작’
구보 박태원 작가 청년 시절 담아
현장 답사·작품 독해 기반으로
과거와 현실이 교직하는 ‘역사풍경화’

<박태원의 천변풍경 3>(2019). 소설 <천변풍경>을 썼던 월북작가 박태원의 문학을 그림으로 재조명하는 2009년 기획전시 당시 출품했던 연작들을 올해 새롭게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세 연작의 연속되는 화폭에 1950~60년대풍의 낡은 이발소 내부가 텁텁한 붓질로 옮겨졌다. 마치 타임머신을 방불케 하는 공간이다. 머리 깎는 등장인물은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같은 세태소설로 유명했던 구보 박태원(1909~1986) 작가의 일제강점기 청년시절 모습이다. 이발사는 앞가림천을 두르고 앉은 구보의 앞머리칼을 몽당하게 다듬으며 특유의 ‘갑바머리’를 만들어준다. 뒤켠의 넓은 유리 창밖으로는 서울 청계천변의 과거와 현재가 잇따라 흘러가고 있다. 청계천에서 100년 전 빨래를 하던 아낙네들과 1950년대 하천을 복개하며 기둥을 놓는 공사 광경, 2000년대 복개 구조물을 걷은 청계천 1가 거리에 클래스 올덴버그의 꽈배기 조형물이 설치된 모습이다. 지난 100년간 서울 시·공간의 격변을 담은 이미지들을 배경에 두고서 머리 깎는 구보 작가는 그림마다 다른 자세를 하고 있다. 눈 뜨고 정면으로 관객을 응시하거나 그냥 눈을 감거나, 혹은 고개를 숙이고 상념에 잠겨있는 모습이다. 굵은 붓 터치로 꾹꾹 눌러 채워 넣은 이발소 안팎의 풍경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흘러가는데 구보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

민정기 작가의 신작 <사직단이 보이는 풍경>(2019).
과거와 현실이 뒤섞인 풍경회화를 그려온 화가 민정기(70)씨가 올해 그린 신작 <박태원의 천변풍경 1·2·3>은 완전히 새로운 창작품은 아니다. 10년 전 청계천에서 열린 박태원 문학그림 전시회 때 이미 기본 도상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새롭게 다시 그린 연작들은 여전히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요즘 풍경 같지 않은 어둡고 눅눅한 색감, 구보의 얼굴과 몸에 유령처럼 씌워진 희끄무레한 덧칠 등이 어우러져 청계천과 그곳에 살았던 인물 군상에 얽힌 역사와 현실이 교직한다. 회화적 긴장감과 다기한 역사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이 ‘이발소 그림’들은 작가가 추억의 명소로 알려진 서울 만리동 이발소를 직접 답사하고, 박태원의 <천변 풍경>을 독해하고 그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 지역을 답사하고, 청계천 근현대와 관련된 역사자료를 섭렵한 뒤 나온 것이다.

<…천변풍경>처럼 도시와 역사공간과 산하의 풍경을 여러 시점으로 바라보고 하나의 화면에 녹여낸 민 작가의 신작 14점과 1980년대 이래 작업 변천상을 보여주는 구작 21점을 감상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별관 2곳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으로, 상업화랑에서 열린 민 작가의 첫 전시다. 1990년대 이래 전국의 자연과 명승지를 찾아 전통 진경산수화법, 고지도를 연구하며 자신만의 화법을 모색하다가 2000년대 다시 도회로 돌아와 새로운 다(多)시점의 풍경을 고민해온 작가의 모색 과정을 두 곳의 전시장에서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판문점 평화의 집 남북정상회담장의 배경그림 <북한산>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민 작가의 그림들은 발품과 역사적 상상력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기발한 묘사·표현이 촘촘하다. 이를테면,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사직동 풍경은 소실점의 끝에 놓인 사직단을 향해 색점과 풍경이 빨려 들어갈 듯한 구도를 취한다. <인왕산과 북악산이 바라다보이는 풍경>에서는 서촌의 주택가 나무숲이 마치 용틀임하듯 윤곽을 곧추세우는 묘사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답사 중 느낀 인문적 감성을 온축하면서 작가는 그림 속 인물과 풍경이 약동하는 ‘역사적 풍경화’를 그려낸다. 그것은 현실 풍경 속에서 과거의 역사와 시대의 기운이 종종 삐져나오는 ‘불온한 풍경화’이기도 하다. 3월3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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