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2 07:35
수정 : 2019.12.1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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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장치를 남발하지 않고도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추격전을 통해 극도의 불안과 긴장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공포감을 오롯이 혼자 감내하는 피해자 미진의 모습은 마치 막혀 있을지도 모를 출구를 향해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달리는 동시대인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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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 문화재단 공동기획]
(90)<추격자>
감독 나홍진(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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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데뷔작 <추격자>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 장치를 남발하지 않고도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추격전을 통해 극도의 불안과 긴장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공포감을 오롯이 혼자 감내하는 피해자 미진의 모습은 마치 막혀 있을지도 모를 출구를 향해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달리는 동시대인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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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추격자>(2008) 직전까지 충무로식 스릴러물은 두가지 큰 과제를 안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는 것과 인물들의 과거나 관계에 집착하다 결국 이야기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스릴러의 묘미인 긴장감과 불안감마저 놓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스릴러물에서 반복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즉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유의미한 장르적 장치조차 무의미한 짜증 유발 장치에 가까웠다. 그때 등장한 <추격자>는 흔한 점프 스케어를 남용하지 않고도 극도의 긴장과 불안을 형성하면서 쉬이 가시지 않는 현실적 공포를 500만 넘는 관객에게 트라우마처럼 남기는 데 성공한다.
경찰관 출신 포주 엄중호(김윤석)는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진 업소 여성 김미진(서영희)을 찾던 중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의 실체와 마주하고 미진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추격자>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영화적 공포는 기존의 어떤 스릴러물보다 현실감 넘친다. 미진을 찾아 나선 이도, 살인마를 처단한 이도 결국 포스터 속 문구처럼 ‘경찰도 검찰도 아닌’ 이 땅의 소시민 중호였고, 중호와 같은 조력자도 없는 ‘나’ 혹은 ‘우리’는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폭력 앞에 맨몸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거친 호흡은 물론이고 신체의 미세한 떨림조차 그대로 살린 섬세한 연출은 영화 전반에 현장감과 긴박감을 불어넣고, 이는 인간의 짐승성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데 일조한다.
이유 없는 폭력을 가까스로 모면해도 온전한 도움 하나 얻을 곳 없이 남루한 실오라기 하나만 걸친 채 다가오는 공포 앞에 극도의 긴장과 불안을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내야만 하는 미진. 그 모습은 마치 막혀 있을지도 모를 출구를 향해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막연히 달리는 동시대인의 삶을 보는 듯하다. 이 때문에 <추격자>의 긴장과 불안은 극이 마무리되어도 도무지 끝날 기미 없이 영원할 것만 같다. 그래서 더욱 두렵고 섬뜩하다.
윤필립/영화평론가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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