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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5 07:24 수정 : 2019.12.05 07:30

음식과 섹스를 통해 인간의 집착과 공포의 근원을 그린 <301 302>는 단연코 한국영화사상 가장 매혹적인 문제작이다.

[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100)<301 302>
감독 박철수(1995)

음식과 섹스를 통해 인간의 집착과 공포의 근원을 그린 <301 302>는 단연코 한국영화사상 가장 매혹적인 문제작이다.

인간처럼 남의 죽음을 작위적으로 먹는 존재도 없다. 살생한 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맛을 내 죽음의 흔적을 감추고 그것을 고상한 도구를 이용하여 한입씩 음미하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교묘하고 잔인한 행위다. 박철수 감독의 <301 302>는 그러한 ‘먹는 행위’의 근원적인 공포를 두 여성 캐릭터를 통해 그린다.

이야기는 새희망바이오 아파트 301호에 요리 강박증을 가진 송희(방은진)가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송희는 매일 음식을 만들어 이웃인 302호 여자 윤희(황신혜)에게 가져다주지만 거식증에 시달리는 윤희는 음식을 갖다 버린다. 이사 오기 전 송희는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자신의 음식으로 배를 채운 남편과 섹스를 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떠나버리자 더욱 음식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반면 윤희는 정육점을 하던 의붓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다가 도망 나온 이후로 음식과 섹스를 거부한다. 송희는 윤희가 그간 자신의 음식을 버려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분노하지만, 윤희를 치유하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송희의 요리는 윤희를 고치지 못한다. 삼킨 것을 모두 게워내는 윤희는 자신의 몸으로 요리를 해서 먹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렇게 근사한 요리로 다시 태어난 윤희는 송희의 입으로 들어간다.

영화 속에서 먹는 행위와 섹스는 사실상 같은 것으로 보여진다. 요리에 집착하는 송희는 섹스에 집착하고, 음식을 기피하는 윤희는 섹스를 거부한다. 두 여성의 집착 혹은 공포의 근원은 음식, 즉 섹스인 셈인데 그런 관점에서 박철수 감독이 바라보는 인간의 생존 패턴은 동물의 그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근친상간을 하고 서로의 살점을 뜯어 먹는 것 역시 말이다. 다만 인간이 다른 것이 있다면, 이 본능적 행위들에 고결한 척 의식을 더하고 명분을 붙이는 등의 허울뿐이다. <301 302>를 통해 박철수는 김기영만큼이나 강박적이고 피터 그리너웨이만큼 첨예한 우화를 보여준다. 단연코 한국영화사상 가장 매혹적인 문제작이 아닐 수 없다.

김효정/영화평론가

※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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