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근대가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앨범 <헌법재판소>를 발표한 가수 최은진. 수류산방 제공
시대 뛰어넘는 ‘예인’ 최은진
여섯 살때 서커스, 초등생 땐 아리랑
고교 졸업 후 극단 미추홀 창단 멤버
나운규 탄생 100돌 아리랑 음반까지
이번엔 신구 정서 어우러진 ‘만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 앨범으로
애절하다가도 흥 돋우는 사운드
새달 1일 두번째 쇼케이스 무대
1930년대 근대가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앨범 <헌법재판소>를 발표한 가수 최은진. 수류산방 제공
여섯살짜리 꼬마는 아빠 손을 잡고 동춘서커스를 보러 갔다. 거기서 재주 넘는 아이들을 보고 홀딱 반했다. 그게 너무 하고 싶어 일주일 동안 잠을 못잤다. 초등학생이 되어 기계체조부에 들어갔고, 나중엔 주장까지 맡았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도 좋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리랑’을 부르며 둥근 의자를 장구처럼 두드리고 놀았다. 친구들을 모아 춤도 가르쳤다. 중학생 시절 배드민턴부 훈련을 하면서도 귀는 전통무용부 장구 소리에 쫑긋했다. 훈련 마치고 밤 늦게 집에 오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새벽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처음 듣고 멍해진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동인천 음악감상실과 재즈카페를 제 집 드나들 듯하던 여고생은 거기서 연극인들을 만났다. 졸업 뒤 극단 미추홀 창단 멤버로 들어간 계기다. 한때 종교에 심취해 신학교에 가기도 했지만, 뭔가를 깨닫고 ‘예인의 길’로 돌아왔다. 연극도 하고, 음악방송 디제이로도 활동했다.
1980년대 중반 무렵, 연극판에서 작곡가 한명을 만났다. 이영훈이었다. 연극 <광화문 블루스>에 출연하면서 그가 만든 노래를 불렀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로 시작하는 노래는 몇년 뒤 이문세 5집(1988)에 ‘광화문 연가’라는 제목으로 실린다. 그때 만약 그(당시 이름은 최현주, 훗날 최은진으로 개명)가 이 노래를 먼저 음반으로 발표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1930년대 근대가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앨범 <헌법재판소>를 발표한 가수 최은진. 수류산방 제공
가수의 길과 살짝 엇갈린 채 연극배우의 길을 계속 걸었다. 연희단거리패 연극 <산씻김> <오구> 등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남자를 만나 아들을 낳았고, 연극판을 떠나 육아에 전념해야 했다. 하지만 넘치는 끼를 주체할 수 없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뒤 남편 몰래 출전한 제2회 슈퍼보이스 탤런트 선발대회에서 덜컥 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대상을 받았던 이가 개그맨 배칠수다.
이를 계기로 연극판에 다시 돌아온 그는 어쩌다 ‘아리랑’과 연을 맺게 된다. 영화 <아리랑> 감독인 춘사 나운규 탄생 100돌을 맞아 아리랑연합회가 연 아리랑 축제에 엮이면서 ‘아리랑’에 빠지게 된 것이다. 결국 2003년 나운규 탄생 100돌 기념 음반 <아리랑 소리꾼 최은진의 다시 찾은 아리랑>을 발표했다.
“음반을 내긴 했는데, 이걸 누가 듣겠어요? 혼자서라도 불러야겠다 싶어 이곳을 마련했죠.” 이런 이유로 2004년 서울 안국동에서 문을 연 선술집 문화공간 아리랑을 그는 14년째 꾸려오고 있다. 그는 여기서 ‘아리랑’과 함께 1930년대 근대가요도 불렀다. “‘아리랑’을 공부하다 근대가요를 알게 됐는데,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1930년대에는 신식과 구식이 어우러진 묘한 시대였고, 우리 전통민요와 일본 엔카, 미국 스윙재즈 등이 뒤섞여 독특한 매력을 풍긴 게 당시 ‘만요’였거든요.”
소중한 유산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에 2010년 <풍각쟁이 은진>이라는 앨범까지 발표했다. ‘오빠는 풍각쟁이’, ‘다방의 푸른 꿈’ 등 1930년대 만요 13곡을 그 시대 분위기로 재현해 담았다. ‘아리랑 소리꾼’에서 ‘풍각쟁이 은진’으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앨범은 음악계에서 꽤나 큰 관심을 모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진 못했다. 그래도 최은진의 만요를 듣고 싶어하는 이들이 꾸준히 안국동 아리랑을 찾았다.
최은진이 젊은 인디 음악인과 함께 1930년대 근대가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앨범 <헌법재판소>. 수류산방 제공
그 중에는 출판사 수류산방 사람들도 있었다. 최은진의 단골손님이자 친구가 된 이들은 그가 후속 음반을 내길 원했다. 출판사이지만 처음으로 음반을 기획·제작하기로 했다. 1930년대 노래를 부르되 이번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보자는 게 큰 방향이었다. 그래서 섭외한 이들이 서울 홍대 앞 인디신에서 활동하는 김현빈과 전자음악가 293(이구삼)이다. 둘은 옛노래들을 해체하고 재구성해 색다른 분위기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물이 최근 발매한 앨범 <헌법재판소>다. 수록된 10곡에 대한 해설과 당시 시대상을 전하는 글까지 담아 아예 288쪽짜리 두툼한 책으로 냈다. 컴퓨터로 주조한 트렌디한 사운드 위로 최은진이 예스럽게 부른 노래는 기묘한 아우라(기운)를 뿜어낸다. 사이키델릭 음악처럼 몽환적이다가도(‘청춘 블루스’, ‘무너진 사랑탑’) 때론 애절하고(‘아주까리 수첩’, ‘아마다미아’), 때론 들썩들썩 흥을 돋운다(‘그리운 그대’, ‘고향 파트 2’).
창작곡도 3곡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헌법재판소’다. 아리랑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최은진이 가사로 썼다. “여기 온 손님들이 그렇게들 많이 울어요. 일찍 시집갔다가 두세살 애를 두고 나온 엄마, 힘들게 연애하는 커플…. 그러면 함께 울기도 하고, 노래와 만담으로 웃겨드리기도 하고. 여긴 해우소예요. 요 앞 헌법재판소에서도 못하는 걸 여기서 풀어주는 거죠.”
1930년대 근대가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앨범 <헌법재판소>를 발표한 최은진이 지난 11일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하고 있다. 수류산방 제공
최은진은 지난 11일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었다. 노래와 연극을 결합한 음악극 형태로 선보였는데, 만석이었다. 오는 12월1일 저녁 7시30분 서울 서교동 더스텀프에서 두번째 쇼케이스를 연다. 세대·국경·문화를 초월해 우주로 가는 기차를 콘셉트 삼아 ‘은진철도 고고고+대열차강도’라는 제목을 붙였다. 장담컨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고 들을 것이다. (02)732-1087.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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