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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9 00:59 수정 : 2018.11.29 20:59

성대 박물관의 기획전 ‘…시험형 인간’ 전시장. 옛 과거시험에 얽힌 유물들이 놓여있다. 수험장에서 썼던 큰 양산과 어사화를 두른 수석합격자 복식이 보인다.

회화, 지도 등 낯선 명품들 선보인 대학박물관 전시들 눈길
무이구곡도, 추사 글씨 낸 영남대박물관 ‘명품의 조건’전
옛 과거시험 유물들 펼쳐놓은 성대박물관 ‘…시험형 인간’전

성대 박물관의 기획전 ‘…시험형 인간’ 전시장. 옛 과거시험에 얽힌 유물들이 놓여있다. 수험장에서 썼던 큰 양산과 어사화를 두른 수석합격자 복식이 보인다.
옛 선비와 왕족들이 산수 절경을 보며 심신을 다스렸던 그림이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기암괴석과 시냇물이 노송과 함께 어우러진 심산계곡의 그윽한 풍경이 8폭 병풍에 담겼다. 절벽이나 바위의 테두리에 비친 푸른빛 색감 때문에 더욱 신비스럽고 장엄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18세기 궁궐의 일급화가들이 정성을 다해 그린 산수그림 <무이구곡도>가 경북 경산에 있는 영남대 박물관에 등장했다. 10월부터 열고있는 개관 50돌 특별전 ‘명품의 조건’(12월 21일까지)에 나온 일급소장품이다. 작품이 입수된 1996년 첫 공개된 이래 22년만에 다시 선보이게 되자 연구자, 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무이구곡도>는 성리학의 비조 주자가 보았던 은거지 주변의 장대한 풍경을 담고있다. 12세기 제자들과 은거했던 중국 푸젠성 무이산의 아홉계곡을 그린 대작 산수화다. 주자의 성지로 직접 가기 어려웠던 조선에서는 16세기 이래 상상과 관념을 담은 무이구곡도가 숱하게 그려져 선비들한테는 자기 수양의 유력한 방편이 되었다. 박물관에 나온 <무이구곡도>는 이런 그림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건, 200여년전 궁궐에서 왕족과 중신들이 수시로 감상했던 최고 품격의 작품이어서다. 중종비 단경왕후가 18세기 중엽 복권돼 능을 정비한 것을 기념해 화원들이 그렸다는 이력이 붙어있어 역사적 가치는 더욱 배가된다.

전시장에는 16세기 대유학자 퇴계 이황의 손길이 깃든 또다른 무이구곡도가 한 점 더 있다. 퇴계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유려하게 행서 발문이 붙은 이 대작은 간결하고 강한 선으로 무이구곡의 기암을 묘사해 대비를 이룬다. 이외에도 추사 김정희의 걸작 글씨인 <단연죽로시옥>과 그의 인장들, 지리학자 김정호가 19세기초 만든 국내 최대 규모의 책첩 형식 고지도인 <청구도>, 볼록한 양감에 소박한 색감이 매혹적인 보물 상감모란문매병이 나왔다.

성균관대·서강대 박물관의 기획전은 주제가 이색적이거나 출품작들 내력이 흥미롭다. 성대박물관의 기획전 ‘호모 이그재미쿠스-시험형 인간’(12월 28일까지)은 한국인이 평생 통과하며 살아야하는 이땅 시험제도의 역사를 유물과 기록들로 훑어보는 틀거지로 꾸며졌다. 중국 당나라의 과거 빈공과에 합격하고 귀국한 통일신라 석학 최치원의 글씨 석각 탁본을 서두에 내걸고, 고려 대학자 이규보의 과거에 낙방한 뒤 이름을 개명했다는 이야기를 잇따라 풀며 전시는 운을 뗀다. 특히 김홍도의 풍속그림 <공원춘효도>에 등장하는 옛 과거시험 풍경을 재현한 대목이 감상의 하이라이트 격이다. 응시생 외에 답안을 다듬어 글씨로 옮겨적는 사람, 잽싸게 답안지를 제출하는 하인까지 5~6명이 한 양산(파라솔)에 달라붙어 과거시험을 치르는 희하한 옛 시험장면을 실제 복원한 대형 양산과 현대 작가의 재현 그림, 과거수석 합격자의 복색 등을 통해 상상할 수 있다. 정조가 과거합격자에게 독주를 부어 쓰러질 때까지 마시게 했다는 은배 팔각잔 복원품과 일제강점기 여성법조인 이태영이 공부한 일본 민법 참고서 등 독특한 유물들이 많다.

서강대 박물관에서는 조선초 명필이던 양사언의 전광석화 같은 필력이 휘몰아치는 초서글씨 대작이 눈에 확 들어온다. 최근 명품유물들을 대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해 화제를 모은 컬렉터 손창근씨의 부친 고 손세기(1903~1983) 선생의 회화, 글씨 기증컬렉션을 간추려 선보이는 특별전이다. 전시장이 좁지만, 정선, 조영석, 이인상, 이인문, 심사정 등 18~19세기 조선 주요 명화가들의 소품들이 두루 망라된 회화 명품과 고려말의 학자 길재부터 양사언, 김정희, 한호에 이르는 거장의 초서체 글씨들을 한달음에 두루 볼 수 있다. 진열장에 나온 회화들 가운데는 대가들의 친숙한 화풍이 낯선 구도나 소재를 통해 발현된 수작들이 꽤 된다. 각진 바위, 나무, 정자의 모습이 깔깔한 필치로 그려진 이인상의 부채그림을 비롯해 먹바림 흥건한 우중산수도와 소슬한 어촌의 저녁놀 정경그림 같은 심사정의 소품들, 푸르게 번진 먹빛으로 깊은 숲을 멋드러지게 표현한 최북의 산수도, 날랜 필선의 감각미가 물씬한 조희룡의 묵란도 등이 이어지며 눈맛을 돋운다. 12월14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영남대 박물관 전시장에 나온 19세기 지리학자 김정호의 지도 <청구도>.

영남대박물관 기획전에 나온 18세기의 8폭 짜리 <무이구곡도>. 중종의 왕비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기념해 만든 대형 병풍화다.

18세기 조선의 문인화가였던 능호관 이인상이 부채에 그린 산수도. 서강대 박물관의 ‘고 손세기 선생 기증 서화 특별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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