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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0 05:00 수정 : 2019.11.20 19:30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다룬 <국가부도의 날>,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사건을 다룬 <블랙머니>, 한보 사태를 다룬 <머니톡스>(가제) 등 금융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금의 현실을 만든 각종 금융 비리를 파헤치는 영화가 최근 속속 개봉되고 있다. ‘모피아’가 주도한 이들 사건을 다룬 영화는 우리에게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과 경계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헬조선’ 만든 ‘검은 돈잔치’ 잊지 말자
모피아 소재로 한 작품 줄이어

1997년 외환위기 다룬 ‘국가부도의 날’
2012년 론스타 먹튀 사건 ‘블랙 머니’
각각 지난해와 올해 11월 개봉
1997년 한보사태 다룬 ‘머니톡스’도 제작 중

알려진 결론·복잡하게 얽힌 권력들
끝나지 않은 결말에 시나리오 고심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다룬 <국가부도의 날>,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사건을 다룬 <블랙머니>, 한보 사태를 다룬 <머니톡스>(가제) 등 금융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지금의 현실을 만든 각종 금융 비리를 파헤치는 영화가 최근 속속 개봉되고 있다. ‘모피아’가 주도한 이들 사건을 다룬 영화는 우리에게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과 경계의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영화는 당대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나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느냐의 문제를 짚어야 한다.”

7년 만에 돌아온 정지영 영화감독은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영화의 본질은 당대의 화두를 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최근 들고나온 <블랙머니>는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2012년 하나금융에 팔고 한국을 떠난, 이른바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사건’이 소재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금융 비리는 지금 이 시점에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다.

“우리는 금융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당시의 경제 상황이 지금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정지영 감독의 말대로, 요즘 영화계는 ‘모피아’(옛 재무부의 약칭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됐다. 2018년 11월 한국 영화 최초로 1997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했다. 영화는 ‘아이엠에프의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 비밀대책팀이 운영됐다’는 실제 기사에 착안해 국가부도 위기를 1주일 앞두고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블랙머니>의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아이엠에프 외환위기의 발단이 된 한보 사태를 다룬 영화 <머니톡스>(가제)도 제작되고 있다.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현재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있다. 1997년 1월 발생한 한보 사태는 한보철강이 관련된 권력형 금융부정 및 특혜 대출 비리 사건이다. 당시 재계 14위였던 한보가 정치권과 금융계에 로비를 해 무려 5조7천억원을 부당 대출받은 사실이 부도 과정에서 드러났고, 이는 한국 경제를 뒤흔드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장항준 감독은 최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영화계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발생한 금융 비리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의 우리 삶에 영향을 준 극단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등 우리 사회의 자본 집중 현상을 몰고 온 사건이다. 모피아가 창궐한 당시엔 엄청난 돈 잔치가 벌어졌다. 관치 금융으로 재벌들에게 계속해서 특혜를 줬고, 그런 것들이 지금의 상황을 낳았다.” 외환위기는 그 뒤 20년 동안 한국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이엠에프를 ‘헬조선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제는 다뤄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최근 이런 경향의 영화가 쏟아지는 이유다. 한 영화계 인사는 “모피아를 다룬 영화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이기에 당시 비리에 연루된 장본인들이 실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루는 게 쉽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제는 해볼 만하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장항준 감독은 한보사태를 소재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사건이 알려진 당시 많은 이들이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금융 비리라는 소재는 정치권과 금융권은 물론 재계의 상황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기 때문에 영화화가 쉽지 않다. 실제로 <강철비>를 만든 양우석 감독은 아이엠에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려고 2년간 파고들었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어디까지 건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정지영 감독은 “모피아를 소재로 한 작품은 대중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블랙머니>도 “어려운 경제용어를 빼는 등 내용을 올곧이 전달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고 한다. 장항준 감독도 “한보 사태를 어떻게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결론까지 다 알려진 ‘현실’이기에 클라이맥스의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영화화하는 데 약점으로 작용한다. 사건의 여파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현실을 어디까지 담을 것인지도 고민이다. 론스타와 우리 정부의 5조원대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절차는 아직도 최종판결이 나지 않았다. 한보 사태는 시나리오 작업 중이던 지난 6월 부회장이자 회장의 4남인 정한근이 도피 끝에 체포됐다. 정한근은 아버지 정태수 회장이 지난해 사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항준 감독은 “정태수·정한근 부자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결말을 써놨는데,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 역시 이미 다 아는 결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고민했지만 현실 그대로 보여주자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들 영화는 복기하기 괴롭지만 직시해야 하는 진실을 들춘다. ‘론스타’의 경우 수사에 감사까지 받은 사건인데도 아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진행형일지 모른다. 관객이 느낄 무기력함을 영화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 것인가도 걱정거리다. <국가부도의 날>도 20년 뒤인 현재의 모습을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정지영 감독은 “영화를 신나게 보다가 마지막에 ‘우리가 이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 같다. 하지만 미리 알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이겨내자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관련 영화들이 꾸준히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부도의 날> 최국희 감독도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엠에프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아프지만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현실을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과 경계, ‘모피아’ 영화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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