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와 공동기획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음악평론가, 음악방송 피디, 음악 전문 기자 등 47명이 투표한 결과를 바탕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한겨레는 8월28일부터 9월28일까지 한 달 동안 순위를 역순으로 공개한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정오에 디지털 기사로 열 장의 앨범을 공개하고, 그 가운데 두 장의 앨범을 꼽아 전문가 리뷰를 소개한다. 전체 앨범을 듣거나 전문가 리뷰를 보려면 맨 마지막에 안내한 멜론 특집 페이지로 가면 된다.―――――― 한국 대중음악 명반 51~60위51위 크래쉬 〈Endless Supply Of Pain〉 (1994) - 한국 헤비메탈 역사를 다시 쓴 기념비적 작품
52위 서태지와 아이들 〈Seotaiji And Boys II〉 (1993) - 아이돌 이미지를 벗고 아티스트로 도약한 발판
53위 장필순 〈Soony 6〉 (2002) - 지금도 신선하게 들리는 서늘한 기운
54위 시인과 촌장 <숲> (1988) - 70년대 한국 포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성취
55위 조용필 <대표곡 모음(1집)> (1980) - ‘가왕’이라는 신화의 출발선
56위 이센스 〈The Anecdote〉 (2015) - 대중과 평단 모두 사로잡은 한국 힙합 대표 명반
57위 신해철 〈Myself〉 (1991) - 신해철 음악세계의 진정한 시작
58위 김정미 〈Now〉 (1973) - ‘신중현’표 사이키델릭의 독보적 결과물
59위 부활 〈Rock Will Never Die / 부활 Vol.1〉 (1986) - 소녀 팬들을 열광시킨 ‘희야’의 탄생
60위 디제이 디오시 〈The Life… DOC Blues 5%〉 (2000) - 가요 역사상 가장 대담한 도발
52위 서태지와 아이들 <Seotaiji And Boys II>(1993)전문가 리뷰 | 서태지와 아이들은 데뷔 앨범 한 장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트로트, 포크, 발라드 등 성인 취향 가요가 득세하던 대중음악계는 이 앨범을 기점으로 댄스 뮤직 중심으로 재편되며 10~20대에게 주도권을 넘겨준다. 대중음악계를 넘어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부상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다음 앨범에서 어떤 음악과 안무를 선보일지는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앨범 발표 전까지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전략은 새로운 앨범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을 더욱 부풀렸다. 록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양한 장르를 과감하게 결합한 두 번째 앨범은 데뷔 앨범보다 더욱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이 한 때의 바람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이 앨범을 통해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신드롬을 넘어 길이 남을 신화로 자리매김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 서태지는 데뷔 앨범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도대로 음악적 야심을 펼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또한 서태지는 직접 기획사까지 설립해 모든 활동의 주도권을 쥐며 혹시라도 불지 모를 외풍을 차단했다. 데뷔 앨범에서 ‘난 알아요’, ‘Rock’N Roll Dance’ 등의 곡을 통해 록과 댄스 뮤직의 결합을 시도했던 서태지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록의 농도를 더욱 높이는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로선 방송용으로 부적합한 5분 이상의 러닝타임에 헤비메탈을 방불케 하는 일렉트릭 기타 솔로와 국악기 연주를 삽입한 ‘하여가’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시도 자체부터 기존 질서를 향한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이 앨범의 무게중심은 ‘하여가’에 놓여 있지만, 나머지 수록곡들의 무게감도 만만치 않다. 유려한 멜로디와 가사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우리들만의 추억’과 ‘너에게’는 한국 대중음악사상 최초의 팬송으로 꼽힌다. 마약 중독자를 다룬 ‘죽음의 늪’은 이후 사회적 메시지 전달을 강화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행보를 미리 엿볼 수 있는 곡이다. 국내에 선구적으로 테크노와 레이브를 선보인 ‘수시아’는 몇 년 후 벌어지게 될 테크노 열풍을 예고한 곡이었다. 재즈, 신스팝, 힙합 등 다채로운 장르의 요소를 버무린 ‘마지막 축제’는 음악적 실험이 결코 대중성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보여줬다.
이 앨범은 데뷔 앨범과 마찬가지로 수록곡 전곡을 가요 차트에 올리며 다시 한 번 10~20대를 열광하게 했다. 한국 대중음악사 최초의 더블 밀리언셀러라는 기록은 이 앨범의 위상을 증명하는 가늠자다. 더불어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 앨범을 통해 아이돌 이미지를 벗고 자신만의 음악적 고집을 가진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이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다양한 장르와 음악적 실험을 선보이면서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앨범의 성공이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제시한 아이돌이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문법은 20년 이상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어떤 아이돌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영광이자 언젠가는 넘어야 할 숙제다.
추천곡 ‘하여가(何如歌)’ | 헤비메탈 사운드와 휘몰아치는 랩의 조화, 여기에 절묘하게 파고드는 스크래치와 비트박스, 그리고 태평소 연주의 하이브리드. 이보다 ‘실험적인 사운드’라는 흔한 표현이 어울리는 곡은 드물다. 서태지가 지금까지 선보인 수많은 명곡 중에서 최고의 곡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 곡을 제외하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 곡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정진영/문화일보 기자
57위 신해철 <Myself>(1991)전문가 리뷰 | 이것은 신해철 음악세계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무한궤도와 솔로 1집은 이 앨범을 위한 디딤돌이었으며, 신해철은 그 디딤돌을 딛고 순진한 소년에서 진지한 청년으로 거듭났다. 낙원상가 전자악기매장에 있던 미디와 시퀀서, 신시사이저를 손에 넣은 청년은 가슴으론 사랑을, 머리론 사유를 하며 세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Myself〉는 아직 로커 신해철을 유예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그는 딥퍼플보단 디스코와 전자음악에 더 빠져 있었다. 넥스트 1집과 노땐스, 크롬과 모노크롬으로 이어질 장르적 교두보는 이미 이때 다져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 뭉클한 건반 테마 아래 끊임없는 비트의 중첩을 새겨 넣는 ‘나에게 쓰는 편지’와 ‘날아라 병아리’ 이전에 넥스트식으로 죽음을 바라본 ‘50년 후의 내 모습’은 그 장르적 특성을 가장 구체적으로 들려준다.
힙합의 ‘스웩’을 응용한 자기소개 ‘The Greatest Beginning’과 더불어 라틴 리듬을 기계와 대치시킨 ‘다시 비가 내리네’처럼, 신해철은 이 앨범에서 비트 쪼개기에 제법 공을 들인 느낌이다. 섹시한 저음 랩에 필사적으로 맞서는 하이햇 비트, 브라스와 건반의 황홀한 난투극, 소울 코러스 위에 올라탄 신해철의 격정을 앞세운 ‘재즈카페’도 그랬다. 무한궤도가 데뷔하던 해 쓴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와 함께 이 앨범의 얼굴이 된 ‘재즈카페’에선 인간 드러머가 연주할 수 없는 리듬을 향한 신해철의 강박마저 느껴졌다. 그가 이 작품에 임하기 전 잡았다는 구체적인 방향성이 무엇인지 이 곡은 들려준다. ‘재즈카페’는 뮤지션 신해철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생전에 자신의 곡들 중 스스로 뽑은 ‘무덤까지 가져갈 노래 베스트 11’에서 3위에 오른 ‘그대에게’는 더 화려하고 세련된 편곡과 사운드에 힘까지 보태 이 앨범에 다시 실렸다. 그 유명한 전자 건반 인트로엔 밀도감을 더했고, 드럼 톤엔 박진감을 심었다. 이 곡에서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는 반상균과 민재현이 연주했다. 둘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에서도 같은 악기로 참여했다. 이처럼 〈Myself〉는 신해철이 모든 걸 통제했고 모든 곡을 신해철이 쓴 건 맞지만 모든 연주를 신해철이 한 건 아니었다. 반상균, 민재현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모든 색소폰을 분 이정식,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에서 각각 피아노와 드럼을 친 정석원과 민병직, ‘아주 오랜 후에야’에서 기타를 연주한 박청귀, 러닝타임 6분에 이르는 ‘길 위에서’에 얇은 어쿠스틱 기타를 입힌 김의석, 공일오비라는 같은 둥지를 공유하는 윤종신과 김태우 등이 이 앨범의 조력자로 기록됐다. 〈Myself〉는 그래서 김수철의 〈One Man Band〉나 존 서먼의 〈Private City〉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원맨밴드’ 앨범이었다.
그럼에도 〈Myself〉는 90년대를 대표한 한 뮤지션의 고독한 자기성찰과 지독한 작가주의가 함박 녹아있던 작품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단편의 싱글이 아닌 장편의 앨범을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당시 해설지를 썼던 팝 칼럼니스트 이영주도 그런 이 음반을 듣고 신해철이 “한 마리의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했음을 인정”했다.
신해철은 〈Myself〉의 성공으로 있던 빚을 다 갚았다. 하고자 했던 음악으로 큰돈을 벌었으니 그는 아마 뛸 듯이 기뻤을 것이다. 물론 넥스트라는 종착지에서 팬층은 양분되지만 그래도 신해철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에게 돈은 좋은 음악의 조건, 그 음악을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Myself〉가 없었다면 넥스트도 없었다.
추천곡 ‘길 위에서’ |커다란 신시사이저의 홍수, 절망의 모퉁이를 돌아 만나는 희망의 멜로디. 곡이 시작되고 43초에 이를 때까지 음악은 철학을 지탱한다. 이어 철학은 고독의 시로, 그 시는 다시 음악으로 스며들며 ‘길 위에서’는 조용히 몸부림친다.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와 ‘The Dreamer’ 사이에서 세상을 어루만지는 이 곡은 음악을 대할 때 신해철의 자세이자 신념이었다. 고요한 자기반성과 아련한 감수성이 뒤엉겨 송곳 같은 성찰을 피워낸다. 들짐승 같은 매서움으로 ‘이중인격자’를 부르짖기 전, 청년 신해철은 이 곡으로 자신의 청춘을 마감했다.
김성대/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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