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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7 23:43 수정 : 2019.01.07 23:43

[짬] 전통타악그룹 굿 한기복 대표

전통타악그룹 굿의 한기복 대표가 지난 3일 ‘장구 이야기’ 전시장에서 옛 장구를 치며 소리를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송인걸 기자
“누구나 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설명을 못 합니다. 이게 우리 장구의 현주소입니다.”

우리 전통음악에서 약방에 감초 같은 구실을 하는 악기가 있다. 바로 장구다. 장구의 역사와 기능, 다양성 등을 알리기 위한 <장구 이야기> 전시가 지난 2일 대전시 중앙로 대일빌딩에 있는 고당마당 제1공연장에서 막을 올렸다.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를 거슬러 만나는…’ 부제를 달고 23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회는 ‘한 장구 하는 서산 촌놈’ 고당 한기복(53) 전통타악그룹 굿 대표가 마련했다.

대전 고당마당 ‘장구 이야기’ 전시회
40여년 모은 전통악기 300여점 소개
삼국시대 요조·고려 도자기 장구…
“아파트 한 채 값들여 재현·복원도”

28년째 시민들에게 연습실도 개방
“우리 고유 악기의 소중함 알리고자”

한 대표는 이번 전시에 지난 40여년 동안 연주하면서 모으고 직접 만들기도 한 장구와 북 150여점에 전통악기와 국악용품 등 모두 300여점을 선보였다. 공연장과 벽장에 장구와 북이 빼곡하다. 작은 것, 삐뚤빼뚤해 대칭이 안 맞는 것, 아주 작은 것, 큰 것, 몸통이 인주같이 붉은 것, 무늬가 새겨진 구운 도자기 장구, 입힌 가죽이 유난히 큰 것 등 모양이 모두 다르다.

그는 “1500년 전 삼국시대 ‘요고’(허리가 잘록한 북)와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 조선 숙종 조를 앞뒤로 제작된 장구 등의 생김새가 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라며 “동해안별신굿 장구는 북방의 것과 유사하다. 목적에 따라, 지역별로 모두 달라서 장구를 구분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요고는 지난 2000년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성에서 출토된 장구를 실측해 재현했다. 이 장구는 몸통 길이 42㎝에 지름 16㎝로, 길이 58㎝ 안팎인 요즘 장구와 비교하면 3~4배 정도 작아 보인다. 그는 “삼국시대 장구는 평시에는 연주용, 전시에는 신호용으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재현해 연주해 보니 소리가 작고 높았다”며 “이걸로 연주나 신호가 가능했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는데 자연의 소리 외에 인위적인 소리가 별로 없던 시대였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도자기로 몸통을 만든 고려시대 장구도 여러 점 있어 눈길을 끈다. 이 도자기 장구들은 그가 옛 문헌에 기록돼 있는 도자기 장구를 복원해 2001년 무대에서 실제 연주한 것이다. 현존하는 도자기 장구는 12점, 이화여대, 국립중앙박물관, 전남대, 국립민속박물관 등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는 이 도자기 장구들의 크기와 무게, 두께 등을 실측한 뒤 내로라하는 도공들과 의기투합해 장구를 구워냈다. “솜씨가 뛰어난 도공들도 손사래를 쳤어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당시 좋은 아파트 한 채 값을 들여 연주할 수 있는 장구 6점을 얻었죠.”

삼국시대 요고,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를 재현한 것은 그 시대의 소리를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해안별신굿 등 무속을 세습하는 이들이 대대로 제작법을 전수해온 악기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대체로 작고 소리가 높다”며 “지금 국악기는 음이 많이 낮아졌다고 봐야 한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조선 전기의 악기는 지금의 것과 다르고 작다”고 분석했다.

그는 장구를 예로 들었다. 삼현육각 편성이 등장하는 숙종 재위기를 기준으로 장구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이전에는 <악학궤범>에 기록된 것 처럼 통이 가늘고 작은 장구 일색이었으나, 이후에는 통이 넓어 저음에 울림이 큰 전라도 장구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장구가 정악 연주용에서 야외 춤 반주용으로 활용도가 높아진 셈이다. 전시에서 선보인 전라도 장구와 악학궤범 장구 등은 모두 300년 이전 것 들이다.

그는 “기방과 야외에서 춤 반주에 쓰였다고 해도 장구가 대중화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헌을 보면, 장구는 편종·편경에 이어 고가의 악기였다. 15~18년생 오동나무를 통으로 깎고 소가죽, 말가죽, 개가죽, 사슴가죽 등을 염장해 털을 벗기고 무부질을 해 기름을 제거한 뒤 원철을 박아서 말린 가죽을 입혔다. 그리고 가죽에 장구 고리를 걸어 삼베 등으로 만든 숫바를 묶었다. 이 숫바로 소리를 조율하는데 조였다 풀었다 하는 죔줄(부전)은 사슴가죽 등을 썼다. 장구 고리 구멍은 질긴 담비 가죽으로 덧대고 몸통에 아홉번 옻칠을 해야 비로소 장구다운 장구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 교과 과정에 우리 소리가 포함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우리 소리를 가르치는 교사는 서양음악을 전공한 이들이어서 한계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번 전시가 장구를 비롯한 우리의 고유한 악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되면 대전시 등 지자체나 공공기관에 장구를 기증해 언제든, 누구나 장구를 배우는 장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28년째 시민에게 연습실을 개방해온 예인 한기복의 새해 바람이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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