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30 05:00
수정 : 2018.08.3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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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상암동 케이라이브 공연장에서 홀로그램으로 되살린 유재하(맨 왼쪽)와 스윗소로우가 ‘지난날’을 노래하고 있다. 지니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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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홀로그램’ 탄생 비하인드
데뷔 앨범 한장으로 남은 뮤지션
“많은 이들에게 내 음악 들려주고파”
생전 소망 담아 KT·지니뮤직이 복원
김종진·송홍섭·정원영 등
밴드 시절 동료들 ‘노개런티’로
‘지난날’ 밴드 버전으로 바꾸고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
후배 가수 루빈 ‘얼굴’ 빌려주고
스윗소로우는 무대서 함께 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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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상암동 케이라이브 공연장에서 홀로그램으로 되살린 유재하(맨 왼쪽)와 스윗소로우가 ‘지난날’을 노래하고 있다. 지니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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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전설’로 남은 가수의 부활을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음원 사이트 지니뮤직이 연 기자간담회에서 유재하 홀로그램 공연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케이티와 지니뮤직은 고인이 된 아티스트를 홀로그램으로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첫 주인공으로 유재하를 택했다.
지니뮤직과 모회사 케이티에게 이 무대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홀로그램 등을 접목한 새로운 음악 플랫폼 사업의 기술 시연장이었지만, 음악 팬들에겐 보다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앞서 홀로그램으로 부활했던 김광석, 신해철과 달리 유재하는 1987년 솔로 데뷔 직후 세상을 떠나 팬들이 기억하는 생전 모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번 작업은 음악 동료와 팬들에게 소중한 기회인 동시에, 제작진에게는 더욱 어려운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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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빈이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에 유재하 얼굴을 입히는 작업 과정. 지니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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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먼저 유재하의 생전 자료를 모았지만, 그 분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방송 영상은 <젊음의 행진>에 출연해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것이 유일했으며, 사진도 많지 않았다. 제작진은 유족과 동료들로부터 말투와 표정을 전해 듣고 참고했다. 고인을 기리기 위해 만든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 가수 루빈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을 찍어 유재하의 얼굴을 입히는 작업을 했다. 안정일 지니뮤직 팀장은 “현재로선 70%가량 닮은 것 같다. 유족들이 만족할 때까지 보완한 뒤 일반 관객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유재하 홀로그램 공연이 일반 관객에게 공개되면 앨범 자켓으로만 유재하를 접한 팬들에게 각별한 경험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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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가 남긴 단 하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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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를 되살리는 작업과 함께 역점을 둔 건 ‘지난날’을 밴드 버전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이었다. 이를 이해 유재하와 밴드 활동을 같이 했던 김종진(기타)·송홍섭(베이스)·정원영(건반)이 거의 ‘노개런티’로 뭉쳤다. 편곡을 맡은 송홍섭은 원곡에서 유재하 목소리만 추출한 뒤 악기를 연주해 녹음한 사운드를 합쳤다.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 루빈뿐 아니라 드럼을 친 이준과 코러스로 참여한 스윗소로우 또한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이다. ‘유재하 패밀리’의 합작품인 셈이다.
이들의 인연은 수십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정원영은 유재하의 초등·중학교 2년 선배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그의 방은 음악가 지망생들의 아지트였다. 유재하, 김종진, 전태관 등이 자주 왔다. 조용필의 백밴드 ‘위대한 탄생’에서 활동하던 정원영은 유재하를 밴드 마스터 송홍섭에게 소개했다. 송홍섭은 유재하 집으로 찾아갔다. 유재하는 자작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려주며 “노래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송홍섭은 조용필에게 노래를 추천했고, 결국 조용필 7집(1985)에 수록됐다.
김종진은 유재하와 ‘봄여름가을겨울’ 활동을 같이 했다. 김현식의 백밴드 시절이었다. 김종진은 “재하와 전국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다”고 회상했다. “관객들이 ‘오빠~ 꺅’ 하고 소리 지르는 걸 재하는 무척 좋아했어요. 한 번은 대구에서 공연하는데, 현식이 형이 ‘키보드에 유재하입니다’ 하고 소개하니 여성 팬들이 ‘꺄~’ 소리를 질렀어요.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재하가 키보드 위로 올라가 손을 흔들던 기억이 나요.”
김종진은 이번 작업을 두고 “예전 같았으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참여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세월도 많이 흘렀고 선배 형들도 요청하고 해서 용기를 내봤다.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송홍섭은 “작업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많이 움직였다. 노래를 수없이 들으니 재하가 바로 옆에서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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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상암동 케이라이브 공연장에서 홀로그램으로 되살린 유재하와 스윗소로우가 ‘지난날’을 노래하고 있다. 무대 양쪽에선 밴드 라이브 영상이 나오고 있다. 지니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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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은 말했다. “재하는 자기 음악을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길 원했어요. 그래서 다른 가수를 위한 곡도 쓰고, 직접 앨범도 낸 거죠. 재하는 당시 드물었던 싱어송라이터로서 가요계 수준을 올린 음악가입니다.”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들의 모임 ‘유재하 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스윗소로우의 김영우는 “유재하 선배님은 조규찬, 유희열, 정지찬, 이한철, 루시드폴, 스윗소로우, 오지은, 정준일, 권순관, 박원 등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을 배출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홀로그램으로 부활한 유재하는 노래를 마치고 밤하늘의 별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음악과 한국 대중음악계에 남긴 성취는 이렇듯 불멸의 존재로 남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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