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2 18:34
수정 : 2019.01.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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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왼쪽)와 무용수 마누엘 팔라초. 롯데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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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타 메조소프라노의 고음
강렬한 고음악·앙상블과 어울려
빛의 무대·무용수 안무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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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왼쪽)와 무용수 마누엘 팔라초. 롯데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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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체칠리아 바르톨리가 있다면 미국에는 조이스 디도나토가 있다. 21일 스타 메조소프라노를 만나는 설렘이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 가득했다. 객석에 불도 꺼지기 전 무대 우측 뒤에 디도나토가 앉아 있었다. 좌측 앞에 엎드린 이는 반라의 남자 무용수 마누엘 팔라초였다.
디도나토의 2017년 음반 <전쟁과 평화>의 수록곡 대부분이 프로그램이었다. 막심 에멜랴니체프가 이끄는 원전연주(작곡 당대의 악기와 주법을 고려한 연주) 앙상블 ‘일 포모 도로’도 음반과 다름없이 함께였다. 테오르보(현대의 기타와 같은 고악기) 연주와 디도나토의 노래로 첫곡인 헨델 오라토리오 <예프타> 중 ‘공포의 장면, 재앙의 장면’이 시작됐다. 조명과 배경 영상으로 만든 무대는 렘브란트의 그림 같았다. 빛과 그림자가 강렬한 대조를 이뤘다. 에멜랴니체프는 하프시코드 앞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이며 열정적으로 지휘했다. 디도나토의 절규에서 찌르는 듯한 고음과 풍성한 울림이 공격적인 고음악 앙상블과 잘 어울렸다.
레오나르도 레오의 오페라 <안드로마카> 중 ‘그 검을 들어라. 잔인한 자여’가 이어졌다. 죄 없이 죽어야 하는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주인공이 처한 끔찍한 운명의 소용돌이를 디도나토는 입체적으로 펼쳐냈다. 분노와 애절함이 교대로 터져 나오는 바로크 시대의 아리아는 록 음악 같은 직진성과 보편성으로 다가왔다.
카를로 제수알도의 연주곡 ‘내 영혼이 심히 근심되니’에 이어 디도나토는 이날 청중들에게 가장 익숙했을 헨델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를 불렀다. 주저앉아 노래하는 디도나토의 풍부한 목소리가 홀 안에 흘러내리는 듯했다. ‘전쟁’을 노래한 1부의 마지막 곡이 끝나자 비로소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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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 롯데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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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주제로 한 2부는 퍼셀 오페라 <인도의 여왕> 중 ‘그들이 당신에게 하늘의 전능함을 말해줄 것입니다’로 시작했다. 에멜랴니체프가 연주하는 하프시코드 콘티누오(화성적 베이스를 연주하는 반주)가 돋보였다. 무용수가 디도나토에게 옷을 입혀주는 안무도 기억에 남는다. 헨델 오라토리오 <수잔나> 중 ‘수정같이 맑은 물이 속삭이며 흐른다’를 들으며 ‘전쟁과 평화’는 ‘긴장과 이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의 수축과 이완 같다. 생명체도 음악도 긴장과 이완으로 이뤄진 게 아닐까. 디도나토의 음정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고악기 오케스트라의 전아함과 잘 어우러졌다.
마지막 곡인 헨델 오페라 <아리오단테> 중 ‘어두운 밤이 지나면’에서 디도나토는 밝고 기악적인 성격을 띤 기교적 성악 예술의 진수를 들려줬다. 절제가 돋보였다. 남신과 여신이 마주보는 듯한 당당하고 멋진 피날레의 미장센은 무대 위에 작은 세계를 옮겨놓은 듯 수려했다.
첫 번째 앙코르인 이탈리아 작곡가 욤멜리의 ‘내 영혼 즐거움에’는 다이내믹했다. 디도나토는 하프시코드 의자에 앉아 노래하기도 하며 꽃을 뿌렸다. 마이크를 잡은 디도나토는 “세계가 가는 방향이 중요하다. 평화로 향해야 한다. 우리에겐 음악과 예술이란 아름다운 스승이 있다. 어두워도 곧 해가 뜰거다. 빛은 언제나 어둠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두 번째 앙코르곡 ‘내일’을 불렀다. ‘그리고 아침엔 태양이 다시 빛나겠지’란 가사로 시작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이다. 많이 들었던 곡이지만 실제 고악기 반주로 듣는 건 처음이었다. 정결한 연주 속에 순수한 감동이 유유히 밀려왔다. 디도나토는 ‘지금 정확한 순간에 완벽하게 나타나는 능력’을 성악가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꼽았다. 그 말마따나 오롯이 자신의 세계를 실시간으로 선보인 매력적인 국내 첫 무대였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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