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28 01:28
수정 : 2018.08.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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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명문 레이블 ECM 데뷔 앨범을 발표하는 NEQ 멤버들. 왼쪽부터 정수욱(기타), 김율희(소리·징), 서수진(드럼), 손성제(색소폰). NEQ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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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허 사로잡은 ‘니어 이스트 콰르텟’
“왜 서양음악만 추종하냐” 고민
재즈에 국악 접목…새 음악 탄생
“미국·유럽선 못 듣는 연주”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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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명문 레이블 ECM 데뷔 앨범을 발표하는 NEQ 멤버들. 왼쪽부터 정수욱(기타), 김율희(소리·징), 서수진(드럼), 손성제(색소폰). NEQ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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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음반사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음악성을 인정받는다면 믿겠는가? 독일 음반사 이시엠(ECM)은 그런 곳이다. 프로듀서 만프레트 아이허가 1969년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추구하며 설립한 이래 재즈, 클래식, 현대음악, 민속음악 등의 명반을 발매해왔다. 키스 재럿, 팻 메시니 음반이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 그룹 엔이큐(NEQ·니어 이스트 콰르텟)의 3집 <니어 이스트 콰르텟>이 31일 이시엠을 통해 전세계 동시 발매된다. 한국 음악가들만 참여한 음반이 이시엠에서 발매되는 건 처음이다. 이전에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오스트리아 그룹과 협연한 앨범(1995)과 재즈 보컬리스트 신예원이 외국 연주자와 함께 작업한 솔로 앨범(2013)이 이시엠에서 나온 바 있다.
엔이큐의 중심에는 색소폰 연주자 손성제가 있다.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를 공부한 그는 왕성하게 활동하던 2000년대 중반 돌연 고민에 빠졌다. “동양인이 왜 지구 반대편 음악을 흉내내고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어요.” 재즈 기타리스트 정수욱과 술자리에서 “서양음악을 추종하기 이전으로 돌아가 우리 옛날 음악을 현대로 자연스럽게 가져온다면?” 하는 생각을 나눴다. 정수욱도 공감했다. 베이시스트 이순용과 국악 타악기 연주자 김동원까지 가세해 2009년 엔이큐를 결성하고 1집 <카오스모스>를 발표했다. 가내수공업처럼 시디 200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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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Q 멤버들. 왼쪽부터 손성제(색소폰), 앨범 녹음 뒤 그룹을 나간 김율희를 대신해 합류한 김보림(소리·징), 서수진(드럼), 정수욱(기타). NEQ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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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반응이 없자 팀은 자연스럽게 해체했다. 그러다 어느 제작자로부터 새 앨범 제안을 받았다. 이번에는 색소폰, 기타에다 기존의 베이스와 국악 타악기 대신 드럼과 소리꾼이 합류했다. 2015년 발표한 2집 <패싱 오브 일루전>은 연주곡만 있던 1집과 달리 김율희의 판소리가 들어가면서 국악 색채가 더 짙어졌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의 미학을 구현한 추상화 같은 드럼도 빛을 발했다. 앨범은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크로스오버 음반 상을 받았다.
이시엠의 유일한 한국인 프로듀서 정선은 이 앨범을 아이허에게 들려줬다. 아이허는 당장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독일로 날아간 손성제는 아이허에게 물었다. “당신 주변에 색소폰 잘 부는 연주자들이 많을 텐데 왜 내게 제안하는 건가?” “미국·유럽 뮤지션에게선 못 듣는 걸 너의 연주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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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전세계 동시 발매되는 NEQ의 ECM 데뷔 앨범 <니어 이스트 콰르텟> 표지. EC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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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엠 데뷔 앨범이 된 3집은 연주곡과 보컬이 들어간 곡이 반반이다. 보컬이 들어갔다 해도 2집처럼 판소리를 제대로 하는 게 아니라 연주곡 위로 흥얼거리는 식이다. 목소리 또한 악기처럼 활용한 것이다. 흰 화선지에 먹물을 머금은 붓으로 툭툭 찍어내 그린 수묵화처럼 손성제의 색소폰, 정수욱의 기타, 서수진의 드럼, 김율희의 목소리가 하얀 침묵 사이로 툭툭 비집고 나온다. 재즈도 아니고 국악도 아닌, 새로운 음악의 탄생이다. 손성제는 “전통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현대적으로 풀어낸 음악이다. 재즈 영향을 받았지만 고유 색깔을 구축한 쿠바나 브라질 음악처럼 나름의 정체성을 쌓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허는 요즘 사무실에 아티스트나 손님이 오면 엔이큐 음악을 틀어주며 들어보라고 권한다고 한다. 손성제는 “아이허가 인정해준 것만으로도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라고 했다. 엔이큐는 10월 서울 서교동 웨스트브릿지에서 쇼케이스를 하고, 10월 26~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이후 프랑스, 영국, 일본 등을 도는 해외투어에 들어간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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