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0 16:56
수정 : 2019.11.1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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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민주화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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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졸업’ 만든 졸업생 4인
김누리·작준성·윤명식, 박주환 감독
비리 사학재단 세력 복귀와 저지
2009년부터의 기록 차곡차곡 쌓아
“사학비리뿐 아닌 이 시대 청년 얘기
용기·희망 얻고 행동 나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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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민주화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의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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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상지대 학생 박주환씨는 대학생 국토대장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옆 친구가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주며 물었다. “너네 학교 아니니?” 영상 속 한 학생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과거 비리를 저질러 구속까지 됐던 김문기 전 이사장(구 재단) 세력의 복귀를 방조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당시 단과대 학생회장 이승현씨였다. ‘저 친구는 저러고 있는데,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박주환씨는 부끄러웠다. 그는 2009년 구 재단의 복귀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천막 농성 현장을 영상에 담아 7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든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는 지역방송 전파를 탔다. 그걸로 할 일을 다 한 줄 알았다.
이듬해 복학한 박주환씨에게 총학생회장이 만나자고 했다. 총학생회에 들어와 영상 기록을 맡아달라고 했다. 4학년이 된 터라 거절하려 했지만, 당시 부총학생회장 이승현씨의 간절한 부탁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상지대 민주화 투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졸업을 미루고 총학생회장까지 맡았다. 졸업하고 나서도 틈틈이 학교를 찾아 투쟁 현장을 기록했다. 그렇게 10년의 기록이 쌓였다. “그때는 이렇게 영화로 개봉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꿈같은 일이죠.”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졸업>의 박주환 감독은 말했다. 그는 최근 영화 출연자들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을 찾았다.
윤명식씨는 2014년 총학생회장이었다. 그해 8월 학교 이사회는 김문기씨를 총장으로 선임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어요. 김문기씨가 이사장이 되거나 이사회를 배후 조종할 걸로 예상했지, 대놓고 총장으로 나올 줄은 몰랐던 거죠.” 2015년 교지 편집장을 지낸 김누리씨는 “교지 발행인이 된 김문기씨가 지도교수를 통해 검열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으니 발행 부수를 줄이라고 압박하고 교내 배포도 방해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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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민주화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에 출연한 윤명식·박준성·김누리씨와 박주환 감독(왼쪽부터)이 최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을 찾았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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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총학생회장 전종완씨는 비리재단에 맞서 수업 거부를 주도했던 학생들을 징계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학교 옥상에 올라갔다. 학교 당국과의 대화를 요구했으나, 조재용 당시 총장직무대행은 할 말이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그냥 두면 뛰어내릴 판이었다. 윤명식씨는 조재용 총장직무대행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울며 빌었다. “대화에 나서달라. 종완이 형을 살려달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2~3시간 뒤 학교 당국자들이 옥상에 올라가 최악의 사태까지 치닫지는 않았다. “되돌아보면 두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라고 윤명식씨는 말했다.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던 박근혜 정권이 탄핵당하면서 상지대 사태는 해결 국면에 들어섰다. 2017년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2018년 처음 직선제를 통해 정대화 총장을 선출했다. 2014년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박준성씨는 “힘들었지만 잘 해결되어 이젠 추억이 됐다. 제가 축구 선수 출신이라 정치·사회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 일을 겪고 나서 달라졌다. 총학생회에서 인연을 만나 결혼도 하고, 우리의 투쟁이 영화로 개봉까지 됐으니 해피엔딩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남은 문제를 봐야 한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김누리씨는 “절대 악과 싸우느라 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지금부터 잘 살펴봐야 한다. 여전히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박주환 감독도 “영화를 통해 상지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봤으면 좋겠다. 촛불집회 이후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회 부조리가 모두 해결된 건 아니다. 학교·회사·가정 등 모든 곳에서 삶의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는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 장편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부산평화영화제 도란도란 관객상과 너도나도 어깨동무상을 받았다. “꼭 사학 비리 얘기가 아니라 이 시대 청년들의 이야기로 확장해서 보셨으면 해요. 영화 속 학생들이 특별히 강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평범한 청년들이 분노하고 저항하고 싸워서 끝내 이겼어요. 이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고 행동에 나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박주환 감독의 말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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