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압구정동에서 열린 ‘바흐 전곡 감상회’에서 윤홍주씨가 바흐의 칸타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년 내다보며 ‘바흐 전곡 감상·강의’ 도전 나선
피아니스트 윤홍주와 클래식 애호가 유민유진
매달 한번씩 1~224번 ‘칸타타’만 들어도 3년
음악사 들으며 악보 속 기법 탐구
26일 서울 압구정동에서 열린 ‘바흐 전곡 감상회’에서 윤홍주씨가 바흐의 칸타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피아노 건반에 한번도 손을 얹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면 냉큼 답할 것이다. 바흐. 하지만 바흐가 왜 서양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지 그 ‘전모’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9년째 블로그 ‘사람과 말글(人+文)’에서 활동해온 클래식 애호가 ‘유민유진’(44)은 많은 작곡가들을 거쳐 결국 바흐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했다. 1100여개가 넘는 바흐의 모든 작품을 듣는 감상회·강의를 기획한 것이다. 그는 “음악에 대한 모든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매달 넷째주 일요일에 열리는 강의가 바흐의 전곡을 다 다루려면 앞으로 20년이 걸린다. 일단은 작품번호 1~224번까지 바흐의 모든 칸타타를 듣는 게 1차 목표인데 이것만도 3년이 걸린다. 판을 깐 것은 유민유진이지만, 이 유장한 감상회를 이끌어가기로 나선 이는 윤홍주(33)다. 독일 에센 폴크방 음대에서 음악이론·피아노를 전공하고 예원학교 강사로 활동하는 그는 일반인들이 클래식을 쉽고,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관심이 많다. 선우예권, 조성진, 손열음, 임동혁 등 스타 예술가들의 연주를 비교하는 온라인 강의나 연주회를 리뷰하는 공부 모임을 진행하는 이유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오디오 가게에서 지난 4월부터 시작해 지난 26일 다섯번째를 맞은 ‘바흐 전곡 감상·강의’는 바흐의 칸타타 20~24번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윤홍주는 강의실 안쪽 벽에 유튜브로 칸타타 악보를 띄웠고, 한쪽엔 칠판을, 자신의 앞엔 디지털 피아노를 놓았다. 이날 소개된 5곡의 칸타타는 영원히 계속될 인간의 고통을 탄식하고 영혼의 구원과 신이 건네는 위로의 기쁨 등을 노래하는 종교적 내용이다. 윤홍주는 가사의 의미를 잘 살리기 위해 바흐가 사용한 방법을 설명했다. 가령 ‘영원’이란 단어가 나올 때는 오보에 연주자의 숨이 자지러질 만큼 10초 가까이 장음을 연주하도록 하거나, 두려움을 호소하는 대목에선 불협화음이 들어가는 ‘탄식동기’를 집어넣고, 하느님의 나팔소리를 들으라는 구절에선 실제로 트럼펫의 힘찬 연주를 삽입하는 식이다.
‘바흐 전곡 감상회’를 기획한 유민유진(왼쪽)이 강의를 맡은 윤홍주씨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다.
바흐의 음악이 음악사에 끼친 영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바흐는 4분의3박자 마디에서 음을 당겨 써서 4분의2박자처럼 변용하는 방법(헤미올라)을 썼는데, 윤홍주는 피아노를 직접 치며 크라이슬러(1875~1962)의 <아름다운 로즈마린>에서 헤미올라가 적용되고 있음을 실례로 들었다. “바흐는 정통적인 바로크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곳곳에 급진적 요소를 배치했지요.”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칸타타21번에 쓰인 ‘나폴리 6화음’(버금딸림 화음에서 6음을 반음 낮춘 것)은 쇼팽의 발라드 1번에서, 베토벤의 ‘열정’에서, 모차르트의 ‘뒤포르 미뉴엣에 의한 9개의 변주곡’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윤홍주는 쇼팽·베토벤·모차르트를 거쳐 나폴리 6화음이 아이유의 ‘너랑 나’의 전주에서도 쓰이고 있음을 ‘실증’했다. 바흐가 애상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해 사용한 ‘프리지안 음계’(일반적인 단음계에서 2번째 음을 반음 낮춘 음계)가 1960년대 트로트 ‘수덕사의 여승’에서도 쓰이고 있다는 설명을 하며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까르르 웃으며 엎어졌다.
“앞으로 20여년 뒤에도 여러분과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는 인삿말로 유민유진이 마무리를 짓자, 3시간 동안 바흐 ‘열공’에 빠졌던 20여명의 수강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글·사진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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