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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2 19:21 수정 : 2019.11.21 14:50

[짬] 중국 베이징대학 다이진화 주임교수

다이진화 베이징대학 영화문화연구센터 소장 겸 주임교수를 지난 8일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열린 아모레퍼시픽포럼 ‘생명 지속적 문명의 길-중국과의 대화’에서 만났다.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금 중국영화는 새로운 주체를 발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영화에선 이제야 민주적인 자각이 생기고 있으나, 아직 결과를 보지는 못한 상황이다.”

다이진화(60) 중국 베이징대학 영화문화연구센터 소장 겸 주임교수는 직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 영화이론과 여성문학, 문화연구의 권위자다. <무중풍경>, <성별중국> 등의 저서가 번역돼 국내 학계에도 낯선 이름이 아니다. 지난 8일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열린 아모레퍼시픽포럼 ‘생명 지속적 문명의 길-중국과의 대화’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그를 만났다.

영화문화연구센터 소장…페미니스트

지난 8일 ‘아모레퍼시픽포럼’ 기조연설

“사회주의혁명사 대신 옛 영광 탐닉”

자본이익만 좇는 중국영화 현실 비판

“여협객은 ‘신청년 남성’ 탄생 도구로”

여성들에게 ‘새로운 가치 창조’ 제안

다이진화 교수는 중국 여성문학과 영화이론 권위자이다.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는 현대 중국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흐름으로 “과거의 영광에 탐닉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흐름은 중국의 부상을 강조하고 중국 역사와 문화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는 예술적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흐름이 아니다. 20세기 중국 혁명의 역사를 덮어버리고, 자본의 이익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중국 사회주의혁명을 외면해선 안 되는 이유를 현대 중국의 건국부터 부상까지가 이 혁명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타협을 통해 건국한 나라들과 달리, 혁명을 일으킨 인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양보하지 않아도 됐다. 중국이 식민지나 국외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근대 산업화를 이룰 수 있던 근본적 이유는 혁명 덕분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영화를 두고는 “할리우드영화와 다른 다양한 가치관을 표출하면서 할리우드를 대체하겠다는 야심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론 이창동 감독을 좋아한다. 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감독이며, 그가 아주 잔혹하고 불행한 현실을 영화 <시>처럼 표현해내는 방식이 좋다. 예술과 상업 영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한국영화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화이론가인 그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이론을 무시하는 상황이지만 이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이론이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며, 이론이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점을 비판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관점에 기반을 둔 이야기다. 이론의 목적은 해결방안이나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기에 이익을 창출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는 “좋은 영화만큼이나 좋은 영화이론은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열어주는 열쇠”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서도 여러 차례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낸 그는 중국 미투 운동의 상황에 대해 “미투 운동은 오늘날 여성이 겪는 현실적 어려움을 부각하고, 여성들이 처한 위치를 자각하도록 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중국의 주류 매체들은 이를 잘 다루지 않고, 긍정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한국처럼 사회적 현상으로 부각되지는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포럼에서도 그는 1919년 ‘5·4 신문화운동’이 근대적 젠더 주체를 발명한 문화사적 논리를 추적했다. 5·4운동의 정신은 ‘반 전통’이었다. 중국인들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근대국가를 만들려 했다. 이를 위해선 역사적 발전을 이끌고 갈 주체, 즉 신청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 주체는 여성이 아니었다. 남성인 신청년이 제모습을 갖추기 위해, 여성에겐 이를 반대편에서 비춰주는 역할을 줬을 뿐이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초기 중국영화 속에서 징후적으로 드러난 ‘여성협객 캐릭터’를 들었다. <홍협>(1929)에서처럼 칼을 뽑으며 하늘에서 내려와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구한 뒤에 다시 하늘로 사라져버리는 여협객. 이 여협객은 흥미롭게도 미국 서부극의 카우보이와 닮아 있었다. 카우보이가 미국 역사의 계승자이지만 역사의 발전에 따라 반드시 추방당해야 할 존재였던 것처럼, 여성은 근대인의 탄생을 완성하고 사라져야 하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그의 발표는 이처럼 부정적인 결론으로 마치는 것 같았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희망적 전조 또한 감지한다. ”현대에 일어난 신기술 혁명과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며 새로운 여성 주체가 탄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 영화와 페미니즘이 할리우드 영화와 서구 페미니즘의 논리를 넘어 전혀 새로운 가치를 발명해 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그는 “지난 200년의 역사 동안 여성들은 해방과 평등을 추구해왔다. 내가 앞으로 기대하는 것은 오늘날 여성들이 어떻게 새로운 창조를 해낼 수 있는가다. 새로운 가치는 과거의 논리에서 탄생할 수 없다. 중국 또한 서구를 어떻게 추월할지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어떻게 창조할 것이냐에 집중해야 한다.” 그는 젊은 세대 여성들이 ‘비엘’(보이스 러브)과 같은 남성간 성애물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평등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면서 대안문화 속에서 친밀한 관계를 재건하려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중국의 한 여성감독이 한 말을 전했다. “영화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남쪽으로만 창이 난 방에 동쪽으로도 창문을 낼 수는 있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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