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와 공동기획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음악평론가, 음악방송 피디, 음악 전문 기자 등 47명이 투표한 결과를 바탕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한겨레는 8월28일부터 9월28일까지 한 달 동안 순위를 역순으로 공개한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정오에 디지털 기사로 열 장의 앨범을 공개하고, 그 가운데 두 장의 앨범을 꼽아 전문가 리뷰를 소개한다. 전체 앨범을 듣거나 전문가 리뷰를 보려면 맨 마지막에 안내한 멜론 특집 페이지로 가면 된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41~50위41위 낯선 사람들 <낯선 사람들>(1993) -고찬용, 이소라의 존재를 알린 재즈 보컬 그룹의 데뷔작
42위 이문세 <5집>(1988) -이문세와 이영훈의 시간을 견디는 ‘고전’들의 향연
43위 빛과소금 <빛과소금>(1990) -가요에 퓨전재즈를 접목해 대중적으로 성공한 앨범
44위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를 찾는 사람들 2>(1989) -민중가요의 대중화라는 성취를 이뤄낸 히트작
45위 아소토 유니온 <Sound Renovates A Structure>(2003) -한국에서 꽃핀 블랙뮤직의 선구자
46위 롤러코스터 <일상다반사>(2000) -애시드 재즈를 흡수한 세련된 음악들
47위 작은거인 <작은거인 2집>(1981) -김수철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밴드 앨범
48위 조동익 <동경>(1994) -조동익이 팻 메시니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49위 동물원 <두 번째 노래모음>(1988) -가요 역사상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앨범
50위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2008) -인디의 시작을 알린 밴드가 가장 끝까지 간 결과물
42위 이문세 <5집>(1988)전문가 리뷰 | 작곡가 이영훈은 하루에 커피 40잔을 마시고 담배를 4갑 피우면서 흰 벽 앞에 피아노만 놓고 작곡을 했다고 한다. 하나의 모티브를 정교하게 확장하고 변주하기 위해 몸과 정신을 혹사하며 몰두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한 음 한 음에 고뇌를 담은 끝에 이문세의 아름다운 명곡들이 탄생했다. 이문세 전성기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5집은 이영훈이 전곡을 작사·작곡했다.
5집이 명작인 이유는 그 자체 완성도로도 충분히 뒷받침되지만 시간이 증명해주기도 했다. 광풍에 가까울 정도로 거셌던 이문세 리메이크 열풍 와중에 이 앨범에 수록된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은 특히 사랑받았다. ‘광화문 연가’는 이수영의 리메이크 앨범 〈Classic〉에 수록되며 이문세 다시 부르기 붐을 촉발했고,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은 〈슈퍼스타K〉에서 장재인이 불러 지금 세대에게도 애창곡이 됐으며, ‘붉은 노을’은 빅뱅이 다시 불러 엄마와 딸이 동시에 좋아하는 세대 관통 히트곡이 됐다. 다른 취향의 세대에게 통했다는 것은 원석의 완성도가 뛰어났다는 뜻이다. 빛 바래지 않고 꾸준히 찬사받는 이런 음악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명작’의 다른 말이다.
재평가 끝에 전설로 거듭난 측면도 있지만 당대에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무려 258만 장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8년 <한겨레> 보도를 보면 가격을 통상 3300원보다 25% 비싼 4000원을 받아 소매상들이 불매 운동까지 벌였으나 그에 아랑곳 않고 불티나게 팔렸다. 정규 앨범이라도 한 두 곡만 히트하고 마는 당시 분위기를 역행해 대부분의 수록곡이 사랑받기도 했다. 1986년부터 골든 디스크 상을 수상했고 당시 최고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디제이까지 맡고 있던 이문세는 5집으로 커리어 정점을 찍으며 아성 조용필에 필적할 인기를 누렸다.
당시를 살았던 세대들은 “왜 그렇게 그 음반이 좋았냐”는 질문에 “마치 팝을 듣는 것 같았다”고 답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우직한 정통 팝 선율, 우수에 젖은 분위기 있는 보컬, 여기에 시적인 가사까지 더해지며 팝에 버금가는 세련됨의 비교우위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조금씩 감지되는 재즈와 클래식의 영향도 한층 깊은 발라드가 나타났다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세대가 느끼는 이 음반의 특별함은 조금 다른 느낌의 세련됨일 것이다. 가곡처럼 쉬운 멜로디와 손편지 같은 시적 가사는 잠시 두고온 순수 혹은 정통성의 회복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유독 리메이크로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도 이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정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색창연하나 완성도를 반박할 수 없는 옛 음악을 들으며 그 시대의 소박함과 위대함을 추억하는 것이다.
이문세와 이영훈 말고도 이 앨범에서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다. 김명곤이다. 이영훈은 생전 인터뷰에서 “사실 이문세 성공은 저와의 콤비가 아니라 김명곤 선배까지 트리오의 결실이라고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곡의 편곡을 맡았다. 앨범에 자주 등장하는 신시사이저 스트링 연주는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한다.
추천곡 ‘광화문 연가’ | 원석이 아름답기 때문인지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리메이크되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발라드 중 하나가 됐다. 외피를 감싼 고색창연한 사운드가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악보가 가진 선율의 매력이 드높은 곡이다. 광화문이란 친숙한 소재로 공감대를 건드리면서도 시적 여운이 남는 가사는 작곡가 이영훈의 작사 능력도 증명한다. 5집을 대표하는 곡이자 1980년대 가요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곡이다.
이대화/음악평론가
43위 빛과소금 <빛과소금>(1990)전문가 리뷰 | 보통 빛과소금, 그리고 이들의 데뷔작을 얘기할 때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부터 얘기하게 된다. 김현식은 대중에게 ‘비처럼 음악처럼’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가수이지만 사실 그는 1986년 엄청난 밴드를 결성해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김현식은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5인조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는데, 김현식(보컬),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장기호(베이스), 유재하(키보드)가 그 주인공이다. 김종진과 전태관은 우리가 흔히 봄여름가을겨울 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 낯익은 두 얼굴이며, 장기호는 지금 소개하는 빛과소금의 창단 멤버이자 MBC <나는 가수다>의 음악감독으로 나와 방송에서 탈락자를 호명하던 바로 그 인물이고, 마지막 유재하는 ‘사랑하기 때문에’가 담긴 희대의 가요명반 한 장을 남기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천재 싱어송라이터이다. 다섯 멤버 중 누구 하나 빠짐 없이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봐도 우리나라에 이런 슈퍼밴드가 또 존재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팀이 빛과소금의 모체가 되었던 셈이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 2년이라는 짧은 기간만 활동하고 해체한 이후, 김종진과 전태관은 2인조 편성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을 이어나가 수많은 히트곡들을 만들었고, 유재하는 솔로로 데뷔했다. 장기호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 해체하기 이전 유재하가 제일 먼저 팀을 탈퇴했을 때 그의 후임으로 들어왔던 키보디스트 박성식과 함께 봄여름가을겨울을 나와 당시 빅그룹으로 통했던 사랑과 평화에 가입한다. 하지만 장기호와 박성식은 당시 퓨전재즈를 좋아했고 사랑과 평화는 펑크(Funk) 사운드를 추구한 팀으로, 본인들의 감성과 사랑과 평화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팀을 나와서 기타리스트인 한경훈과 함께 빛과소금을 결성한다.
빛과소금은 퓨전재즈를 보컬과 엮어 대중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신선하고 세련된 음악을 선보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장르음악이 활성화되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온전히 연주만으로 앨범 전체를 채울 수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과소금은 데뷔 앨범에 장기호, 박성식, 한경훈 세 멤버가 각자 작곡을 주도하여 본인의 특성이 잘 나타난 연주곡을 무려 3곡이나 담기도 했다. 보컬 중심의 가요 앨범에 연주곡을 3곡이나 수록했다는 건 당시로선 꽤나 놀라운 일.
역시 대중적인 반응은 연주곡보다는 보컬곡에서 왔다. 앨범의 3번 트랙으로 자리한 ‘샴푸의 요정’이 홍학표, 채시라 주연의 MBC 베스트극장 단막극 <샴푸의 요정> 주제곡으로 쓰이며 방송에 소개되는 행운을 얻게 된 것. 단막극이긴 했지만 워낙 많은 인기를 얻은 프로그램이라서 ‘샴푸의 요정’은 방송이 끝난 후에도 라디오를 통해 꾸준히 흘러나왔고, 이외에도 ‘그대 떠난뒤’, ‘슬픈 인형’처럼 뛰어난 멜로디가 돋보이는 보컬트랙들이 수록되어 있어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빛과소금은 1990년 데뷔 앨범을 발매한 이후 1996년까지 총 5장의 정규 앨범과 1장의 언플러그드 앨범을 발매했으며, 음악사적으로는 바로 이 데뷔 앨범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전한다. 한때 한 솥밥을 먹었던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한국에 퓨전재즈를 가요화하여 소개했던 최전선 팀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특히 싱어송라이터 음악이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도록 1990년대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빛과소금이라는 이름은 기독교 신앙이 깊은 장기호와 박성식이 성경에 나오는 비유에서 따온 말이며, 앨범에 ‘Beautiful’ 같은 성가곡을 수록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추천곡 ‘샴푸의 요정’ | 사랑과 평화 4집에서 먼저 선보였던 곡.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해체 이후 장기호와 박성식이 잠시 사랑과 평화에 가입했을 때 ‘샴푸의 요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랑과 평화의 음악 스타일이 본인들의 감성과 다름을 인지한 두 사람은 곧 팀을 나와 빛과소금을 결성하고 ‘샴푸의 요정’을 다시 발표한다. 마침 빛과소금 버전 ‘샴푸의 요정’이 TV 드라마에 흘러나오는 기회를 잡으면서 그때부터 대중은 사랑과 평화 버전보다 빛과소금 버전을 훨씬 좋아하게 되었다.
김봉환/벅스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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