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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31 18:06 수정 : 2020.01.01 02:34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주인공 민형식(왼쪽)씨와 아들 민병우 감독이 지난 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영화 ‘몽마르트 파파’ 민형식-병우 부자

“프랑스에 가서 거리 화가 될 거다”
‘독설가’ 어머니·‘민스필버그’ 아들과
등떠밀리듯 도착한 몽마르트르 광장
어머니의 예언대로 노점엔 파리만

“고흐도 생전엔 딱 한 점만 팔렸다”
평생의 꿈 앞에서 당당한 아버지
아들이 쫓으며 담아낸 ‘화양연화’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의 주인공 민형식(왼쪽)씨와 아들 민병우 감독이 지난 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은퇴하시면 뭐 하실 거예요?” 34년간 미술 교사로 일해온 민형식씨가 정년 퇴임을 앞둔 2015년, 아들 병우씨가 물었다. “다 생각이 있지.” 아버지의 답이었다. 아들은 궁금했다. ‘영화로 찍어볼까?’ 2016년 2월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과 퇴임식부터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2013년 개봉한 독립영화 <그 강아지 그 고양이>를 연출한 적이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다. “개봉 여부를 떠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라도 찍어보자 했죠.” 지난 3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민병우 감독이 말했다.

아버지의 오랜 꿈은 프랑스 거리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꿈을 이룰 뻔도 했다. 교사 초년생 시절 프랑스 정부 지원을 받아 2년간 유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아내의 반대로 접어야 했다. “꿈이 좌절된 이후 다람쥐 쳇바퀴 같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 안 가본 길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디다.” 아들과 나란히 앉은 민형식씨가 말했다.

“다 생각이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막상 은퇴하고 나니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어찌할지를 몰라 노닥노닥 시간만 축냈다. 정선 카지노도 들락거렸다. “당신은 프랑스 절대 못 간다.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독설을 날렸다. 민 감독은 그런 잔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아버지 퇴임식까지만 제가 찍고 이후부턴 촬영감독에게 맡기려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를 찍다 보니 캐릭터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마냥 낙천적인 아버지에게 초를 팍팍 치는 어머니의 리얼한 모습은 아들 아니면 못 찍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끝까지 제가 카메라를 잡았죠.”

1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자 민 감독이 직접 나섰다. 파리 몽마르트르 거리 화가 허가증 받는 법을 알아냈다. 어렵사리 신청하니 하늘이 도왔는지 한달짜리 허가증이 나왔다. 아버지는 평생의 꿈을, 아들은 ‘진짜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안고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손에 장을 지지게 된 어머니는 출국 전날까지도 망설이다 여행길에 동참했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 한 장면. 트리플픽쳐스 제공

아버지는 파리 거리, 에펠탑, 센강 등을 보고 얻은 영감을 캔버스에 펼쳤다. 밤에 잠도 안 자고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네 아버지 그림은 안 팔린다”는 어머니의 예언대로 몽마르트르의 노점에는 파리만 날렸다. 손님보다 오히려 주변 화가들이 엄지를 치켜들며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나는 그림을 팔려고 그리는 게 아니야. 내 감정을 표현하는 거지. 고흐도 생전에는 딱 한 점만 팔렸다니까.” 처음엔 변명인 줄로만 알았다. 아버지의 그림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림에 대한 철학이 얼마나 깊은지를 깨달은 건 몽마르트르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였다.

“제가 영화를 한다 했을 때 아버지는 ‘돈과 성공을 좇지 마라. 좋아서 하다 보면 그런 것들은 나중에 따라오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뜻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몽마르트르에서 아버지가 그림에 임하는 태도를 보고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됐어요.”

“아들이 영화 공부를 한다고 할 때부터 휴대폰에 저장한 아들 이름을 ‘민 스필버그’로 바꿨어요. 아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내가 살아보니 인생은 자기가 생각한 만큼 되더라. 조바심 내지 말고 실력을 쌓다 보면 늦더라도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걸요.”

민형식씨 부부가 프랑스 남부 도시 에즈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 아들인 민병우 감독이 직접 찍은 사진이다. 민병우 감독 제공

이들의 꿈을 향한 도전기는 <몽마르트 파파>라는 영화로 결실을 맺어 오는 9일 개봉한다. 민형식씨는 프랑스에서 그린 그림들로 자신의 첫 개인전(15일까지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다락스페이스)을 열고 있다. 이후 16~23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더 큰 규모의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큰 전시장을 제대로 채우기 위해 요즘 새벽 3시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 모든 게 아들 덕이죠. 자식은 부모의 스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그 말을 절감합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부모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됐어요. 다들 자기 꿈만 좇는데, 부모님 꿈이 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자식들이 조금만 도와드리면 탁 열릴 수 있거든요. 이 영화를 보고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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