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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31 11:59 수정 : 2018.09.20 16:29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한겨레 · 멜론 · 태림 공동기획 _ 81~90위 공개

한겨레가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와 공동기획으로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선정 작업을 진행했다. 음악평론가, 음악방송 피디, 음악 전문 기자 등 47명이 투표한 결과를 바탕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 순위를 매겼다. 한겨레는 8월28일부터 9월28일까지 한 달 동안 순위를 역순으로 공개한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정오에 디지털 기사로 열 장의 앨범을 공개하고, 그 가운데 두 장의 앨범을 꼽아 전문가 리뷰를 소개한다. 전체 앨범을 듣거나 전문가 리뷰를 보려면 맨 마지막에 안내한 멜론 특집 페이지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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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 명반 81~90위

81위 윤상 <Cliché>(2000)
- ‘윤상’표 전자음악의 위대한 시작점이 된 앨범.

82위 서태지와 아이들 <Seotaiji And Boys Ⅳ>(1995)
- 힙합부터 메탈까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서태지와 아이들 4집.

83위 이승환 <Human>(1995)
-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획득한 이승환 4집.

84위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6)
- 한국 인디신을 열어젖힌 모던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데뷔 앨범.

85위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1971)
- 한국 현대사와 함께한 불후의 명곡 ‘아침이슬’만으로도 가치를 증명한 앨범.

86위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1989)
- 김현식의 백밴드로 시작해 퓨전재즈를 한국에 본격 소개한 봄여름가을겨울 2집.

87위 김광석 <네번째>(1994)
- ‘일어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가 실린 김광석 4집.

88위 김건모 <Kim Gun Mo 3>(1995)
- 전국 길거리를 도배한 ‘잘못된 만남’이 수록된 메가히트작.

89위 미선이 <Drifting>(1998)
- 조윤석이 루시드폴로 활동하기 이전 몸담았던 밴드 미선이의 데뷔 앨범.

90위 언니네 이발관 <후일담>(1998)
- 한국 인디 1세대 모던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두 번째 앨범.

87위 김광석 <네번째>(1994)

리뷰| 1990년대 초중반,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를 든 ‘음유시인’의 이미지와 ‘포크의 계승자’라는 좌표가 김광석에게 부여된 것은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와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그는 (1980년대 들국화로 대표되었던) 소극장 공연을 통해 대중적 돌파를 이루어낸 거의 마지막 주자였으며, 1970년대산 모던 포크를 소환하고 정립하여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니라 1990년대의 음악으로 재탄생시킨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김광석의 <네번째>는 이러한 행적에 뒤이은 아름다운 결실이다.

이 앨범은 김광석의 절정을 증명해주는 작품임과 동시에 (리메이크 음반인 <다시 부르기>를 제외하면) 그의 유작이 된 음반이다. 노래모임 새벽에서 활동했던 황난주의 작곡,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코러스, (동물원의) 김창기의 작곡, (이전에 김광석의 솔로 앨범에 참여한 바 있는) 김형석의 참여 등의 면면을 보면 김광석에게 이 앨범은 일종의 결산 같은 인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여러 갈래들은 하나의 줄기로 흐른다. 류근, 김지하의 시정(詩情)도, 김창기, 강승원, 노영심, 박용준, 이무하, 황난주 등 다양한 색감의 작곡들도 김광석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성량과 유려한 음색의 김광석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각인에 다름 아니다. 조동익 밴드(조동익, 함춘호, 박영준, 김영석 등)가 빛나던 시절의, 깔끔하고 세련된 편곡과 연주는 이 앨범에 세련미를 더해준 중요한 공신임에 틀림없다.

이 앨범을 통해 김광석 본인이 작곡한 4곡을 안배하고 있어 (1992년 3집 앨범에 이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입지를 확장했다는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자유롭게’가 건강하고 소박한 포크·포크록의 미덕을 계승했다면,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통해 보편적인 사랑 노래를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획득했다.

무엇보다 (‘서른 즈음에’ 같은) 세월의 흐름과 나이의 무게, (‘회귀’ 같은) 생성하고 소멸하는 목련을 통한 은유적 성찰, (‘일어나’ 같은) 삶에 대한 소망과 결의가 중첩하는 가사들은 이 음반의 색깔을 결정짓고도 남음이 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처럼) 사랑의 아픔이나, (‘혼자 남은 밤’처럼) 삶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곡들에 대해 더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 사랑은 지나가고 꿈도 흐릿해진다. 그런 점에서 <네번째>는 사람들에게 못 다 이룬 꿈과 사랑을 환기시킨다. 이는 과거의 한 시절 어떤 집단들이 소망했던 “아름다운 세상 참주인된 삶”(‘끊어진 길’)의 거창한 화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 개인이 사랑하고 이별하고 좌절하고 아파했던 흔적들을 그의 목소리는 길어올리고 또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의 노래는 하나의 시대를 닫는다. 그렇게 김광석이라는 이름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으로 남았다.

추천곡 ‘회귀’| 김광석의 <네번째> 앨범에는 오래도록 사랑받는 곡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회귀’를 추천한다. 김지하의 시와 황난주의 곡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시절 특정 공동체의 꿈을 상기하게 만든다. 그가 돌아가고자 했던 때는 언제이고 그곳은 또 어디일까. 한 때의 꿈과 이상을 보듬고 되새기는 듯한 이 노래는 피아노 한 대만으로 간결하게 연주되었지만 김광석만의 풍성하고 유려한 절창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 노래는 “빛을 뿜던” 젊은 날들을, 그리고 사라져간 벗들을 보내는 송가이다. 나아가 “짧은 눈부심”을 뒤로 한 채 스러져가버린 봄날의 목련은 김광석 자신의 초상 같기도 하다. 이렇게 그는 “긴 기다림”과 “애틋한 그리움”을 남겼다. 최지선/음악평론가

88위 김건모 〈Kim Gun Mo 3〉(1995)

리뷰|전국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커피숍, 의류 매장, 술집, 놀이공원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면 어디든 자리했다. 불법으로 음반을 판매하는 노점상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노래를 연신 틀어댔다. 나이트클럽에도 디제이들의 으뜸 레퍼토리로 굳게 뿌리를 내렸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은 인적 드문 산간 마을이나 외딴 섬을 제외한 대한민국 전역에서 힘차게 흘렀다. 그야말로 광풍이었다.

노래의 어마어마한 인기는 1995년을 또 한 번 김건모의 해로 만들었다.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것을 포함해 그는 지상파 3사 음악방송 정상을 모두 가뿐히 석권했다. 연말에 열린 다수의 시상식에서도 김건모는 연거푸 대상, 최우수상에 호명됐다. 1994년 ‘핑계’에 이은 대박 행진으로 김건모는 ‘국민가수’라는 영예로운 호칭까지 얻었다.

일련의 성대한 성과를 이룬 데에는 단연 ‘잘못된 만남’의 공이 크다. 유로댄스를 골격으로 삼은 강렬한 반주는 역동적인 사운드를 선호하는 젊은 음악팬들의 보편적 취향을 만족함으로써 열띤 지지를 이끌어냈다. 친한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긴다는 내용의 가사는 듣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한 번 더 흡인력을 행사했다. 외양은 경쾌하지만 실상은 애절한 이채로운 모습으로 노래는 청취자들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앨범이 발산하는 매력은 ‘잘못된 만남’에 그치지 않는다. 감미로운 멜로디의 후렴이 인상적인 컨템포러리 R&B ‘이 밤이 가면’, 지-펑크(g-funk)의 성분을 들인 힙합 ‘너를 만난 후로’, 스티비 원더를 떠올리게 하는 하모니카 연주가 흥을 곱절로 키우는 뉴 잭 스윙 ‘넌 친구? 난 연인!’ 등 당대 팝 트렌드를 포착한 스타일로 노래들은 내내 세련미를 뽐낸다. 더불어 2집에서 크게 히트한 ‘핑계’를 의식한 듯 ‘드라마’, ‘너에게 (마음으로 하는 말)’ 같은 레게 노래를 재차 수록해 친밀감을 도모했다.

앨범은 서정성도 충만했다. 아카펠라 형식을 따른 ‘겨울이 오면’은 지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차분하게 진행되는 신시사이저와 앞뒤에 배치된 보컬 애드리브가 멋스러운 ‘그대와 함께’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고백으로 애틋한 기운을 퍼뜨린다. ‘아름다운 이별’은 피아노와 보컬에 집중한 구성을 통해 한없이 쓸쓸한 분위기를 내보인다. 카랑카랑함 안에 구슬픈 숨결이 깃든 김건모의 목소리는 발라드의 풍미를 극대화했다.

전국을 무른 메주 밟듯 누빈 ‘잘못된 만남’ 외에도 준수한 노래들을 가득 갖춘 앨범은 발매 석 달 만에 250만 장 넘게 팔려 나갔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전무한 대기록이었다. 김건모는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최다 앨범 판매 기록 인증서를 받았다.

이와 같은 크나큰 성공은 훌륭한 조력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가사를 쓰고 절반 가까운 수록곡을 작곡한 프로듀서 김창환은 빼어난 감각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노래들을 완성했다. 또한 나머지 절반을 작곡한 노이즈의 천성일, ‘잘못된 만남’을 비롯해 다수의 노래를 편곡한 김우진의 섬세한 손길로 앨범은 더욱 근사해지고 견고해졌다. 김건모 3집은 이른바 ‘김창환 사단’이라고 불린 명인들의 협력이 가장 찬란하게 빛난 순간이었다.

추천곡 ‘잘못된 만남’|신시사이저 루프는 노래의 필살기나 다름없다. 한 번만 들어도 머릿속에 깊이 각인될 만큼 짜릿하고도 명쾌하다. 빠른 속도를 내면서도 음 높낮이가 선명한 래핑으로 흥겨움은 곱절이 된다. 더할 나위 없이 리드미컬한 반주 안에 머문 ‘사랑도 잃고 친구도 잃는’ 비참한 가사는 노래에 극적 예술성을 부여했다. ‘잘못된 만남’은 1990년대가 낳은 가장 쾌활한 비가일 것이다. 한동윤/음악평론가

정리/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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