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7 19:20
수정 : 2019.12.18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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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애국자게임 2 - 지록위마>의 경순 감독이 13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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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 다큐 ‘지록위마’ 제작한 경순 감독]
영화 ‘애국자게임 2-지록위마’
진보진영마저 입 닫고 동조했던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 파고들어
“간첩 조작 사건과 다름없던 일
반발은커녕 다들 지켜만 봐…
광장서도 구속자 가족들은 소외
촛불 시민들이 많이 봤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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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애국자게임 2 - 지록위마>의 경순 감독이 13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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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다른 이들을 농락함을 이른다. 1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애국자게임 2―지록위마>는 제목에 이 고사성어를 썼다. 대체 누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 걸까?
경순 감독이 전편 <애국자게임>을 세상에 내놓은 건 2001년이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반공 이데올로기가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 아래 ‘레드 콤플렉스’로 되살아나는 분위기를 담아냈다. 극장 개봉 대신 인터넷으로 공개한 영화를 10만명 넘게 봤다.
2016년 그는 <이카로스의 감옥>이라는 책을 우연히 봤다. 문영심 작가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파고든 책이다. 책을 읽고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순간 오래전 만든 영화 <애국자게임>이 떠올랐다. “신자유주의가 들어선 이후 20년의 결과가 이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에 <애국자게임 2>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죠.” 최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경순 감독이 말했다. 영화는 2017년 리영희재단 우수 다큐멘터리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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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애국자게임 2 - 지록위마> 포스터. 무치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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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에 들어간 경순 감독이 우선 주목한 건 ‘침묵’이었다. 2013년 이 전 의원 등이 지하혁명조직을 창설한 혐의(내란음모 및 내란선동)로 구속 기소됐고, 이 사건의 영향으로 이듬해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리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진보진영마저 입을 닫고 동조했다. 바로 그 지점을 조명하는 게 기획 의도였다.
하지만 사건을 파면 팔수록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 경선 사건, 정파 간 해묵은 갈등 같은 문제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왔다. ‘사슴’이 ‘말’이 아니라는 근거를 밝히려 들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마침 건강이 안 좋아져서 촬영을 잠시 쉬고 요양을 했어요. 그러면서 사안을 떨어져서 보게 됐죠.” 사슴이 말이 아니라는 사실 자체보다 사슴이 말이 아님을 알면서도 왜 다들 침묵했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자는 애초 의도대로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경순 감독은 통진당 해산과 관련된 당사자, 주변 관계자, 그 과정을 지켜본 사람 등 30여명을 인터뷰하며 가닥을 잡아나갔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 통진당이 대선 직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문제 삼았어요. 박근혜 당선에 치명적일 수 있는 중차대한 사안이었죠. 그런 와중에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고, 통진당 해산까지 이어졌어요. 상식적으로 과거 간첩조작 사건과 다를 바 없는데, 반발하기는커녕 다들 지켜만 봤어요. 당시 진보진영 내에 통진당 다수파를 차지하던 자주(NL)파나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반발심이 상당했기 때문에 침묵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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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해산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애국자게임 2 - 지록위마> 한 장면. 무치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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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2015년 이 전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는 무죄를, 내란선동은 유죄를 선고했다. 이 전 의원은 징역 9년형을, 다른 사람들은 징역 3~5년형을 선고받았다. 2016~2017년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구속자 아내들은 광장에 나가 통진당 사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대다수의 촛불 시민들은 외면했다. “다들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지만, 자본주의에 포획된 민주주의, 누군가를 배제하는 민주주의라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이번 사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 거죠.”
이 영화는 지난 9월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를 배급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결국 직접 배급사를 차리고 서울 종로구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대관해 여섯 차례 상영하기로 했다. 꼭 5년 전 통진당이 해산된 날짜인 12월19일을 개봉일로 잡았지만, 전날인 18일부터 상영을 시작해 19·20·21·28·29일까지 하루 한 차례씩 상영한다. 28일 오후 4시30분 상영 뒤 열리는 ‘관객과의 대화’에는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도 참여한다. 예매는 네이버·다음·예스24·맥스무비에서 할 수 있다. 경순 감독은 “촛불 시민들이 많이 봤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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