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31 19:37
수정 : 2018.12.31 20:57
[짬] 민요 작곡가 김정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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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박사. 국악춘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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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황금돼지해 꿈이요? 북한에 가서 작품 연주회를 열고 싶어요. 남북의 이해와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 수천년 내려온 토속민요를 주제로 제가 쓴 곡들이 70년 분단 세월을 넘어 한반도를 하나로 잇는 오작교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말 최초로 북한토속민요를 전곡의 주제로 쓴 작품집 <일천 기러기 날아가듯>(국악춘추사)을 낸 작곡가 김정희(52·한예종 강사)씨의 새해 소망이다. 실제로 그는 이 음반에 2018년 세 차례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는 ‘불, 불, 불어라’를 비롯해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북한의 토속민요를 테마로 만든 8곡을 담았다.
2002년부터 북한민요를 주제로 한 곡을 만들고 논문을 쓰며 공연까지 기획해온 그는 국악계에서 독보적인 북한민요 연구가로 꼽힌다. 그가 스승은 물론 자료조차 구하기 힘든 ‘외로운 개척자의 길’을 걸어온 이유를 31일 전화를 통해 들어봤다.
부산에서 초·중·고를 마친 김씨는 85학번 중앙대 전자공학과의 홍일점 여학생이 됐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영향으로 음악을 좋아했던 그에게 공대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87년 3학년 여름방학 때 부산 서면 거리를 가득 메운 10만 명의 민주화 행진 대열과 만났다. “그날 공권력의 구조적 폭력과 시위대의 방어적 폭력의 차이를 확인했어요.” 그 뒤 학생회 활동을 시작한 그는 공대학생회 총무를 맡는 등 ‘운동권 학생’이 됐다.
틈틈이 혼자 음악을 공부하고 작곡도 습작하던 그는 1988년 서울에서 광주 망월동으로 조성만 열사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단체버스 안에서 ‘통일 그날까지’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4학년 1학기 자퇴를 한 그는 노동현장으로 투신해 구로공단과 반월공단에서 일했다. 그 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그는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으나 외환위기까지 겹쳐 포기해야 했다.
“겨우 지인의 보습학원에서 피아노 강사를 시작했는데 그나마 자격증이 없어 곧 해고됐어요. 그런데 그게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게 만든 계기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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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 기러기 날아가듯>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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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년제 부산예술대 음악과부터 시작한 그는 “우리음악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2001년 중앙대 음대에 편입하면서 국악 작곡을 전공했다. "어릴 적 꿈이었던 음악공부였기에 열심히 하다보니 졸업 때까지 전액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친김에 석사 과정에도 도전했다.
“국악은 아직 이론이 충분히 체계화되지 않은 실정이라 창작에 활용이 어려웠어요. 구입한 CD를 통해 들은 황해도 풍구소리(풀무질을 소재로 한 유흥요)를 주제로 곡을 쓰면서, 북한민요에 대한 연구가 오랜 세월 단절되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석사과정에서 북한민요를 연구했어요.”
북 토속민요 주제 8곡 담긴
‘일천 기러기 날아가듯’ 작품집
“전통 음악어법, 분단에 실종 위기
북에서 채록도, 공연도 하고 싶어”
학생운동·노동운동가의 삶 거쳐
서른 넘어 뒤늦게 음악 공부
2002년 <문화방송> 최상일 피디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특강을 들은 그는 북한 민요 음원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의논했다. 최 피디는 당시 엠비시에서 입수해 편집작업 중이던 <북녘 땅 우리소리>의 음원을 제공했고, 덕분에 그는 2004년 평안도민요의 선율구조를 주제로 한 첫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다.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전문사(석사) 과정에 진학한 그는 늦둥이 출산으로 2년 휴학을 거쳐 2007년 졸업했다. 2012년 서울대 음대 대학원에 들어간 그는 2016년 전국의 토속민요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에는 북한민요와 삼현육각을 주제로 한 최초의 창작곡 공연이자 자신의 첫 작곡발표회를 정가악회와 함께 열기도 했다.
“김 박사의 연구는 기존 한국음악학계의 배타적인 울타리를 넘어서거나 뒤집는 ‘새로운 이론’이어서 제대로 지도를 해줄만한 교수를 찾기도 어려웠다고 알고 있어요. 그만큼 선구적이어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학자예요.” 서울시와 ‘우리소리 박물관’ 개관 작업을 진행 중인 최상일 피디는 “김 박사는 소문난 집념의 연구가”라고 귀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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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박사. 국악춘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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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번 작품집에는 김씨의 열정에 감화된 이들이 기꺼이 동참했다.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과 엔지니어가 참여해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 북의 유경화(한예종 교수), 장구의 윤호세(전통예술집단 더굿 대표), 피리의 안은경(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부수석), 해금의 김보미(잠비나이 단원), 가야금의 추정현(대통령상 수상자), 퉁소의 김동근(고래야 단원), 마스터링의 황병준(그래미상 수상자) 등이 그들이다.
“민족 대대로 계승해온 전통음악 어법이 70년 분단으로 사라질 위기예요. 하루라도 빨리 남북 문화 교류가 원활해져 직접 북녘에 가서 채록도 하고 공연도 하고 싶어요.”
김씨는 올 봄 ‘4·27 남북 정상회담’ 1돌 기념 공연을 비롯해 지금껏 한번도 발표회를 못한 고향 부산에서도 공연을 열고자 다방면으로 기금 지원 방법을 찾고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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